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잔상은 왜 이토록 온기를 머금는가.

그것은… 기억…

by 해그해그



코끝을 스치는 냄새를 따라 기억과 추억들이 하나둘 피어오른다. 모든 기억은 때로 차갑게, 때로는 따스하게 제각기의 온도를 지닌 듯하다. 돌이켜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무척이나 시리고 추웠으며, 늘 서늘한 공기가 감돌곤 했다.


기억이 닿지 않는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가족은 삶을 부지하기 위해 잦은 이사를 다녀야 했다고 들었다. 먹고사는 일이 처절한 사투였던 시절, 부모님의 보살핌은 내게 닿지 못하는 먼 곳의 이야기였다.


엄마는 가끔 당신의 고단했던 세월을 꺼내놓으며, 갓난아기였던 내게 모유 한 모금 마음껏 먹이지 못해 밥에 물을 말아 그 물을 먹여 키웠다며 미안함 섞인 회상을 하곤 하신다.


지금도 어쩌다 그때 이야기를 하실 때면, 네가 그때 잘 못 먹어서 키가 자라지 못한 것이라며 못내 아쉬워하신다.


논밭으로 일을 나가실 때면 엄마는 겨우 한 살 배기였던 나를 양동이 안에 넣어두셨다고 했다. 긴 하루의 노동이 끝난 뒤 돌아와 마주한 나는, 얼굴과 머리며 옷가지에 풀떼기를 잔뜩 묻힌 채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의 나를 참 순했던 아이라고 기억하신다.


하지만 그 깊은 정적 속에서 홀로 잠들고 깨어나기를 반복했던 나의 어린 영혼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양동이의 둥근 테두리 안에서 세상의 끝을 보았을 그 작은 아이. 지금 내 앞에 놓인 운명이나 내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내가 기억한 모든 것들은 결국 그 차가웠던 양동이 안으로 쏟아지던 햇살 한 줌을 닮아 있다.





코끝에 머무는 서늘한 바람을 따라

기억은 낡은 앨범처럼 한 장씩 넘어간다

계절은 늘 시린 공기 속에 서 있었고

어린 날의 온도는 자꾸만 영하로 기울었다

부모님의 등은 늘 나보다 먼 곳에 있었다


논둑길 위, 덩그러니

놓인 양동이 하나 한 살 배기

그 원 안에서 세상의 끝을 마주하고 있었다

긴 하루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머리칼에 풀떼기 훈장처럼 붙인 채

정적을 이불 삼아 덮고 자던 아이

양동이의 차가운 테두리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가두는 벽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온전히 지켜주던 유일한 품이었을까


그 좁고 낮은 곳으로

쏟아지던 한 줌의 투명한 햇살

지키려 애쓰는 모든 것들은

결국 그 작은 볕 뉘를 닮아 있다

시린 양동이 속에서도

나를 건져 올린 건 어디선가

스며들어 내 뺨을 만지던

그 따스한 빛의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