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50대 상경하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에 낙선한 후 두문불출하던 중 지역 선배로부터 부산에서 모 병원 원장이 자산운용사를 설립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인력을 모집중이니 증권사 출신인 내가 가서 도와주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했다.
자산운용사는 정치하기 이전 15년 동안 근무했던 증권사 일과 일맥상통하는 업무라 거리낌없이 그러겠노라 하고 부산으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십수년전 증권사 시절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처럼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몇 개의 자격증을 따 놓았었다. 잊고 있었던 그 자격증들이 자산운용사 설립에 꼭 필요한 조건이 될 줄은 몰랐다. 자산운용사에서는 전문인력이 3인 필요한데 투자자산운용사라는 자격증을 보유한 인력이 바로 전문인력이다.
인력구성을 갖추기 위해 나의 초기 증권사 동기를 한명 섭외했고 공고를 통해 또 다른 인력을 맞추었다. 그 외에는 대주주 측에서 대표와 감사 등을 추가했다.
자산운용사는 금감원에 서류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 업종이라 준비하는 서류와 기간이 만만찮았다. 특히 대주주에 대한 사항은 상당히 까다로워서 돈만 있다고 시도할 수 없는 업종이다.
우리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10월경 서류 준비를 마무리하고 금감원에 제출했다. 이제 현장 실사만 남았다고 기대감에 들떠 있던 순간 금감원에서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대주주가 선거 출마 경력이 많아 이번 총선에도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시작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4번이나 출마했으니 그런 의심을 하는 것도 이해는 됐다. 금융은 정치와는 가능하면 떨어져 있어야 하고 금감원에서는 본능적으로 정치와 엮이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었다.
이후 대주주는 12월말경 갑작스럽게 자산운용사 설립 포기를 선언했고 6개월 동안 준비하던 직원 6명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해고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설립과정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계속됐지만 문자 한통으로 전직원을 해고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런 식의 해고가 어디있냐고 극렬하게 반발했고 금감원에서 총선 공천이 마무리되는 내년 3월경까지 기다려보자고 했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가능하다고 설득했지만 돈 많은 대주주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서로의 감정만 격해져서 우리는 부당해고로 노동위원회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2024년 1월까지 치열하게 감정 싸움을 한 후 노동청과 노동위원회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던 중 서울 여의도의 한 투자자문사에서 채용사이트를 통해 나에게 연락이 왔다.
연락한 사람은 유튜브를 통해 주식투자자문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식으로 자금을 제법 모았으며 2차전지 관련주들의 상승세와 맞물려 증권시장에서 상당한 지명도를 얻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산운용사 설립에 실패해 다른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형편이라 3월말경 여의도로 면접을 보러가기로 했다.
면접과정에서 나이가 60대인 투자자문사 회장은 나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현재는 투자자문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내가 오게 되면 자산운용사 설립을 준비해서 빠른 시간 안에 자산운용사도 같이 운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자산운용사 설립을 준비한다는 얘기에 나는 별다른 의구심도 가지지 않고 바로 출근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4월초에 부산역 인근에서 오프라인 투자설명회가 있어서 그 날부터 참여하기로 했다. 내가 증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고객들이 객장에 앉아서 전광판을 보며 투자를 하던 때라 객장에서 투자설명회를 하곤 했는데 300명 이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오프라인 투자설명회는 나도 첨이었다.
투자자문사 투자설명회에 대규모로 참여하는 고객 수를 보면서 회장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는 되었다.
부산과 대구의 투자설명회를 마치고 간단한 짐을 준비해서 바로 상경했고 2024년 3월 3일부터 드디어 나의 서울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