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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떼굴떼굴 굴러라!

올 한 해 아픈 손가락

by 프레디

오래간 글을 쓰지 못했다. 사랑한 이를 잃은 슬픔에서도, 내가 얼마간 준비해왔던 결혼에 실패한 것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3,4달은 태블릿 키보드를 칠 생각도 못했으니 내 안에서 큰 바람이 불긴 불었나보다. 사람에게 시간은 가장 좋은 약이라고 했을까. 아무리 아파도 시간은 가고, 아무리 슬퍼도 출근은 해야한다. 내 감정의 축이 고장나있어도 내 교직생활은 꾸준하고 묵묵히 계속 되었다.


조용하고 어여뿐 올 한 해 아이들을 맡으며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 학교 내에서 학폭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성 부장님과 교장, 교감선생님께 5학년은 퍼펙트! 라는 칭찬을 받았다. 당연히 내 덕은 아니고 아이들 덕이었다. 그런데 그런 올 한해 우리학교 5학년의 명성에 금을 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의 대회 인솔로 출장을 나가있던 날이었다. 학생의 유도 경기를 기다리던 중 학년부장 단톡방에 사진이 몇 장 올라왔다. 엘리베이터 cctv를 캡처한 것 같았다. 학교 인근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액체가 가득 담긴 2리터 들이 페트병과 나무 판자를 인도를 향해 투척한 초등학생들을 경찰에서 수소문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검지와 엄지를 주욱 늘려 어떤 녀석인가 하고 살펴보니 오 마이 갓, 누구도 아닌 우리반 도토리 였다. 옆에 붙어있는 녀석은 누군가 보니 요새 도토리와 자주 어울려논다 싶던 한 학년 어린 동생이었다. 큰 신경을 써주지 않아도 별 사고 없이 잘하는 녀석들이기에 당연히 우리 학년은 아니겠지 했는데 뒤통수를 댕~ 하니 맞은 느낌이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우리반 학생임을 밝혔다. 올 해 퍼펙트 도장에 줄이 그어지는 순간이었다.


출장을 뒤숭숭한 마음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도토리에 대해 고민했다. 도토리의 부모님에겐 경찰의 연락이 갈 것이라 했다. 생각해보면 도토리가 저지른 짓은 굉장히 끔찍한 일이 될 수 있었다. 철없는 초등학생들이 옥상에서 던진 물체에 맞아 동네의 어떤 사람이 크게 다치거나 죽었다면? 뉴스 헤드라인에 나올 법한 사건이었다. 도토리의 보호자가 아프고, 도토리가 가정에서 충분한 보호와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줄곧 도토리는 나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단순히 내가 맡은 아이들이 한 해간 아무일 없이 진급하게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도토리가 바르게 자랐으면 했다. 아무리 높은 충동성과 낮은 숙고성으로 하루에도 10번씩 장난과 사고를 치지만, 도토리의 내면에는 바른 영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출근해 도토리를 잡았다. 도토리의 눈에 눈물이 뚝뚝 나오게 혼쭐을 내주는 게 목표였지만 역량 부족으로 눈물을 뽑아내진 못했다. 도토리의 반성문엔 남탓만이 적혀있었다. 놀이터에서 놀자고 했는데 옥상에서 놀자고 이끈 동생 탓, 옥상에 올라갔는데 물병과 나무판자를 발견한 동생 탓, 던지지 말자고 했는데 기어코 던지자고 우긴 동생 탓. 그래도 한 살이라도 많은 네가 하지 말자고 했어야지! 질책을 했지만 도토리의 귀에는 나의 혼이 그리 오래 가지 않는 듯 하다. 혼이 나서 시무룩해졌는지, 또는 시무룩한 얼굴을 일부러 만들었는지 모를 녀석에게 선생님은 네가 바르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커서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듯이 말을 건넨다. 좋은 인간이 되기 위해선 이렇게 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도토리가 알아들었는지 뭐했는지, 반성문에는 부모님 싸인을 받아오라고 했다. 도토리는 다음 날 아빠가 너무 늦게 집에 와서 싸인을 못 받았다고 하더니 그 다음 날에는 위조한 싸인이 적힌 반성문을 들고 왔다. 아아! 이 녀석을 그냥!


하루가 멀다하고 도토리는 장난을 치고 나는 녀석을 혼내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의 결혼식 방문으로 바쁘게 조퇴를 내고 나간 날에는 도토리 녀석이 계단에서 침을 뱉다 다른 학년 학생을 침으로 맞혔다는 말을 듣고 뒷 목이 뻣뻣해져옴을 느꼈다. 그렇게 주의를 주고 반성문을 쓰도록 한 게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나의 관심과 지도가 모두 헛수고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다시 사건이 발생했다. 아침 출근을 마치고 책상에 앉아있는 내게 도토리와 아기상어 소년이 다가왔다. 도토리는 잔뜩 울상이었고 아기상어 소년은 뭔가 기죽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야?


이빨이 빠졌어요!


도토리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1년 가까이 지켜본 결과 상황에 맞지 않게 밝은 목소리, 과장된 행동을 취하는 건 도토리 소년이 자신의 불안과 긴장을 줄이려는 전략으로 보였다. 도토리의 말에 입 안을 살펴보니 정말 이가 부셔져있었다. 도토리 소년이 보여준 이 조각을 살펴보니 이미 잔뜩 손상되있던 이에 조그마한 충격이 가해지자 이가 부셔진 듯 보였다. 아기상어 소년은 자신이 따봉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도토리가 고개를 숙여 이를 엄지로 치게 되었고 이가 부셔졌다고 말했다. 잘못했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아기상어 소년과 상황에 맞지 않게 붕붕 뜬 도토리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 밖에 나지 않았다.


두 녀석에게 사건 정황을 정확하게, 육하원칙에 맞춰 쓰도록 지시한 후 양 쪽 보호자에 연락을 취했다. 도토리의 보호자는 연락을 받지 않았고 아기상어의 보호자는 잔뜩 뿔이나 있었다. 둘 다 예상대로였다. 오후가 되니 도토리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열 번이 넘는 통화를 마치며 두 보호자가 서로 전화를 주고 받도록 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학교 안에서 발생한 고의성을 띄지 않은 사고는 학교안전공제회에 접수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사안 접수를 마치고 도토리의 진료 결과를 기다렸다. 아이들이 5학년인 만큼 영구치가 손상된 것은 도토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불편함이 계속 따라다닐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걸려온 전화에 도토리의 보호자는 도토리를 치과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상태가 안좋아 뽑을 이였으니 진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이다. 도토리는 올 한해 나의 아픈 손가락이다. 내 아픈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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