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퇴사했다, 진짜로

1) 퇴사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

25년 12월 31일, 15년을 다닌 회사를 공식적으로 끝낸 날입니다.

그리고 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아마 이번 주부터가 본격적인 새해의 시작이라 많은 분들께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니, 출근과 출근 후에 해야 할 (회사의) 일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첫날을 보낸 오늘이 비로소 퇴사를 했다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오늘 저는 저의 "퇴사"에 대하여 끄적여 보려 합니다.

EP.4 퇴사했다. 진짜로 칼럼으로 총 3개의 글을 적어보려 합니다.

1) 퇴사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

2) 퇴사를 해야 하는 이유

3) 퇴사를 한 후에 할 것들

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1) 퇴사 전 준비해야 할 것들

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퇴사를 고민하는 많은 분들이 정말로

퇴사를 해야 하는지 아직은 그때가 아닌지를 가늠해 보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저는 2025년 12월 희망퇴직자입니다.

이제 엄밀히 말하면 실직자이며,

특수한 상황에 따른 고용보험자격 상실로 인하여 실업급여 신청도 앞두고 있습니다.


퇴사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실질적인 고민과 경험, 그리고 그 "퇴직"을 행동으로 옮긴 이유와

그 후의 일들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를 정보를 기록하기 위함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앞선 글들에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저는 대한민국 1위 화장품회사의 마케터 출신입니다.

공채로 입사해서 15년간 여러 업무를 경험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이라는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이 회사를 입사한 사람이라면

혹은 그와 유사한 조직 또는 집단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게 됩니다.

소위 말해 일을 통해 하는 그 "경험"을 말이죠.

때문에 우리가 회사에서 "경험"하는 일에 대한 부분은

내가 어떤 산업에 몸담았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그럼 이 부분을 제외하고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까요?

단, 이 준비하는 것들의 목적이 당연히 (언제가 될지 모를) 퇴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임을 사전에 밝힙니다.


첫 번째, 압도적인 전문성입니다.

흔히 말해 전문성보다는, 압도적인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제조업에 입사를 했습니다. 제조업에 몸을 담았다는 것은 대중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소비재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제품"을 직접 만드는 것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화장품업에서 그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남성이 하기에 다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내부적인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자사의 매출 중 90% 이상은 여성제품과 카테고리에서 발생하는 것이었고 남성제품에서의

매출과 이익은 회사 전체의 실적에 영향을 주기에는 미미 했습니다.

결국, 여성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여성들이 만들어야 잘 만들 수 있다는

무언의 공식이, 무의식적인 약속이 내부적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농 x에 가면 라면과 과자를 만들어 봐야 하고

Cx에 가면 식탁에 오르는 간편식과 레토르트 제품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나라는 게

저의 평소의 지론이었습니다.

저는 제조업을 가게된다면 그 회사가 만들어내는 "제품"을 반드시 만들어봐야 한다는 의지가 컸습니다.

그 평소의 생각으로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다면 화장품을 만들어보는 일을 해봐야 한다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할 제품을 기획할 수도, 세상에 나왔지만 아무도 모르게 사라 질 수도,

혹은 생각지도 못하게 소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제품으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그리고 이해해야 할 프로세스가 정말 많습니다.

이 제품이 시장에서 필요한 지에 대한 마켓센싱, 제품에 대한 기획안 작성,

제품에 적용되는 원료와 기술, 제품을 포장하는 1차 용기(흔히 내용물이 담기는) 형태와 소재 협의 및 결정,

2차 용기(흔히 1차 용기를 담는 종이 포장재)의 형태와 소재 협의 및 결정, 실제 용기 및 패키징의 디자인 진행,

각 용기에 입혀지는 용기에 표현될 국내 화장품 법에 맞는 문안 (우리는 이걸 원화라고 표현합니다) 작성 및 검수,

제품의 핵심적인 포인트로 만든 상세페이지와 이미지 촬영 (연출컷), 제품명 (네이밍) 세팅과 소비자 가격 수립,

출시 후 론칭되는 채널에서의 마케팅 플랜, 생산 일정과 수량 그리고 양품과 불량품에 대한 협의,

생산 직후 자사 물류시스템 입고 와 출고 현황 확인, 프로모션 위한 스토리보드 작성과 디자이닝,

판매 촉진을 위한 추가적인 굿즈 제작 (또는 사입), 출시 후 소비자 반응 모니터링 및 개선사항 확인,

출시 직후 2~3년 후 리뉴얼(개선품 출시) 위한 준비 착수까지.

