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 천사가 산다
우리 반에는 빈이라는 남자아이가 하나 있다. 여학생 10명, 남학생 7명.
우리 지역만 한정된 이야기 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맡은 학급은 항상 여자 아이들이 더 많았다.
알밤 같은 7명의 남자아이들 중 가장 키도 크고 잘생긴 녀석. 거기에 공손한 예의까지 갖춘 2025년 나의 최애가 바로 빈이다.
아이들을 항상 차별 없이 공평하게 보호하고 아껴줘야 하는 선생과 제자의 사이이지만 그 이전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호불호가 성립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도 부모 입장에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있냐고 말하겠지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안 아프진 않아도 좀 덜 아픈 손가락.
빈이는 학기 초부터 아껴줄 수밖에 없는 아이였다. 열일곱 개의 손가락 중 내게는 깨물 생각만 해도 으악! 하게 만드는 손가락이랄까.
3월, 서로 수줍수줍 할 수밖에 없던 첫 만남의 달.
빈이가 슬쩍 나를 불렀다.
선생님
응~ 왜?
이거 드세요.
빈이가 불쑥 내민 달달구리 하나. 먹이를 주는 행동은 인간이 인간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전하는 가장 원시적 형태의 표현이다.
어떻게 가져온 간식인지 물으니, 영어시간에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 영어 전담선생님께서 주신 간식이란다.
너 먹어~ 빈이 먹어~ 해도 빈이는 돌려받지 않고 가버린다. 그렇게 빈이가 준 간식이 내 책상 서랍에 쌓였다.(미안하지만 나는 다이어트 중이다.)
마이쮸 사과맛, 꿀꽈배기맛 사탕, 애플망고 맛 후렌치 파이 등 빈이가 건네준 가지각색의 유니크한 간식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 간질간질한 열두 살 남자아이가 있다니, 이런 아들을 가지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어지는 것이다.
빈이는 액티브한 녀석이다. 녀석이 입는 옷은 항상 합기도 도복. 항상 몸을 던지며 놀기 때문에 한쪽 무릎은 다 해지고 뚫려있다.
하루에 몇 시간을 뛰어노는 데에 쓸까 싶은 녀석은 공을 참 잘 잡고 잘 던진다. 야구마니아 훈이와 합쳐지니 우리 반은 옆반과 피구게임에서 져 오질 않는다.
녀석들이 피구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입에서도 오오! 대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진지한 아이들의 모습들이 보고만 있어도 즐겁다.
빈이는 인기도 많다. 우리 반의 조금 빠른 여자 아이들은 다 빈이의 옆자리를 노린다.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레몬이 빈이의 옆자리를 차지한 후로 다른 여자 아이들이 티를 내는 일은 줄어들었다. 어린아이들도, 눈은 다 똑같은 것이다.
모든 게 다~ 좋은 빈이에게 다만 좀 독특하다 싶은 특징 하나는 바로 녀석이 항상 마스크를 고집한다는 것이었다. 빈이는 항상 마스크를 끼려 했다. 점심시간에는 마스크를 한 손으로 잡아당기고 다른 손으로 숟가락을 마스크 안으로 넣어 밥을 먹었다. 리코더 시간에 역시 마스크를 끼겠다고 우겨 나에게 실컷 혼났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마스크 아래로 리코더를 넣어 불뿐이었다.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것일까? 싶었지만 내 눈에 빈이는 마스크를 끼나 안 끼나 훈훈한 아이였다.
인간은 다양하고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하고 넘어갔다.
4월 아이들을 데리고 육상경기대회를 진행했다. 역시 우리 학년 1등은 빈이었다.
시대회를 내보내기 위해 아이들을 달리기 팀과 투척 팀으로 나눠 훈련시켰다. 체육선생님은 달리기 팀, 나는 투척 팀을 지도했다.
체육을 전공한 선생님이 육상을 지도해야 전문성이 있을 것 같아 맡겼는데, 운동장에서 낙하산을 매달고 달리는 달리기 아이들을 보니 역시 이렇게 나누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팔을 글씨 쓰는 데만 사용한 내가 투척 팀을 어떻게 지도했는지에 대해선 다음에 기록을 남겨보겠다.(투포환 전원 순위권 입상이라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2달간 고대해 온 육상경기대회날! 1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가려니 너무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의 목을 축일 음료들이 가득 담긴 20kg 가까운 아이스 박스는 덤이었다.~ 여자 둘이서 아이스 박스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체육부장 자리를 지키려면 불만을 내뱉을 순 없는 법. 묵묵히 버텼다.
교육장기 육상경기대회에 아이들을 인솔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혹시 갈 일정이 있는 선생님이 있다면 팁을 몇 가지 남긴다.
팁 1. 돗자리를 1층에 깔아라. (매우 중요)
나는 계단 위 그늘 자리에 돗자리를 깔았는데, 아이들 경기 순서로 호출될 때마다 계단을 왔다 갔다 하느라 장난이 아니었다. 경기일 조금 일찍 도착해 1층 그늘이 지는 자리를 어떻게든 사수해라.
팁 2. 아이들이 있는 단톡방을 반드시 개설해 둬라.
학생들과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는 요즈음, 아무 준비 없이 경기장에 도착하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아이들이 경기 순서 때마다 내려와야 하는데 아이들은 여럿, 선생님은 하나인지라 일일이 데리러 갈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연락이 가능하도록 단톡방을 만들어두어야 한다.
팁 3. 아이들 점심은 가게와 전날에 미리 연락해 배달까지 무리 없도록 준비해라.
대회 당일날 감독과 코치는 매우 매우 매우 정신이 없다. 당일날 배달 식사를 알아보기엔 너무 정신이 없으니 아이들이 3명 이하가 아니라면 전날에 미리 식사를 예약해 둬라.
쉴 새 없이 아이들의 경기 시간에 맞춰 등록하고 아이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아이들이 경기할 때 코치나 감독이 끼어들어 훈수를 두면 학생은 탈락이다. 그동안 아이들을 연습시킨 것을 믿고 먼발치에서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빈이는 100m 달리기 순서였다. 빈이가 출발 라인에 서서 스타트 자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녀석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뿔싸! 빈이의 마스크 고집을 생각하지 않은 나의 실수였다. 훈수를 두면 탈락이기에 티 나지 않게 마스크를 내리는 시늉을 여러 번 했지만 빈이는 나를 못 본 것인지 마스크를 낀 채로 그대로 출발했다. 모두 마스크 때문은 아니겠지만 빈이의 기록은 조 1등, 전체 4등이었다. 속이 터지는 일이었다. 빈이를 구박할까 싶었지만 이미 정해진 결과, 화를 내서 무엇하리 싶었다. 육상경기대회는 끝났고 우리는 보통의 학교 생활로 돌아왔다.
어제 쉬는 시간, 선생님들과 모여 이야기를 하는 중 빈이 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빈이 동생 역시 마스크를 고집한다고 했다.
오빠도 그러는데 동생도 그래요? 둘이 독특하네~
그게, 이유가 있대. 내가 들었는데 빈이 어머님이 많이 아프셨어서 면역력이 떨어져 있대.
그래서 병에 걸려가면 안 되니까 아이들이 마스크를 끼는 거래
오 마이 갓.
천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반 녀석 하나가 천사였다.
모든 부분이 다 예쁜 최애가 가졌단 하나의 흠이, 이제는 애틋하게 까지 보인다.
나도 이런 아들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