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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내 가십에 대처하는 법

눈치 없이 동네방네 떠든 죄에 대해서

by 프레디

2025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꽤나 큰 사건들이 배치된 중요한 해였다.

어려서부터 나는 내 가족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나는 4남매의 막내인데, 부모님 까지 여섯 명이 복잡하게 사는 내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침에 학교 갈 때부터 북적대는 화장실과 엄마가 오레오 오즈를 사 오는 날엔 시리얼을 먹기 위해 언니 오빠와 치열하게 눈치싸움을 해야 했다.

멋대로 다 먹어치우면 학교 다녀온 언니에게 신나게 털리기 때문에 더 먹고 싶어도 그 마음을 누르며 시리얼을 내려둬야 했다.

지긋지긋했다 대가족의 삶!


나는 내 가족이 가지고 싶었다. 엄마가 낳아줘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내 의사가 하나도 반영되지 않은 가족 말고

내가 선택해서 고른 사람과 든든한 울타리를 치고 소수의 아이들만 낳아서 살고 싶었다.

20대 이후 빠르게 진행된 나의 연애사 중 26살에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만났다. 4년을 만났고, 결혼을 준비했다가, 이젠 접어두었다.

나는 30살에는 결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일찍 하는 곳이다. 대기업 공장이 많이 위치해 있어

어린 나이에도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29살 이전에 인생이라는 과제를 나와 좋은 시너지를 일으키며 해결할 팀원을 찾아

30살에는 결혼을 진행하는 게 내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너무 이르게 느껴진 것 같았다.


작년, 미적지근하게 움직이는 그를 달래고, 채근하고, 30살에 식을 올리지 않을 거라면 나를 놔달라며 협박작전을 펼쳐 식장을 계약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누구를 만나던 내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며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엄마 밑에서 나는 집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그는 상견례를 거치지 않고 식장을 잡은 것을 부모님께 설명할 수 없다며 나와 자신의 부모님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지원해 준 아파트를 생각하면, 그는 더욱 부모님에게 발언권을 가질 수 없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내게 독립할 때 1000만 원 말고는 나를 별도로 지원해주지 않았던 엄마가 고마웠다. 가는 게 없으면 오는 게 없어도 된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 당연한 세상의 법칙이었다.


학기 초, 부장 회식 자리가 있었다. 교장, 교감, 행정실장님과 학년 부장들만 자리한 자리에서 나는 신나게 지껄였다.

올해 결혼해요! 보결 잡아주세요 부장님~

결혼이라는 일 앞에서 나는 잔뜩 신나고 들떠있었다. 내가 보기엔 너무 괜찮아 보이는 그 사람을 내 옆에 평생 잡아둘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래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떠들어댔다. 결혼식은 어디에서 할 거고~ 신혼여행은 어디로 언제 갈 거고~

교감 선생님께서 내 말을 듣고 스마트폰 캘린더 어플을 꺼내 기록을 하던 게 생각이 난다. 우리 관리자는 파워 j의 성향을 띤다.


식 4개월 전, 내 연인은 내게 말했다. 상견례 없이 식장을 먼저 잡은 걸, 아버지에게 설명할 수 없다고.

식장을 계약한 지 9 개월 뒤에 한 말이었다. 식장을 잡고 초반 1번은 날짜를 변경할 수 있게 식장 측에서도 배려를 한다.

좋은 식장 날짜를 잡기 어렵기에 먼저 식장을 잡고 그의 부모님을 만나 날짜를 변경하려던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연인은 부모님을 뵙는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나의 말에 자신이 아직 살을 빼지 않아서,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하는 커플도 있는데 괜찮다 등의 다양한 말을 하며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나의 연인은 나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결혼을 준비했던 1년은 나에겐 미래를 준비하는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그에게는 원치 않는 의무와 부모님과의 갈등만이 다가오는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이 사람을 내 과제의 팀원으로 삼을 수 없었다. 내 아이에게 이런 아빠를 줄 수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내 자신이 불쌍해서 안 됐다.


다음 날 결혼과 관련된 모든 예약을 파기했다. 이런 행사의 위약금은 무섭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빨리 움직여야 했다.

예약을 파기했다는 나의 말에 연인은 그런 선택을 했냐며 힘들어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도, 파기하는 것도 다 나의 몫이었다.

결혼식 위약금은 어마어마했다. 이 돈은 다 그에게 받아냈다. 몰디브에 가지도 않았는데, 비행기 위약금으로 200을 냈다.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예정된 일이었다. 나는 올해 추석기간을 이용해 신혼여행을 길게 다녀오고 싶었다.

교사 특성상 교사는 방학기간을 이용해서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다. 내 젊은 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10월의 선선한 날씨에 유럽, 미국 어디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았다. 신혼여행을 준비하는 내게 그는 휴가를 낼 수 있다고, 같이 갈 수 있다고 했지만 픽스된 날짜를 말해주지 않았다. 사기업에 다니는 그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기 어려우면 말해달라는 내게 그는 갈 수 있다며 화를 내듯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일주일 정도 여행 일정을 정리했을 때, 그가 다시 내게 말했다. 휴가를 낼 수 없다고. 팀원들이 싫어할 거라고…


왜 일찍 말해주지 않았냐는 말에 자신의 회사 복지가 너무 안 좋아 보일까 봐 그렇다고 했다. 계획을 짜며 고생을 하는 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흘려보냈다. 싸인을 무시한 것이다. 천지신명이 내게 보낸 강렬한 싸인이었는 데 말이다.


결혼을 접고, 연인과의 단단했던 결속이 무너지고, 나라는 인간과 고양이만 남았다.

그에게 나는 좋은 연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내 많은 욕심들이 그 아이를 힘들게 했겠지.

4년간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그가 그저 행복하길 바란다.


4년간의 연애로 포동 해진 몸을 정리하려 러닝을 시작했다. 하루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잔소리하고, 퇴근해서 간단한 저녁을 해 먹고

해가 지면 달리러 나간다. 1시간을 달리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한 뒤 찰리 멍거의 책을 읽고 잠든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운동시키고 좋은 배움들을 준다. 그가 없어도 나는 온전한 사람이다. 그간 소홀했던 주변 사람들과 자리를 하며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2025년의 결혼 사건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그런데….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언제 결혼하냐고 묻는다.

저번에는 교장선생님 이 물었고, 이번에는 교감 선생님께서 확인사살을 하셨다.

두 분이서 말씀을 안 나누시는 걸까? 괜한 원망이 들었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내 깃털 같은 주둥아리였다. 좀 더 무거워질 필요가 있다.


언제 결혼하냐는 교감 선생님의 질문에 아래로 엑스자를 그려 보였다.

두 분이 눈 맞춤을 나누고, 분위기는 숙연해진다.

하지만 괜찮다. 이건 슬픈 파혼이 아니고 내 인생의 구원이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나를 지켜주려고 한 일이겠지. 아빠가 보고 싶다.


한동안 우리 학교의 가십거리는 나다.

하지만 괜찮다. 나중에 늙어서, 파혼한 선생님이 있다면

내 경험을 가지고 심리상담을 해줘야지.


모든 경험은 다 쓸모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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