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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연기력

부산출장

by 버디나라 나홍석


아내의 연기력

오랜만에 부산 출장길이다.

집에서 수서역까지 25분이면 충분하지만, 좀 더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런!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작은 접이식 우산을 받아 나왔다. 몇 걸음 걷다가 멈춰 서서 혹시 잊은 물건이 있나 다시 확인하는데, 지갑이 없었다.

나는 급히 발걸음을 돌려 또다시 집으로 가며 아내에게 전화했다. “지갑 가지고 1층으로 내려와 줘 빨리!”

전화 너머로 아내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간신히 수서행 3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때 아내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기차는 탈 수 있냐고.

나는 겨우 출발 15분 전에 수서역에 도착했고,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아내에게 보냈다.

아내의 눈에 비치는 나는 종종 서투른 사람이다.

부부는 함께하는 시간이 길고 모든 것을 공유하기에, 때때로 어설픈 모습을 많이 들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는 나 자신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정도 가지고 뭘...

부산역에 거의 도착할 무렵 또다시 아내의 메시지가 왔다. ‘도착했어요?’

분명 부산역 도착 시간을 오후 1시라고 아내에게 말했던 것 같고 지금은 12시 50분인데. 제시간에 기차를 탔는지 의심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남편이 멀리 떠나니 걱정되어 묻는 것일까?

“왜?”라고 되물으니, 아내는 “궁금하고 사랑해서”라고 말한다.

아내가 많이 늘었다. 연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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