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는 그날
#직장인 #취업 #15년 근속 #퇴사 #새로운 시작
-아래 작성된 내용은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작성한 것이며,
이는 특정 회사나 조직의 (특히 내가 몸담은) 공식적인 계획이나 견해는 아님을 밝힙니다.
이제 새로운 시작 앞에 섰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제 당장 시작을 해야 한다.
그게 어떤 일이 될지, 무슨 일이 될지 아직은 전혀 알 수가 없지만
머릿속은 나의 의식은 계속 앞으로의 일을 계속 생각해야만 했다.
주변에서 물었다.
왜 그렇게 갑자기 결심을 했냐고.
내가 내린 이 결심에는 명확한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본 퇴사의 이유를 명확하게 기록하고자 한다.
첫 번째, 조직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 문장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은 내가 좋은 성과를 낼 때까지, 혹은 내가 그들의 기대에 미치기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어떻게 보면 참 가혹한지도 모르겠으나 다시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많은
직장인들이 간과하고 있을지도 모를 바로 그 부분이다.
주식회사, 사전적 의미로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집단"정도로 해석이 된다.
회사는 이 가장 단순한 목적달성을 위해 존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회사는 약 수백 명의 희망퇴직 목표를 설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대대적인 인력유출을 우려하여 당장 내보낼 수 없는 핵심 조직과 인력을 설정했다.
그들은 45세가 넘어도, 15년이 넘어도 희망퇴직에 신청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회사는 최초에 세운 (희망퇴직 목표숫자 수백 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목표를 채우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번 희망퇴직에서 대상이든 아니었든, 혹은 타게팅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앞으로의 몇 년이 어떨까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조직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을 실행하여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부정하는 직장인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이번 "일" 역시 목표달성을 위한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임은 당연했고,
그 방법이 조직의 이익과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론이었다는
그럴듯한 프레임을 만들어 포장할 것이 분명했다.
그 방법론의 기준에 충족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희망퇴직의 대상이 되거나,
다음 순서에는 나 스스로 그 결정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게 너무 예상이 되었다.
개인의 성과와, 조직에 기여해하는 결과와, 누군가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어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지속적으로 받아야한다는 생각 등,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내가 느꼈던 성장의 한계
우리 회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회사였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1945년 xxx화학공업주식회사로 시작한 이 회사는 앞으로 20년 후 100년의 역사를 내다본다.
2019년 코로나 팬데믹 직전, 중국을 포함한 중화권의 성장세가 가팔랐던 시기에는 연매출 약 8조 원을
내다보는 회사였고, 화장품이라는 산업 하나만으로 10조 원 가까운 매출을 기대하는 회사였다.
내가 입사했던 2011년, 이미 회사는 몇 년 전부터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오고 있었고,
이 트렌드는 2010년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점까지 유효했다.
조직은 커졌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업들도 생겼다. 그러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럴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를 차치하고 대거 승진을 했고 팀장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 여러 내/외부 이슈로 국내외의 비즈니스에 영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회사 내부적인 사고 (이를테면 xx공장 화재, xxx치약 브랜드의 식약청 지적등)를 시작으로 2010년 후반,
(경북상주) 사드배치 결정으로 인해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적인 갈등이 최고조로 이르면서
우려했던 중국 내 한국제품 불매운동이 시작되었고, 견고했던 회사의 중국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때 당시, 한국 화장품 회사(브랜드) 뿐만 아니라 중국으로 진출한 많은 한국의 소비재 기업들이
사업 규모를 조정하거나, 축소하는 분위기였다.
2019년,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회사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던 어쩌면 인류역사에 한 번 더 있을까 싶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세계의 국경이 닫히고 재택근무등으로 인해 외부에서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소비가 줄었고 그로 인한 회사의 위축은 계속되었다.
결국 회사는 조직을 수시로 재정비했고, 인적자원의 전략적 효율화에 대한 관심을 높게 보였다.
그로 인해 회사는 내부직원의 육성을 통한 승진보다는 실전에서 검증된 외부의 인사들을 모셔오는
인사전략을 실행하기 시작했지만 지속되는 불황과, 저성장 국면, 다양한 경쟁자의 출현등으로 회사의 매출과 이익에 대한 지속성장에 대한 턴어라운드의 시점이 쉬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오히려 업의 전문가를 통해 그래도 회사가 생존과 유지를 통한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긍정론을 말했고 누군가는 외부 인사 영업으로 내부 직원의 승진기회를 박탈할 뿐이라는 자조석인 부정론을 말했다.
