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50대 상경기

6.서울에서의 직장생활- 자산운용사

by 구호선

자산운용사

증권회사는 대부분 대형 금융사로 자체 시스템이나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 공직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공무원 사회는 오히려 금융사보다 더 보수적이고 체계적이다. 이런 조직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투자자문사에서 한 달 반만에 해고당한 것은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후 서울 생활에서 맞딱드린 현실은 그 동안의 내 경력들이 완전히 온실속의 화초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주었다.


여의도에서의 첫 번째 직장은 예상치 못한 해고로 인해 삭막하게 마무리 되었고 허탈한 마음에 집으로 내려와 보름 정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은 후 다시 한번 상경해 새로운 직장 찾기에 나섰다.


원래부터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일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에 투자자문사 대표로 있을 때 인수를 위해 방문했던 소형 자산운용사를 찾아갔다. 대표를 만나 투자자문사를 그만두게 된 경과를 얘기하고 경력직으로 일하고 싶다 하니 의외로 흔쾌히 반기며 안 그래도 경력직을 찾고 있었다며 바로 출근할 것을 권했다.

한 방에 자산운용사 취직이 될 거라곤 생각못했는데 이런 재수가 있나..

너무 반가운 마음에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드디어 자산운용사에서 일하게 됐다며 새출발을 자축했다.


자산운용사는 투자자문사와는 구조가 좀 다르다. 투자자문사가 고객의 투자에 대해 자문을 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구조라면 자산운용사는 펀드를 만들어서 고객들이 펀드에 가입하면 그 펀드를 운용하여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다. 흔히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펀드를 만드는 회사가 바로 자산운용사이다.


펀드에는 주식형, 채권형, 부동산형, 대체투자형 등 다양한 종류가 있고 고객들은 본인의 성향에 따라 펀드를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 고객들이 많이 가입하는 대형 펀드는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다닌 자산운용사는 소형사라 펀드 규모가 2백억짜리 주식공모주 펀드 하나였다.


자산운용사 대표는 내가 투자자문사 대표를 지냈으니 어느 정도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펀드규모가 적으니 추가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내가 필요한 셈인데 나는 사실 펀드의 운용에 관심이 있었지 서울에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당장 고객을 유치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1년 정도는 보장을 해 달라고 얘기했었고 입사 당시에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대표의 태도는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변하기 시작했다.


입사 직전 방문했을 때 나에게 각자 대표를 맡아서 회사를 잘 운영해보자고 제안했던 대표는 입사 직후에는 나에게 상무 명함에 마케팅팀이라는 어색한 직함을 부여했다. 아니 왜 운용팀이 아니고 마케팅팀이냐고 물어보니 그냥 대표가 그렇게 지시했다고 나이 많은 준법감시인이 전달해 줄 뿐이었다. 직원이 총 7명에 불과한 회사에서 굳이 지금까지 없었던 마케팅팀을 만들어서 나를 배치하는 이유가 의아했다.


원래 준법감시인은 자산운용사 운용이 적법하게 운용되도록 감시하는 직책인데 이 회사에서 준법감시인은 대표가 시키는 일은 불법이라도 무조건 앞장서는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애초 얘기했던 것과 다르게 내 의사는 무시하고 본인들 뜻대로 직함이나 좌석을 배치하는 것을 보고 아차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직장이 아쉬운 나는 어쩔 수 없이 출근을 시작했다. 자산운용사에서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를 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던 나에게 이 회사는 서울에서의 새로운 시련의 대상이 되어 갔다.


출근 첫날부터 내 자리는 기존 직원들과 동떨어져서 제일 안쪽에 배치되었고 아침 회의에서도 제외됐다. 분명히 정직원 경력직으로 입사했으면 회의 시간에 인사를 하고 직원들과 어울려야 함에도 대표와 준법감시인은 나를 마치 정직원이 아닌 영업전문직원인 것처럼 대했다. 출근 3일째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1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3개월 수습기간을 설정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냥 형식이라고 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조변석개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다른 직원들 얘기로는 대표가 원래 처음에는 다 해줄 듯이 하다가 막상 직원 입사하고 나면 태도가 바뀐다는 귀뜸을 해줬다.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내가 정직이 아니고 영업직으로 들어온 줄 알았다는 말을 했다.

자산운용사에 입사했다는 기분을 내기도 전에 나는 회사 활동에서 은근슬쩍 배제되었고 입사 2주가 되었을 때는 대표와 준법감시인이 왜 영업하러 외근을 안 나가냐고 본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제가 영업전문직으로 입사한 것도 아니고 애초에 펀드운용을 하면서 영업도 같이 하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얘기했지만 허공의 메아리였다. 아 서울 사람들 왜 이래...


그렇게 황당한 시간을 한 달쯤 보냈을 무렵 대표가 부르더니 회사가 어려워져서 이제 그만 나가주면 안되냐고 얘기했다. 회사가 어려워진 이유는 50%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주주가 본인 지분을 사달라고 해서 자본금이 동나게 생겼단다. 입사 한달만에 뭘 해보기도 전에 나가라고? 그렇게 냉각기를 한 달 더 보내다 결국은 두 달을 겨우 채우고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투자자문사에서 갑자기 해고당했을 때의 당황스러움과 황당함은 또 다시 자산운용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졌고 4개월만에 두 번 해고 당하는 내 기준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짧은 근무이력이 생겼다. 1월에 부산에서 해고 당한것까지 더하면 6개월에 3번 해고당하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자산운용사를 나오고 나서 한동안 다른 일자리를 구했지만 제대로 된 대형 자산운용사에서는 짧은 이력으로 인해 서류 통과조차 되지 않았고 정치를 했던 13년을 경력 공백으로 인식해서 직장을 구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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