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을 닮은 세 개의 눈동자

너의 맑은 눈동자

by 해그해그


나에게는 나의 유년을 닮은 세 개의 눈동자가 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첫째와 일곱 살 둘째, 그리고 다섯 살 막내. 아이들의 맑은 눈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잊고 지냈던 나의 어린 시절이 투영되기도 하고, 때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생의 에너지를 느끼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첫째의 탄생은 유독 시리고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첫 아이는 분명 축복이었으나, 그 아이를 온전히 내 품에 안기까지의 과정은 가혹했다. 제왕절개 수술 후 닥친 위급한 상황 속에서 나는 한동안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끔찍한 통증과 싸우며 보낸 이주 남짓한 시간. 갓 태어난 아이에게 모유 한 모금 물리기는커녕 안아주지도 못한 채, 나는 고통의 한복판에 홀로 누워 있었다.


태어난 지 보름이 다 되어 비로소 품에 안았던 첫째의 그 선명하고 단단한 시선을 잊지 못한다. 마치 엄마라는 존재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나를 응시하던 그 눈동자. 그 맑은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내가 견뎌온 고통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것은 고통 끝에 마주한 생의 가장 눈부신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대답의 대가는 너무나 컸던 것일까. 첫째 때의 그 '지옥 같던 기억'은 내 가슴에 깊은 흉터로 남았다. 그래서 둘째와 셋째가 찾아왔을 때, 기쁨보다 먼저 앞선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또다시 그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나에게 모험이자, 어쩌면 생을 건 결단과도 같았다.


그러나 인생은 때로 예상치 못한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겁에 질려 떨고 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둘째와 셋째는 너무나 수월하게 내 품에 안겼다. 첫째 때의 가혹했던 신고식이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평온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첫째가 고통 속에서 피어난 단단한 꽃이었다면, 둘째와 셋째는 그 아픔을 어루만져 주러 온 따뜻한 햇살 같았다. 첫째를 낳으며 겪었던 그 시린 기억들은 둘째와 셋째를 순조롭게 만나며 조금씩 희석되었고, 비로소 나는 출산이라는 과정에 대해 가졌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내 앞에는 세 아들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다. 첫째의 시선에서 강인함을 배웠고, 둘째와 셋째의 평온함 속에서 치유를 얻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 처절했던 시작이 있었기에, 지금 내 곁을 채우는 이 평범하고도 소란스러운 일상이 더욱 기적처럼 느껴진다. 고통을 건너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세 눈동자가 일구어낸 눈부신 숲이다.





비로소 너를 안아 올렸을 때

자그마한 몸을 받친 손목에 차오르던

그 묵직하고도 뻐근한 생의 무게


처음으로 맞닿은 작은 입술

그 여린 움직임에 다시 시작된 찰나의 지옥

비명을 삼키며 마주한 너의 눈은

갓난쟁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단단하게 나를 붙들었다


그 맑은 눈동자 속에 맺힌 나를 보며

비로소 나는 숨을 쉬었다

모든 고통을 연기처럼 흩어버리는

생의 가장 눈부신 대답


모든 게 처음이라서

너라는 우주를 알기엔

나의 품은 너무나 작고 서툴렀다

너는 나에게 너무나 커다란 처음이었다


그 흉터가 무서워 뒷걸음질 칠 때

둘째와 셋째는 햇살처럼 찾아왔다

첫째가 고통으로 피워낸 꽃이라면

동생들은 그 아픔을 어루만져 주러 온 평온


이제 내 앞엔 세 쌍의 별이 빛난다

시린 계절을 건너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부시고도 소란스러운 나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