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이사와 멈춰버린 풍경

by 해그해그


국민학교 1학년, 그리고 3학년. 남들에게는 그저 학년이 바뀌는 평범한 시기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세계가 송두리째 바뀌는 격변의 시기였다. 낯선 동네, 생경한 교실, 그리고 이미 견고하게 짜인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나는 늘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처럼 서 있었다.


원래도 숫기가 없던 아이였다. 새로운 환경에 겨우 발을 내딛기도 전에 다시 짐을 싸야 했던 경험은 나를 더욱 깊은 내면으로 움츠러들게 했다. "나도 저 그룹에 끼고 싶다"는 간절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왜 저들처럼 잘하는 게 없을까"라는 자책으로 변해갔다. 공부도, 얼굴도,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자 마음의 문은 점점 무거워졌고, 나는 그렇게 지독하게 내성적인 아이가 되어갔다.


그 외로움의 정점은 중학교 1학년 2학기, 또다시 시작된 전학이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곳에도 여전히 나의 자리는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저마다의 견고한 성을 쌓아 올린 상태였고, 나는 그 성벽 주위를 맴도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하교 시간, 시끌벅적하게 무리 지어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등진 채, 나는 늘 텅 빈 운동장을 홀로 가로질러 걸어 나왔다. 그 넓은 운동장의 적막함은 마치 내 마음의 빈터와도 같았다.


학교에서 나는 말이 없는 아이였다. 아니, 말을 할 용기가 없는 아이였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두고 누군가는 '내숭을 떤다'라고 속삭였다. 억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친구들 사이에서 거진 입을 떼지 않는 나를 보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오해는 그것뿐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오해조차도 결국 나의 성격이 한몫한 결과라는 생각에 자책은 더 깊어만 갔다.


드라마 속에는 늘 십 대부터 서른, 마흔이 될 때까지 곁을 지키는 '고향 친구'가 등장한다. 골목길 어귀에서 이름을 부르면 달려 나오는 친구, 눈빛만 봐도 내 유년의 가난과 기쁨을 다 아는 그런 동네 친구들.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그 풍경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의 유년은 조각조각 끊긴 필름처럼 여러 동네에 흩어져 있었고, 어디에도 온전한 내 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이제 나는 이사를 결정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이사를 가기가 꺼려진다. 단순히 짐을 싸고 푸는 번거로움 때문이 아니다. 내가 겪었던 그 막막한 외로움, 텅 빈 운동장을 혼자 걸어 나오며 느꼈던 그 시린 공기를 내 아이에게만큼은 절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한 곳에서 오래도록 친구들과 함께 자라나는 기쁨을 선물하고 싶다. "우리 어릴 때 기억나?"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평생의 단짝을 곁에 두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것은 아마도 텅 빈 운동장에서 홀로 발끝만 보며 걷던 어린 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가장 간절한 위로이자 부탁일지도 모른다.





모래인지 얼룩인지

모를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걸었다

한때 소란했을 운동장에서

나만 홀로 빠져나온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하굣길

먼저 외로움이 있었고

그다음 모래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우두커니 선 내가 있다

나는 울고 있을까 혹은, 무표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