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50대 상경기

7.다시 증권사로

by 구호선

여의도에서 연달아 뜨거운 맛을 본 후 생각을 바꿨다. 그 동안 대형 증권사와 공직에만 있어서 당연히 입사 후 일정 기간 근무가 보장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0명 미만의 작은 금융사는 그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됐고 그렇다면 다시 증권사로 돌아가서 일정 기간을 보장받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자산운용사 퇴사 직후인 7월초부터 본격적으로 증권사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중간에 정치한다고 13년간의 공백이 있긴 했지만 그 전에 15년동안 증권사에서 근무했고 최근에도 투자자문사와 자산운용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입사는 힘들어도 이전에 투자상담사로 불렸던 영업전문직 정도는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sk증권에 입사지원을 했고 바로 센터장과 본부장 면접을 봤다. 본부장은 나와 동갑이었고 센터장은 두 세 살 아래였다. 예전 증권사 다닐 때 본부장은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됐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항상 젊은 축이었는데 사회에 다시 발을 들이니 내 나이가 본부장급이다.


30분 동안 다양한 질문을 했고 나는 솔직하게 답변했다. 두 사람은 나를 마음에 들어해서 곧 입사가 되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물론 정규직처럼 고연봉을 받는 자리는 아니고 고작 월급 2백만원에 실적에 따른 성과급을 받는 자리지만 다시 대형 금융사에서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에 집사람에게 소식을 전했다.

집사람도 나와 같은 증권사 출신이라 영업전문직 시스템을 알고 있어서 실적이 제대로 나오겠냐고 걱정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두 번이나 소형 금융사에서 황당한 일을 당했기 때문에 이해하는 편이었다.


기분좋게 증권사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일주일 뒤 sk증권 센터장으로부터 예상외의 전화가 왔다.

지금 sk증권이 강력한 구조조정을 발표해서 본인이 센터장으로 있는 센터가 폐쇄되고 본인의 거취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나는 황당해서 그럼 내 입사는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지금 모든 입사과정이 중지라서 힘들 것 같다는 대답을 했다.


검색해보니 실제 sk증권의 적자 누적으로 인해 강력한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노조가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회사 사정이 이러니 항의할 수도 없고 그렇게 sk증권으로의 입사는 물건너가버렸다. 하필 내가 입사준비 중일 때 구조조정 발표라니.


sk증권에는 내부 사정으로 입사가 힘들어졌지만 다른 증권사는 들어갈 수 있을거란 생각으로 이후 여러 증권사에 원서를 넣었다. 한양증권, LS증권, 유진투자증권, 부국증권, 메리츠증권등 채용사이트를 통해 원서를 넣기도 했고 직접 지점으로 전화해서 지점장과 면접을 보기도 했다. 당연히 한 군데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거란 기대감을 가지고.


하지만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거의 대부분의 증권사에서 지점장이나 센터장은 나를 마음에 들어하고 같이 일하자고 했지만 본사 인사부서에서는 동일하게 부적격 판정이 났다. 증권사를 오래다니긴 했으나 공백 기간이 10년 넘었고 최근에 근거가 될만한 실적이 없었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당장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영업직원이 필요한데 그 기준에 나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전에는 증권사 영업은 지점중심이어서 대형 증권사들은 백여개 이상의 지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10년 사이 사이버트레이딩이 보편화되면서 지점은 급격히 줄었고 지점 경력의 직원들은 구조조정의 타겟이 됐다. 정말 실적이 좋은 일부 직원은 살아남았지만 기존의 직원들조차도 쫓겨나는 상황이라 내가 지점으로 들어가기는 더욱 힘들었다. 지점장을 따로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어서 몇 개 증권사에 서류를 내기도 했지만 아예 서류단계에서 커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두 달동안 십여개 증권사에 서류를 내기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본사에 지인을 통해 연결도 해봤지만 결론은 여지없이 불합격이었다. 당연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증권사 입사 실패는 내가 처한 현실을 뼈저리게 직시하는 계기가 됐다.

50대 나이에 13년 간의 경력공백이 있어서 당장 실적을 올릴 수도 없는 어중간한 전직 증권맨이 다시 증권사로 재입사하기는 불가능이었던 것이다.


증권사 입사가 불발되면서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됐다. 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당장 수입이 끊기면서 가장 역할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우리 나이 또래는 아시겠지만 가장이 가장 역할을 못 하는 것만큼 세상에 힘든 일도 없다.


그리고 한 동안 좌충우돌 하던 차에 또 다른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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