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대위 구름 그리고 손오공
11월 어느 날 자정을 눈앞에 둔 시각, 어두운 거실 옆 식탁 위 조명 아래에서 얼마 전 서점에서 산 책을 숙제처럼 두어 시간 읽었다. 이제 자야겠다 싶어 안방으로 들어갔다. 항상 일찍 잠드는 아내는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있다. 안방 입구 반대편 창에는 암막 커튼이 쳐져 있어 그야말로 암흑이다. 어둡게 자는 걸 좋아해서 이사 오기 전부터 사용하던 커튼인데, 더불어 반대편 아파트에서 보일까 싶어 늘 굳게 쳐놓곤 한다. 시골과 달리 서울의 주택 근접 환경때문에 밖을 조망하는 창의 역할은 좀 접어두고 있다.
침대에 누우려다 문득 커튼을 열어보고 싶어졌다. 창문까지 함께 열자 깜깜할 거라 생각했던 밤 풍경은 의외로 흐릿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집 근처 우면산으로 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운 겨울 향기와 함께 방으로 훅 스며들었다. 겨울이 그렇게 들어오고 있었다.
환한 쪽으로 눈길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집 앞 골목길 건너편 아파트 경비실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경비실의 네모난 작은 창 속에 경비원이 있었고, 경비원은 불룩한 배와 허름한 청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 네모난 창 속의 그가 네모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공상으로 이어진다.
네모난 모양으로 움직이고, 네모나게 굴러가는.90년대 후반 남성그룹 푸른 하늘의 '네모의 꿈'처럼 말이다.
수년 전 벤 스틸러 감독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나는 놀랐었다.
내 인생 영화 중 하나가 된 그 영화의 주인공 월터가 영화 속에서 종종 공상을 하는 장면들을 보며 ‘나같이 문득문득 공상을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하고 안도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이 조금씩 보였다. 하얀 구름이었을 텐데, 까만 밤하늘과 대비되는 정도의 희뿌연 색이었다. 그 구름 하나를 가만히 보고 있는데, 어라! 움직이지 않는다.
좀 더 본다. 그래도 여전히 멈춰있다.
어렸을 때는 누구나 하늘을 보며 구름이 흘러가는 걸 많이 봤을 거다. 1970년대 내가 살던 봉천동에는 국가의 주택확보 건축계획에 따라 터를 고르고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축대'가 정말 많았다.
‘축대’ 위 들판에서 친구들과 한껏 뛰어놀다 풀밭에 누워서 하늘을 보며 구름을 쫒는 놀이를 했다.
평지 주택가 위쪽 구릉지에는 온통 축대였고, 그 안에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펼쳐져 있었다.
방과 후 책가방만 휙 던져놓고 풀무치 메뚜기가 푸드덕 날아다니던 그 축대의 들판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놀던 게 우리들의 일상이었다. 그 들판에 누워 한 뼘 한 뼘 움직이는 구름들을 한참을 보다보면, 어느새 구름 모양이 작아졌다 커졌다 하고 또 흩어졌다가 합쳐지기도 했다. 손오공의 근두운 같은 구름을 보며 오공이는 언제 나오나 하다 우리들 모두 스르르 잠이 들곤 했었는데.
그런 그곳은 지금 아파트, 원룸, 빌라로 가득 차 있다. 본가에 가서 가끔 위쪽 축대가 있던 그곳을 바라볼 때면 내 눈에는 아직도 그곳에 축대와 풀들과 그 때의 구름들이 그대로 있는 것만 같다.
지금 내 집 창밖 위의 움직이지 않는 구름. 이제는 내가 구름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건가 보다.
가끔 하늘을 본다 해도 단 몇 초만 볼 뿐이다.
이제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언제쯤 다시 그렇게 풀밭에 누워 그럴 수 있을까.
구름은 내가 다시 오길 기다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