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50대 상경기

9.서울에서 알바하기 -쿠팡

by 구호선

서울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얻기는 힘들었지만 중간중간 알바를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웬만한 식당이나 커피숖, 편의점 등의 자영업에는 정식 직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당연히 알바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소수의 대기업이나 금융권의 정직원이 아니면 다수의 알바 직원으로 이원화되는 구조다. 중간이 없이 양극화 된 일자리는 그대로 빈부 격차로 이어지고 사회 이원화의 원인이 된다.


알바 중 제일 하드코어하다고 소문난 알바가 바로 쿠팡이다.

특히 여름에는 쿠팡알바하다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렸고 실제로 쿠팡택배나 알바를 하다 사망한 사람이 수십명에 달했다. 쿠팡알바는 웬만해서는 이삼십대가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중장년층이 수월하게 갈 수 있는 알바다. 알바의 대명사로 불리는 편의점이나 커피숖 등은 젊은 층과 경쟁해야 돼서 내가 진입하기는 힘들었다.

나는 2024년 9월 초에 쿠팡알바를 일주일간 다녔다. 증권사 입사에 계속 실패하면서 가만 있을 수는 없었고 뭐라도 해야겠기에 선택했던 것이 쿠팡이었다. 그 외는 딱히 바로 할만한 일거리도 없었다.

평년 같으면 9월초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가을 분위기가 묻어나야 하지만 이번 여름은 달랐다. 올해는 9월말까지 30도를 넘는 불볕 더위가 이어졌고 9월 초에는 한여름과 같은 날씨였다.

처음 쿠팡알바를 하게 되면 수당이 몇 만원 더 붙게 되고 일주일에 5일 이상 하면 주휴수당도 붙기 때문에 웬만한 식당이나 호텔보다 일당이 조금 높았다.

날씨가 여전히 더웠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문자로 지원 날짜를 입력하고 인천캠프에 저녁 6시부터 1시 타임에 지원을 했다.

다행히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 근처로 통근버스가 지나가고 있어서 출퇴근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첫 날 출근했을 때 저녁무렵이었는데도 날씨는 30도를 넘었다. 우선 간단한 교육을 받고 쿠팡 자체 앱에 출근 입력을 한 후 현장으로 배치가 됐는데 거대한 물류창고였다. 실내에는 냉방 시설이 없어 후덥지근한 날씨에 중간중간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같이 교육을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신입도 있었고 경험이 많은 사람도 있었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의외로 여자분들이 많았다. 이렇게 힘든 일에 여자분들이 지원을 많이 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고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일을 마칠 무렵에는 같이 일한 여자분들에 대한 걱정이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첫 임무로 상하차가 배정됐다. 상하차는 트럭에서 파레트에 실린 물건을 빼오면 그 물건을 컨베이어 위로 올리는 작업인데 쿠팡 알바 중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쿠팡 물건 중에는 가벼운 것도 있었지만 쌀이나 대형 물건처럼 무거운 것도 많았고 이 물건들을 쉴새없이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렸다. 잠시 쉴틈도 없이 물건이 들이닥쳤고 마치 컨베이어벨트의 일부처럼 정신없이 일해야만 했다. 아마 1900년 초반 테일러가 제시했던 컨베이어의 동작연구같은 시스템이 바로 지금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한시간 정도 정신없이 물건을 내리고 올리고를 반복하자 땀이 비오듯 쏟아졌고 갈증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사무실에서 교육받을 때 왜 각자 생수를 두 세개씩 들고 내려왔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잠시 관리자에게 생수를 달라고 하고 벌컥 벌컥 한병을 원샷에 다 마셔버렸다.

일도 힘들고 날씨도 무지 더워서 정신없을 지경인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관리자들의 행태였다. 보통 이삼십대 젊은층들이 관리자라고 각 파트별로 한 두명이 붙어서 일을 지시하고 있었는데 잠시도 쉴틈 없이 일을 시켰고 조금 실수하면 아버지같은 사람에게 고함치기가 일수였다.

나는 이게 도대체 어느 시대인가 싶어서 고함치는 젊은 관리자를 한번 쬐려봤더니 다른 관리자가 와서 중간에서 말리기도 했다. 물론 싸운 것도 아니고 부딪힌 것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볼때는 내 태도가 싸울 듯이 보였나보다. 나는 말리는 관리자에게 저 친구가 너무 감정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짜증을 많이 낸다고 얘기하며 주의시켜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고 나니 그 짜증쟁이 젊은 친구는 좀 수그러드는 모양을 보였다.

어쨌든 최악의 상황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있으니 중간 휴게 시간이 40분 정도 주어졌다. 처음 모였던 교육장소로 가서 물을 다시 두 병정도 마셨고 의자에 축 늘어져서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다. 아까 그 여자분들은 도시락 비슷한 간식거리를 사와서 나눠먹고 있었다. 나도 갑자기 허기가 졌는데 옆에 앉아있던 여자분이 바나나를 하나 주길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먹었다.


잠시 그 분과 얘기를 해보니 두세달 정도 여기 알바를 왔다고 한다. 나이가 60안팎되는 여자분인데 일할 때는 힘들지만 알바자리가 잘 없어서 여기 나온다는 얘기를 했다. 다른 여자분들은 4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보였다.


휴식시간이 금방 끝나고 다시 하차 현장으로 투입됐다. 기계처럼 허리를 폈다 숙였다를 계속했고 밀려드는 물류에 기겁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물을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도 땀으로 다 배출이 되니 화장실을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계속 물이 필요할 뿐.


어느새 마칠 시간인 1시가 되어 일을 마무리하고 사무실로 갔는데 같이 일하던 여자분들이 정말 존경스러워 보였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여자분들의 생활력에 감탄사가 나왔다. 다시 통근버스를 타고 한시간 걸려서 숙소에 도착해서는 목욕을 하고 자리에 누웠는데 내일 다시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다음날 일어나니 온몸이 아프고 움직이기가 힘들어 하루 쉬고 그 다음날 다시 쿠팡알바를 갔다. 둘째날도 역시 하차 작업이었고 첫날처럼 갈증과 땀에 범벅이 됐고 가끔씩 관리자들의 불친절에도 짜증이 났다.

셋째날은 다행히 하차 작업이 아닌 분류작업에 배정됐는데 하차 작업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 작업은 편안하게 느껴졌다. 여자분들은 주로 분류(소분)작업에 투입됐는데 이 작업을 하니 견딜수 있는거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넷째날도 소분작업을 하게 됐고 넷째날 나갔을 때 처음 온 신입들은 하차작업에 투입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일단 신입이 오면 제일 힘든 하차 작업에 투입해서 견디는지 보고 며칠 계속 나오면 다른 작업으로 돌린다고 한다.


나는 평생 해 본적이 없는(대학교때 건설현장 알바는 했었다) 생노가다 쿠팡 알바를 5일동안 했고 다행히 특별히 다친 데 없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이라 제대로 했다고 하긴 그렇지만 제일 힘든 하차부터 소분, 이동 등 쿠팡 물류창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으니 특별히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고 무엇보다 너무 덥고 힘들었다.

나이 먹고 이런 힘든 일을 한다는 게 조금 서글펐지만 일하러 오는 분들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라도 있는게 다행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몸이 힘든 것도 버거운 일이지만 젊은 친구들이 아버지 같은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는 심적으로 자괴감이 들게 할 정도로 버거웠다.


앞으로 다시는 쿠팡 알바는 안 하리라는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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