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 떠난 건축가. 그러나 그가 설계한 것은 속박이었다.
2025년 아카데미 화제작, 《브루탈리스트》
브루탈리스트는 202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큰 화제를 모았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은 물론이고, 애드리언 브로디(남우주연), 펠리시티 존스(여우조연), 가이 피어스(남우조연) 등 주요 배우들도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
러닝타임 3시간 34분. 그리고 영화 중간, 15분간의 인터미션.
이 짧은 공백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영화의 일부가 된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좋았다’라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아름다웠지만 불편했고, 견고했지만 균열이 보였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영화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도착과 속박 – 자유를 찾아온 남자
"가장 희망 없는 노예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 괴테, 『파우스트』
영화는 이 문장과 함께 시작된다.
주인공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
유대인 건축가였던 그는 전쟁과 탄압을 피해 헝가리를 떠나 미국으로 향한다.
낯선 땅에서 그는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속박이었다.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건너간 라즐로는 친척 아틸라가 운영하는 가구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재벌가 해리슨 리 밴 뷰런(가이 피어스)의 아들 해리 밴 뷰런(조 알윈)에게서 한 가지 의뢰가 들어온다.
“아버지를 위한 깜짝 선물로 서재를 리모델링해달라.”
라즐로는 열정을 쏟아 공간을 설계한다. 그러나 완성된 순간, 해리슨은 격분하며 그를 내쫓는다.
"내 서재를 망쳤군. 당장 나가!"
돈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린 라즐로.
그는 결국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디자인한 서재는 LOOK 잡지에 실리며 큰 화제가 된다.
이제는 해리슨이 직접 그를 찾아와 더 거대한 프로젝트를 맡긴다.
예술과 권력 – 건축과 인간의 관계
"정육면체를 이해하려면 직접 만들어봐야 한다."
– 라즐로 토스
해리슨은 어머니를 기리는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 건축을 라즐로에게 맡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관심은 건축이 아니라 라즐로 자신을 향하게 된다.
권력자는 예술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예술을 소유하려 하는가.
라즐로는 예술가이지만, 동시에 해리슨이 지배하고 싶은 존재가 되어간다.
인터미션 – 영화 속 숨겨진 장치
영화 중반, 15분간의 인터미션.
화면에는 라즐로와 에르제벳의 결혼식 사진이 떠오른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러나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순간이 그들의 마지막 평온한 시간 이었음을.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다가,
제2막이 시작되기 직전, 현실로 돌아오는 듯한 소음이 점점 커진다.
과거는 아름답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 장면은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제2막 : 대리석과 욕망 – 견고한 자유의 균열
이탈리아.
라즐로와 해리슨은 ‘마가렛 리 밴 뷰런 센터’의 예배당을 꾸밀 대리석을 찾으러 간다.
그리고 마침내, 해리슨은 완벽한 대리석을 발견한다.
"이 대리석은 완벽하다."
그는 감탄하며 대리석을 감싸 안는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대리석이 아닌, 라즐로를 향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라즐로는 점점 해리슨이 만들어낸 세계에 갇혀간다.
그가 원한 건축이 아니라, 그 자신이 작품이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관객은 깨닫는다.
해리슨의 관심이 단순한 예술적 동경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집착과 지배였다.
그리고 그 순간,
해리슨이 세운 완벽한 세계에도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감상평 : 대리석은 깨질 수 있다
자유를 찾아 떠났지만, 결국 속박을 설계한 남자.
견고한 건축을 남겼지만, 그 자신은 얼마나 견고했을까.
대리석은 단단해 보인다. 그러나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가고 부서질 수 있다.
이 영화는 우리가 믿어온 ‘자유’라는 개념에도 균열을 가한다.
“당신이 믿는 자유는, 진짜 자유인가?”
“혹시 당신도 자유롭다고 믿으며 속박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브루탈리스트》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