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50대 상경기

8.이상한 부동산 회사

by 구호선

두 달동안 증권사 경력직 입사에 실패한 후 제도권 금융회사로 다시 진입하기는 힘들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가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뭐라도 해 보자는 생각으로 채용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고 웬만한 금융사나 부동산 회사에는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증권사 입사를 마음먹고 나서는 채용사이트에서 나의 이력서가 검색되지 않도록 설정해놨지만 이것마저도 풀어놓고 연락을 기다렸다.


채용사이트에서 이력서가 검색되지 않도록 한 이유는 보험회사의 영향이 컸다.

검색을 허용했더니 내가 원했던 금융사로부터의 연락은 없고 거의 모든 보험사에서 연락이 빗발쳤다. 특히 삼성생명은 각 대리점별로 연락이 와서 거절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신한은행 계열의 보험사에서도 연락이 많이 왔다.

보험사들은 당장 설계사가 필요하니 금융권이나 공직 경력이 나름 있는 내 이력서를 보고 욕심을 내지 않았나 싶다. 물론 꼭 그렇지 않아도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다 연락했을 것이다.


보험사 외에도 연락이 잦은 업종은 상조와 컨설팅, 부동산 업종이었는데 모두 영업 중심의 업종에서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는 싫어서 대부분 거절했지만 증권사 입사를 위해 수입없이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에 이런 곳이라도 일단 들어가서 최소한의 수입을 가지면서 다른 곳을 알아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 중 한 부동산 회사에서 아침 9시에서 12시까지 출근하면 기본급 2백만원을 주고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준다는 연락이 와서 일단 면접을 보기로 했다.

회사의 위치는 강남 테헤란로 선릉역 인근에 있었는데 대로변 3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본부장이라는 사람과 간단하게 얘기를 한 후 대표와 마주앉아 간단한 설명을 들었는데 대표의 멘트가 상당히 거슬려서 그냥 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이제 나이먹고 특별히 갈데도 없을 거고 이력은 상당히 괜찮은 것 같으니 여기서 영업을 같이 하면 어떻겠냐는 얘기였는데 마치 취직할 데가 없어서 찾아온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나 자존심 상하는 멘트를 길게 하는 습관이 있는 60대 중반의 중년이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과 근무 시간이 괜찮아서 9월 1일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실적이 없어도 2백만원은 받을 수 있고 혹시 실적이 생긴다면 꽤 많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근무하는 기간동안 이런저런 알바를 하면 삼사백은 벌수 있겠단 생각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는 시간을 벌기 위한 방법이었다. 증권사 입사를 위해 두 달여를 허비하는 동안 수입없이 직장을 찾았더니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이 회사는 상당히 특이한 점이 많았다. 우선 충북 당진의 땅을 팔기 위해 나같은 영업직원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회장이 실질적인 주인이고 그 밑에 대표와 부대표, 본부장, 실장등이 있었는데 다들 나처럼 영업사원을 하다 실적이 좋아서 진급을 한 케이스라고 한다. 물론 확인은 불가능하다.


회장은 상당한 재력가라고 본인들 스스로 얘기했고 회사 소유로 당진에 수십만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당진은 현대제철을 비롯한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는 지역으로 발전가능성만 본다면 땅값이 분명히 오를 것 같기는 했다. 회사에서 보유한 땅은 신도시 지역의 개발 가능지역으로 수십만 평을 10여년 전에 사놨다고 하니 그 사이에 차익이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문제는 보유하고 있는 회사 소유의 땅, 그러니까 영업직원들이 팔아야 하는 땅의 번지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었다. 땅을 팔아라고 해놓고는 땅의 위치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이상한 영업 방법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 물어보니 소문이 나거나 브로커들이 달려드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매수자에 한해서만 알려준다고 하는데 이해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능하면 땅을 10평 단위로 팔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 평에 290만원이니 10평이면 2,900만원이고 이 정도 가격이면 일반 직장인들도 미래를 보고 충분히 사 놓을 수 있는 가격대라는 것이다. 주변 지인이나 가족들 중심으로 영업을 해서 보유해 놓으라는 설명인데 깨놓고 얘기하면 본인 돈으로 땅을 먼저 사라는 말이었다.


이 회사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본인과 가족들 그리고 지인, 친척 중심으로 땅을 사놓은 사람들이었다. 10평 단위로 팔면 등기가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단독 등기는 아니고 공동 지분으로 등기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현재는 임야인데 올연말쯤에 근린생활용지로 용도변경이 되기 때문에 지금이 사놓기 딱 적기라고 얘기했다. 용도변경을 어떻게 확신하냐고 물었더니 당진시청 고위청을 통해 미리 정보를 입수했다고 했다.


