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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50대 상경기

10.서울에서 알바하기 - 식당

by 구호선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알바 자리는 식당이었다. 식당 알바는 홀서비서 아니면 주방 식기세척이었는데 홀서비스는 주로 이삼십대의 젊은 층이 맡고 나이가 있는 사람은 식기 세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이런 경계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홀, 주방을 골고루 맡으면서 경험을 쌓았다.

내가 식당에서 알바를 하다니. 평생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서울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컸고 수입도 짭짤해서 직장을 못 구해서 쉬는 기간 그리고 직장을 다니더라도 주말에는 쉬지 않고 알바를 알아봤다. 알바 자리는 쑨,알바몬 같은 앱을 통해서 구했다.


제일 처음 일을 하게 된 곳은 강남에 자리잡은 한국식 퓨전 게장 식당이었다. 이 식당은 3년 연속 미슐랭 맛집으로 선정되어서 손님의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서양인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일본, 중국 등 동양인이 절반이었다. 외국인들은 해외 여행을 하게 되면 미슐랭 맛집을 찾아다닌다는 사실을 이 식당에서 처음 알게 됐다. 상당히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식사 시간마다 예약이 가득찼고 예약의 대부분은 외국인 방문객이었다.

식당 알바는 보통 11시 쯤 시작해서 두세시까지 점심 타임을 끝내고 두시간 정도 브레이크 타임을 가진 후 다시 5시부터 저녁타임이 시작된다. 문제는 브레이크 타임 시간 동안은 알바 급여가 계산되지 않고 알아서 시간을 보내야 된다. 어딜 가기도 애매한 시간이어서 강남 구경하는 셈치고 인근을 돌아다녔다. 8시경에 저녁 타임이 마무리 되면 다음날 오후쯤 일급을 받았는데 시간당 보통 10,000-13,000원 정도라 7시간 정도 일하면 7-8만원이 입금됐다.


손님이 착석하면 주문받는 일과 주문받은 음식을 내주는 일 그리고 손님이 나가면 치우는 일로 나누어졌는데 처음하는 식당일이라 어색하고 서툴기는 했지만 외국인들과 간단하게 영어로 소통하는 재미도 있었고 미슐랭이 왜 중요한가를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첫 식당 알바는 나름 재밌었고 배운 것도 있었지만 두 번째 부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식당 알바는 여의도 더 현대백화점 지하의 모 식당에서 주말에 일하게 됐는데 여기는 손님이 잠시도 끊기질 않아서 숨 돌릴 틈이 없었다. 바쁜 매장이다보니 직원들도 예민해서 짜증내기 일수였고 삼십대 정도로 보이는 여직원의 버릇없는 태도에 순간 열을 받기도 했다. 백화점이라 깔끔할거라는 생각을 하고 갔는데 너무 손님이 많아서 힘든 식당이었다. 앞으로는 백화점 내부 식당은 안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왔다.


쿠팡에서도 그렇고 식당알바를 하면서 느낀 점은 "차라리 몸이 힘든게 낫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몸이 힘든 일을 한다고 마음이 편하진 않다. 나도 살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는 많아도 몸이 힘든 일은 별로 해보진 않았는데 몸이 힘든 일을 해보니 정신적 스트레스도 같이 받는다. 갑과 을 사이의 스트레스가 아니라 을과 을 사이의 스트레스다. 엄격히 따지만 을갑과 을을 사이의 갑질이라고 보면 된다.

세 번째는 방이동에 위치한 퓨전 술집이었는데 저녁 타임으로 알바를 갔다.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알바를 구해서 알바비를 좀 더 받을 수 있었다. 역시 하는 일은 비슷해서 주문받고 치우는 일을 주로했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매니저라고 불리는 관리자가 보통 깐깐한 게 아니었고 알바에게는 아주 혹독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나이도 있고 해서 나한테는 안 저러겠지 했는데 착각이었다. 손님이 나가고 나서 테이블을 치우는 과정에서 본인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는다고 민망할 정도로 짜증을 내며 다른 일을 시키는 것이었다. 순간 욱해서 다 집어던지고 나올뻔 했지만 마무리는 해야겠다 싶어 겨우 마치는 시간을 채우고 나왔다. 앞으로 방이동 쪽 알바는 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많아서 바쁘기도 했지만 일하는 직원들의 갑질이 만만치 않다. 역시 을갑의 갑질이 갑의 갑질보다 더 혹독하다.


을지로의 국밥집에서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다. 주력 설거지는 나처럼 50대로 보이는 경험많은 선배가 했고 나는 옆에서 한번 더 헹구거나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설거지는 좀 지저분한 면은 있지만 다른 간섭은 받지 않아 괜찮았다. 설거지 선배는 얘기를 나눠보니 40대 후반이었고 건설업종에 종사하다 요즘 일거리가 없어서 알바삼아 식당 주방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역시 나처럼 일일 알바였다. 우리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대화가 좀 통했고 설거지 선배가 이 가게에서는 일을 자주해서 다른 직원들이 간섭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을갑의 갑질에 당하지 않고 오롯이 설거지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초밥집 주방, 중국집 서빙, 건강식당 사무 등 다양한 식당일을 접하게 됐는데 그때마다 힘들었지만 나름 경험하는 재미가 있었고 덤으로 수입도 짭짤했다. 단지 식당일을 하면서 오래 서 있다보니 허리가 계속 아프기 시작해서 가능하면 짧은 시간 일하는 알바로 작전을 바꿨다.

그리고 식당일이 아니라도 커피숖이나 베이커리, 편의점 등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이러한 업종은 이삼십대와의 경쟁에서 항상 밀려서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다. 특히 편의점은 내가 운영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좀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알바생으로 50대를 고용하는 편의점은 없고 결국 식당을 계속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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