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드는 생각 / 겁이 많은 사람

by 구육오


내 글의 정체성은 '겁'인 것 같다. 글의 정체성이 '겁'인 것처럼 그 글을 쓴 사람의 정체성도 아마 겁이지 않을까? 나는 겁이 많다. 겁이 많은 사람이 쓴 글. 그것이 내 글인 것 같다. 솔직히 겁 많은 게 나쁜 건 아니다. 겁 많은 성격, 걱정 많은 성격이 내가 하는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다. 겁이 많으니 준비를 하게 된다.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것을 대비하고 싶다. 어떤 일을 준비할 때 그 일이 망해버리는 꿈을 거의 매번 꿀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다 보니 준비를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많은 대비를 하다 보면 과하게 준비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상황을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 같으니, 차라리 과하게 준비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한다. 어딘가에 짧게 놀러 가도 짐이 많고, 챙긴 짐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준비하는 게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짐이 조금 무겁긴 해도, 안 쓰면 조금 후회하기는 해도, 그래도 나에겐 그게 낫다. 미리 대비하지 못한다고 해서 큰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완벽한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부족함이 없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여백의 미나 부족함의 미학 같은 것은 알아도 실천하기엔 조금 어렵다. 물론 준비를 하느라 타이밍을 놓쳐버릴 때도 있다. 준비만 하느라 제대로 무언가를 실행하지 못할 때. 예를 들면 시험공부 교안을 완벽하게 만들어두었는데, 그걸 만드느라 시간을 다 써버려서 막상 공부할 시간은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그래도 정리가 안 되어있으면 뭔가 시작하기 어렵다. 어디서부터 대비해야 하는지 더 알 수 없고, 나에게 알 수 없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준비를 한다. 나를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겁이 많으면 좋은 또 다른 점은 다른 사람 눈치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눈치를 챈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눈치 보는 게 나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에게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냥 자연스럽게 드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걸 눈치챈다고 표현해 보았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눈이나 행동을 보면 그냥 어느 정도 대략적으로 '이렇지 않을까?'하는 것이 느껴진다. 근데 그건 나한테만 있는 능력은 아닌 것 같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살다 보면 그런 눈치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게 조금 느껴지니까 딱히 흔하지 않은 능력인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눈치챈다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내 경우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눈치채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나는 그냥 그 사람에게 필요할 것 같은 행동이나 말, 질문 같은 것을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뭐랄까 내적 친밀감이 생긴다. 그렇게 생긴 내적 친밀감은 나에게 도움이 된다. 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니 나에게는 도움이다. 겁이 많은 성격이 다른 사람을 파악해서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면, 나는 그 사람과 친밀감이나 거리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물론 100%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눈치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정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맞아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눈치챘지만 못 챈척할 때도 있다. 어딘가 음흉한 사람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그건 뭐 어쩔 수 없다. 그냥 보기만 해도 갑자기 느껴지는 걸 어떡하겠는가. 안 하고 싶다고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아닌데 뭐. 딱히 안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래도 사람이 두렵지는 않다. 내가 두려운 것은 사람과 멀어지는 것이다. 특히 내가 가깝게 느끼는 사람.



몇몇 친구들에게서부터 나에게는 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나와 친하진 않으니까, 어느 정도 선을 둔다. '이 사람과의 마음의 거리가 이 정도니까 이 정도로 대해야겠다.'라는 생각과 비슷한데,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해 보자면 나를 얼마나 오픈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 많은 모습, 솔직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조금 먼 사람에겐 친절히 대한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고, 그걸 느낄 때마다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먼 사람이 가끔 선을 넘는 행동을 하면 마음의 거리가 더 멀어지게 된다. 오히려 거부감이 든달까. 나를 모르는데 나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게 두거나 멀어진다. 굳이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본 내 모습도 내 모습 중 하나일 테니까 괜찮다. 그렇지만 뭐 좋게 생각해 주면 좋으니까 친절히 대하는 게 나에게도 더 좋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싫어하지도 않고, 친절히 대해주면 상대방도 대부분 나에게 친절히 해준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나를 숨기는 것 같다. 뭐랄까 그냥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다.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알고, 터놓고 이야기했을 때 더 좋은 경우도 많다는 것도 알지만, 그게 나에게는 쉽지 않다. 내가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를 떠나게 되더라도 '나'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을 다 보이고 싶지는 않다. 모든 것을 다 보이는 게 일단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생각해 보면 상처받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 약간 이런 마음 아닐까? '네가 나를 떠나도 나는 네가 모르는 나만의 무언가가 있어. 난 너한테 다 보여준 적 없어. 난 너 없어도 나로서 존재할 수 있어.' 같은 마음. 이런 마음도 겁 많은 성격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자신에게 안 보여주고 말 안 한 생각이 있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인생은 결국 자신의 것이니까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내가 이 정도 생각을 하는 것을 이해해 주면 좋겠다. 사실 반대로 생각하면 자신의 무언가를 가져서 혼자서도 1인 사람과 친한 게 더 낫지 않나? 난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뭐, 나와 생각이 다른 것일 뿐 그게 특별히 이상한 건 아니니까 달라질 것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고 싶지 않다. 몸에 상처가 나면 흉터가 생긴다. 흉터가 생기고 아물고 나면 더 이상 아프진 않아도 이전과 같은 상태는 아니게 된다. 이전과는 살의 감촉이 달라지고 흉터가 눈에 보이기도 한다. 아픈 기억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본인조차도 다 아물었다고 생각한 흉터가 남는다. 흉터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잘 보이지 않게 되기도 하고 다친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상처 입은 기억은 흉터가 주는 것이 아니다. 흉터는 그저 결과물이다. 상처 입은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오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불리한 상황을 피하거나 이겨낼 방법을 알아야 생존에도 유리하고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다. 아픈 기억이 떠오를 때도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고 싶은 마음에 피하거나 이겨낼 방법을 찾는다. 이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더 이상은 아프고 싶지 않으니까. 같은 상황에 같은 고통을 또다시 느끼는 것은 피하고 싶으니까. 가끔 누군가는 그런 고통을 마주하고 정면돌파 해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둔감해진 채로 혹은 잠시 그 고통을 잊은 채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 수 있다.




선택을 하는 일은 결국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버리는 게 참 무섭다. 내 손에 든 게 맘에 들지 않는데도 그걸 버리는 게 참 힘들다. 그걸 들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걸 들고 있으면 적어도 남들이 말하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최근에 대학원과 복직을 두고 고민을 했다. 꽤 오래 한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그 고민을 마주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써 놓은 글을 보니 나는 그때도 여전히 겁이 많았다. 그래도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마음의 방향을 뚜렷하게 설정하려 했던 것 같다. 어디로 갈진 몰라도 적어도 싫어하는 것을 알고 그것에서 멀어지고 싶어 한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고려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많은 고려 사항들이 내 선택을 더 쉽게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아는 게 많다고 해서 결정이 쉬워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겁이 많은 그때의 나는 감사함도 느끼고 두려움도 느낀다. 참 생각이 많아 보인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다른 길로 가고 싶어 하는 나를 보자니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미안해진다. 조금 더 어른이 될 줄 알았을 텐데, 조금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길에서 나의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을 텐데,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찾아서 다듬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을 텐데, 미안하다. 그때 내가 생각한 멋진 어른이 아직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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