위에 나열할 일들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수반되는 가장 기본적인 업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과정 앞뒤로 더 많은 디테일한 일들과 실무자들끼리의 논의가 이어집니다.

통상 화장품을 개발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빠르면 5~6개월, 복잡성을 가진 경우 12개월 정도로 생각하는데요,

(단, 이는 브랜드 및 제조사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제품 개발은 위 기본적인 내용을 반복하는 행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자 그럼, 앞서 이야기한 압도적인 전문성이라 함은,

제품을 만듬에 있어서의 본질인 "제품"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BM-브랜드 매니저(혹은-PM 프로덕트 매니저)가 되기 위해서 위 (유관부서들과 하는) 일들을

회사에서는 순차적으로 경험하게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때문에, 제품을 개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위 실무를 실행하면서 빠르게 (본업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실무를 이해하고 의사결정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제품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 (회사가 제공하는 여러 교육이나 학습툴을 활용하거나)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학습하는 관심과 열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제품 자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남성도 화장품을 만들 수 있다"를 납득시키기 위해

약 4~5년에 걸쳐 신촌 크리스천 쇼보, 광화문 메이크업 포에버, 압구정 헤라 메이크업 아카데미+아트스테이지 아카데미에서 기본적인 스킨케어, 메이크업 과정을 배웠고 메이크업 자격증 (국가기술자격증명: 미용사)을 취득하여

제품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이 높음을 입증했고 이를 통해 회사 내부적인 편견을 극복하고

제품 개발자로서의 경험을 (헤xBM 4년 6개월) 할 수 있었습니다.


IMG_5745.jpeg 화장품 본업 1(실기준비)
화장품 본업 2(시험준비)


두 번째, 나의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IMG_5394.jpeg 향수 마케터

저는 구 x이라는 프렌치 오트 퍼퓨머리 향수 브랜드의 향수 마케터로 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약 2년 6개월)

*현재 구 x은 미국 인터퍼퓸의 계열사인 인터퍼퓸 SA가 2025년 브랜드 인수를 완료했습니다.

당시 해당 향수 제품은 모두 프랑스에서 만들어서 들여오는 것이었고 저희 회사가 가지고 있는

30여 개의 화장품 브랜드와 다르게 유일한 수입 브랜드였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불량과 오더사고, 판매제품 가용화 위한 전산작업 단계에서 확인되는

수량 불일치등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불량으로 분류된 제품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이 되지 않았고

그렇게 오더 후 발생한 손실에 대해서 아무도 관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해당 팀에 발령 난 이후 해당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프로세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주문한 제품 및 수량과 한국에 도착한 제품 및 수량을 정확하게 비교하기 시작했고,

양품과 불량을 (자사 물류팀과 협의하여) 정확하게 분류하여 불량일 경우는 모두 사진을 찍어 근거를 남겼습니다.

그 후 분기 및 반기 단위로 해당 내용을 프랑스에 공유하여 오더 수량 불일치 제품은 다시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고

재고가 없는 제품 및 수량에 대해서는 유가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프랑스의 현지 담당님, 자사의 물류담당님, 수출입을 진행해 주시는 통관 담당님과 함께

끝없이 묻고 협의하고 논의하여 이 문제를 잘 해결했는데요,

사실 이 일을 마치고 난 후 모두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도 생각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인데, 꼭 필요했던 일을 해주셔서

그리고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라고.