종합해보면 회사에서 보유한 땅이 많은데 확인해 줄 수는 없고 10평 단위로 땅을 팔아서 공동등기로 보유하면 되는데 번지는 못 가르쳐주고 조만간 근린생활지역으로 용도변경 되는데 그 정보는 내부정보라 믿어야 된다는 정도의 설명이다. 음..도대체 뭘 믿고 땅을 팔으라는 건지


이런 내용을 가지고 도대체 땅을 팔 수 있을지 의아했지만 기존에 직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수천 평씩 팔아서 성과급도 많이 받고 시세차익도 크게 올렸다고 강조를 하면서 실적을 빨리 올릴 것을 매일 아침마다 쪼아붙였다. 다행히 근무시간이 12시까지라 3시간 정도만 눈치보고 시달리면 됐지만 금요일은 오후 4시까지 근무를 해야했다.


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당진에 선교센터 1만평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확인은 못했다. 이 회사의 특징이 말의 성찬이고 확인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답게 말끝마다 신앙심이 베어 나왔으며 아침 조례시간에는 꼭 마지막에 전체 기도를 했다. 그리고 수요일 아침에는 오전 9시에 예배를 올렸는데 마치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과 똑같은 순서로 한시간 이상 진행됐다. 이럴 때는 부동산회사인지 교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나처럼 영업직원으로 입사한 사람들은 대체로 60대가 많았다. 정년퇴직을 하고 소일거리를 찾거나 돈이 아쉬워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물론 50대도 제법 있었지만 50살 밑으로는 찾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사회적 이력이 괜찮으면서 나이가 50대 이상이면 직장을 새로 구하기는 힘든반면 주변 인맥은 형성돼 있을테니 그 인맥들 중심으로 땅을 팔 수 있을 거라는 계산했을 것이다.

회사 분위기를 살피다가 이삼일만에 그만둔 사람도 꽤 있었고 가장 길게 있는 직원이 한달 반정도였다. 물론 직책을 가진 사람은 몇 년 된 직원도 있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한 달 정도에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한 달 안에 땅을 10평이라도 팔아야 기본급 2백만원에 성과급 29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초반 당진에 대해 공부를 했고 대표와 부대표 등의 강의를 들으며 회사 보유지에 대해 익혔지만 도저히 번지수도 안알려주는 땅을 팔 자신은 없었다. 내 옆자리나 앞자리에 있던 다른 직원들에게도 물어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나처럼 여기 입사한 직원 중에는 선생님을 하다가 정년퇴직 하신 분도 있었고 사업을 하다 말아먹고 오신 분, 보험 설계사를 하다가 오신 분, 그냥 소일거리로 오신 분등 다양한 분들이 잠시 잠시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나는 다른 직장을 찾기 전에 최소한 한 달은 버티기로 마음 먹은 터라 일단 9월말까지는 좀 이상해도 다니기로 했다.


너무 일을 안하면 안될 것 같아 지인에게 한번 방문해서 땅을 살 듯이 하라고 해서 방문일을 잡았는데 회사에서는 미리 선급금을 내야 된다는 얘기를 했다.

아니 땅에 대해 설명들으러 오는데 왜 선급금을 내야 되냐고 물었더니 이삼백만원 정도 선급금을 내야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고 선급금을 내는 사람은 거의 백프로 땅을 구매한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안되는 설명에 그렇게는 힘들다고 했더니 그럼 일단 방문하라고 했고 지인은 대표에게 30분 정도 설명 듣는 시간을 가졌다. 나도 같이 설명을 들었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고 지도를 꺼내서 대략적인 위치를 가르쳐주고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변경되니 무조건 사라는 식의 얘기였다. 이 정도 설명할려고 돈을 내라고 했나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어영부영 한 달이 거의 다 됐고 남아있는 10여명의 직원들 중 내가 두 번째 고참이 됐다. 나보다 일주일 먼저 들어오신 분은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역시 실적은 올리지 못했다. 그 분은 회사에 이런저런 상식적인 제안도 했지만 회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9월 말경에 최고참인 우리 둘은 같은 날 그만뒀고 나보다 며칠 늦데 들어온 두명도 같이 그만두면서 5명이 한꺼번에 나오게 됐다. 딱 한달을 채운 셈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입버릇처럼 얘기하면서 직원들에 대한 사랑은 전혀 없고 계속해서 일회용 컵 사용하듯이 뽑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것이 이 회사의 직원 채용 행태였다. 그러다보면 어쩌다 땅을 파는 직원이 있을 것이고 몇 십평 팔면 그래도 회사에는 이익일 것이다.


역시 서울은 사람이 많으니 썼다 버리고가 반복되는 형태의 업종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러니 서울이 삭막하다는 것이고 사람 대접 못 받는거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대체가능성이 중요하다.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일이면 빠른 시간안에 성과를 못 내면 바로 대체된다. 지방에서는 사람 구하기가 힘드니 그 기간이 길지만 서울에서는 보통 한 달안에 결판난다.


부동산 회사를 그만두면서 좋은 경험했다고 애써 자위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일자리 구하기에 나섰고 곧 다른 일을 찾았다. 씩씩한 50대는 지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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