내부직원의 육성을 통한 리더급 승진은 드물었고, 있다고 해도 결국 회사가 인정하는 소수의 인원에게만
그 기회가 부여되는 듯했다.
조직의 매출과 이익의 성장, 그리고 생존이라는 점에서 보면 당연히 위의 직급으로 갈수록
더 많은 능력이 필요한 것은 맞는다. 또한 위의 직급으로 갈수록 소수의 인원만이 그 자리에서
무거운 책임감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도 맞는다.
물론, 조직생활과 인생의 목표가 승진이나 중간관리자가 되는 것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조직에서 중간관리자로 일을 하며 그 권한과 책임을 경험하고
내 조직의 사람들을 관리해 보는 것 또한 (남은 조직생활에서) 꼭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지금 회사의 성장세와 분위기로 (개인적인 잠정적 결론으로는) 나의 실력과 능력으로는
어려울 수도, 아니 가능하다고 해도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더) 쏟아부어야 함에 대한 불안감과
막연함이 더 컸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나의 커리어를 지속하기보다 조금 더 규모가 작더라도
조금 덜 알려졌더라도, 내가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에서 마지막 조직생활
5년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세 번째, 잠시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2011년 1월 1일, 잊을 수 있겠는가.
1년 6개월 동안 취업시장에서 힘든 시절을 보냈던 대한민국 취준생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은 얼마나 더 가혹하고 힘든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있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불안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상상하지 못한다.
입사 후 영업사원과 행정업무, 글로벌 마케팅, 메이크업 자격증공부, 제품개발자 업무, 향수마케팅,
대학원 진학, 제휴 및 협업 업무 등 15년을 쉼 없이 달렸다.
물론, 모든 직장인에게는 "여름휴가"와 "개인연차"가 주어진다.
쉼의 시간을 부여받았다고는 하지만 어떤 직장인이든 그 시작하는 날부터 이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는 날의
부담을 안고 휴가를 시작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싶은 일들은 평일에 몰아서 해야 했고, 취미로 하던 운동을 하더라도 시간에 쫓게 하거나
온갖 핑계를 변명삼아 가지 않았던 날들이 훨씬 더 많았다.
휴가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해야만 하는 강박관념적 성격은 쉼의 시간을 갖기보다는
휴식을 일로대하는 나쁜 습관을 만들었다.
부산이라는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며 일 년에 두어 번도 채 가지 않는 고향에는,
도착하기 무섭게 (서울) 집에 가기 바쁘다고 생색을 내야만 했고, 의견이 맞지 않는 피붙이들과는 입만 열면
잔소리를 하고 내 생각이 오로지 맞음을 강요하며 사춘기 아닌 사춘기를 겪곤 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짧을수록 좋았고, 말을 하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만이 필요함을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달리고, 달려서 도착하지도 않은 이 길의 과정에서 큰 도움과 의지가 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망가지고 무의미하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생각의 시작도 심지어 기억나지 않는다.
여유가 없는 인생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이번기회에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동일하고, 그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만들어서 쓰는 거라고.
물론, 그런 세상의 진리 같은 공식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농사짓는 집에 태어나 방학은 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고, 주말은 부모님이 하시는 꽃과 (장미농장, 안개꽃 농장, 글로디올러스 농장) 작물농장(토마토, 파프리카, 고추, 오이, 양배추)에서의 농사일을 쉼 없이 도왔다.
*그래서 나는 회사 때려치우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라고 말하는 사람들과는 말을 섞지 않는다.
육체적 노동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과는 그런 대화조차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다.
방학이라고, 주말이라고 친구들이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고, 친구들과 놀이공원을 가는 것들이
나에게는 생소했고 별 의미 없는 일들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대학부터 취업을 위해 쉼 없이 달렸고, 취업 후에도 생존을 위해 경쟁을 위해 쉼 없이 달렸다.
돌아보면, 45년을 가까이 산 인생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쉼과 여유라는 게
(물론 휴가에 쉰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 잠시만 멈추고 지금 당장, 내일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없이 그동안의 인생을 돌아보고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내 인생의 다음을 생각해 볼 여유를 갖겠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빠르게 달리는 차에서는 내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잠시 멈추지 않으면 어떤 것도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제 이 결심을 번복할 수도 없던 걸로 할 수도 없다.
그저 이제는 정진하는 수밖에.
결심에 후회하는 어른이 되지 않고 앞으로를 준비하는 의젓한 사람이 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