제가 퇴사를 할 때, 많은 분들께 소식을 전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참 컸었는데요,

그때 당시에 함께 일했던 담당님께서 저에게 메신저 주시며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소식 들었습니다. 결정하신 이유는 당연히 있으실 거고,

그래도 그때 같이 그 어려운 일을 잘 완료해서 너무 기뻤다고,

그리고 oo님의 성향을 봤을 땐 어딜 가시더라도 잘 해내실 거라고"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응원과 격려를 듣는다는 게 쉬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맡은 일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고

누군가 하지 못한 일이 있고 어렵더라도 그 일을 함께하는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로 잘 해결하는 게 필요합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얼토당토않은 일들이 나에게 주어지기도 하고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들도 생기기 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더라도, 묵묵하게 해내야 합니다.

결국 이 분들도 어딘가에서는 저의 이야기를 할 것이고 그게 내가 과거든 지금이든 속한 조직에서의

평가 기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스크린샷 2026-01-05 오후 9.29.33.png
IMG_7663.jpeg
뷰티 포트폴리오 / K대학교 뷰티디자인 대학원 전경
IMG_7665.jpeg 대학원 과제 준비위한 화방방문
IMG_9857.jpeg 대학원 과제 준비

회사를 10년 정도 다니다 보니, 문득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 내가 회사를 나가게 되었을 때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막였했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고민하기 시작하니 뭔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화장품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해주셨던 한 선배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습니다.

그 선배님은 메이크업아티스트로 오랜 시간 회사를 대표해서 활동했던 선배님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선배님은 이미 K대학교 뷰티디자인 대학원 석사공부를 마치고

언제 박사학위 공부를 할지 고민하고 계신 상황이었습니다.

출근이 내가 가진 하루의 시간 중에 가장 힘들일이고

퇴근만이 내가 느끼는 가장 큰 행복의 시간임이 틀림이 없었는데,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서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즈음 저도 그 선배님이 소개해 주신 K대학원 뷰티디자인 대학원 석사과정을 신청할지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그 선배님께서 하신 말 한마디로 바로 진학준비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준비하고 있을 거야."

10년을 넘기고 있는 회사생활도 힘들고 버거웠지만 저는 (원서접수를 2시간 남기고) 대학원의 수학계획서, 지원서(자소서포함), *메이크업포트폴리오를 작성하여 원서 접수를 마무리했고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1학기 후 휴학 중

*메이크업 포트폴리오: 자격증 공부와 대학원 진학을 위해 직전 1년 정도 동안 만들어둔 개인 포트폴리오

누군가는 회의적으로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퇴사 후에 그 석사학위 하나 있다고 재취업이 보장되거나 대단한 일이 생기진 않는다고 말입니다.

네 맞는 말입니다. 그 학위를 가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어떤 일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래도 한 학기 동안,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수업을 듣고

매주 목요일마다 과제를 고민하고 실기 (드로잉, 메이크업, 자료조사등)를 준비하다 보니

그동안 제가 몰랐던 영역에 대한 배움의 넓이와 깊이가 생기고 있다는 성취감이 생겼고,

제가 속한 특정한 회사가 아니라 브랜드를 운영하시고, 개인샵을 운영하시고, 학교에서 교육자로 활동하시는

여러 영역에서의 학우분들과 대화해 보니 "화장품"과 "뷰티"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진로의 영역이 꽤나

다양함을 크게 깨달았다는 부분이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아직 학위를 완료하지 못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복학하여 남은 학기들을 마치고

박사 학위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단순하게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에 대한 공부를 언급했지만,

이것 외에도 개인적인 관심사가 큰 영역에서의 자격증 (특히 국가가 인증하는 자격증),

내가 좋아했던 영역에서의 연수 등 회사를 벗어난 곳에서의 배움과 학습의 경험을 가지시길 제안드립니다.


이야기가 상당히 길었습니다.

결론은, 나갈 결심을 하고 나간 후 준비하는 것은 이미 늦다는 것입니다.


1. 내가 하는 본업에서의 압도적인 전문성을 갖추고

2. 내가 하는 일을 집요하게 잘 마무리하는 습관을 키우고

3.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공부와 배움의 기회를 가진다면


적어도 내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는 시점이 임박하거나 그런 타이밍이 왔을 때,

막연하게 이제 나가서 뭐 하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중이라면, 그리고 내가 회사를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위 3가지는 반드시 명심하시고 회사생활을 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2) 퇴사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매일매일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