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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고 만난 또 다른 세계

그 때 그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싶다

by 버디나라 나홍석

누구에게나 오래된 친구는 한 두 명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두 부류의 친구들이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 그리고 대학 시절 친구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은 클래식기타 동아리에서 만난 형균이다. 요즘은 '동아리'라고들 하는데 어감이 영 탐탁지 않다. 뭔가 좀 여리여리하다. 당시에는 '써클'이라고 했는데 뭔가 단단한 결속력이 느껴지는 단어 아닌가. 군 제대 후 학교 앞에서 자취할 때도 형균이와 같은 방을 썼고 방학 때도 자주 같이 시간을 보냈다. 방학 때는 을지로 나염공장이나 이태원 근처 캐피탈호텔(지금의 몬드리안 호텔) 건설현장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다.


형균이와 친해지기 시작한 건 우리 집과 그의 집이 가까웠기 때문이지 싶다. 학과가 다르고 수업시간이 달라서 학교 갈 때는 따로 갔지만, 집에 올 때는 같은 방향이니 자연스럽게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았다. 수업 후에는 거의 매일 동아리방을 갔었기 때문이다. 기타를 치다가 독쟁이 시장에서 곱창전골에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이 그때 우리들의 일상이었다.


우리가 어울리기 시작하던 초반, 이 녀석에게는 아주 신선한 구석이 있었다. 동아리에 오게 된 이유를 들어보니, 입학하자마자 대학 밴드들 기타리스트 오디션을 봤는데 다 떨어지고, 황당하지만 클래식기타 동아리도 기타 치는 곳이니 그냥 왔단다. 게다가 동아리방에서 선배들 없을 땐 이상한 기타곡들을 치곤 했다. 노래 좀 하는 지환이는 헤비메탈 보컬의 샤우팅 창법으로 그 곡들을 멋지게 불러젖히고 말이다. 그래서 얘네들은 동아리를 곧 탈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졸업할 때까지 잘만 다녔다. 연주회도 꼬박꼬박 참여하고, 심지어 형균이는 한해 최고의 행사인 9월 정기연주회 지휘자까지 했다.


나도 중학교 때부터 팝송을 많이 들었고 통기타를 좀 쳐왔기에 음악을 좀 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내가 좋아하던 달달한 팝송들과 달리 응축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 같은 메탈음악들은, 대학1학년 감성충만하고 혈기왕성한 나에게는 비할 데 없이 자극적이고 매혹적이었다. 이후에도 계속 형균이는 나에게 이 곡 저 곡들을 소개해주며 메탈과 Rock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Loudness, Black Sabbath, Dio, Led Zeppelin, Metallica 등 전설적인 메탈밴드들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축제 때도 밴드 공연만을 따라다녔다. 『노르웨이숲』에서 와타나베가 미도리와의 섹스를 통해 달콤하고 매력적 쾌락을 넘어 위안과 회복을 받았던 것처럼 나 역시 메탈 음악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였다.


물론 지금도 김광석, 김동률을 좋아하고 올드 팝들도 즐겨 듣는다. 당연히 클래식기타 동아리 멤버였으니 J.S. Bach의 무반주 첼로조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등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있다. 매우 다양한 음악적 즐거움을 나는 향유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경험하며 음악적 폭과 깊이가 달라졌다. 음악적 즐거움 외에 나에게는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낯설고 신선한 세계를 선택하는 것. 그것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이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경험했기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나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움을 선택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글을 내 '친구' 형균이에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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