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은 무엇일까? 철학자 사르트르는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제한받고 구속받는다고 한다. 타인이 보는 시선에 의해 우리가 규정당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타인의 시선은 타인이 부과한 의미대로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선은 타인을 지배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러한 말은 나에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판옵티콘을 떠오르게도 하고, 남을 규정하는 우리의 시선이 떠오르게도 한다. 어떤 사람을 보기만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을 규정한다. "저 사람은 화가 났네, 저 사람은 집중했네" 같이 타인을 규정한다. 사르트르는 글쓰기 역시 타인을 지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의식 바깥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의미를 부여한다. 글을 쓰므로 인해 주인이 되고, 저항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글을 쓸 때 독자를 의식함으로 인해 나의 선택에 다한 타인의 인정이나 승인을 신경 쓴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다.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맞는 것 같다. 글을 쓸 때는 내 생각이라고 생각하면서 쓰면서도 타인을 의식한다. 그들의 반응을 상상하고, 반론이나 질문을 상상하고 그에 대한 답변도 미리 적어놓으려 한다. 타인을 의식하는 것인지, 나 스스로 나를 의식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 글을 읽게 될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런데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는 분명 내 생각이라고 생각해서 쓴 글이고, 분명 내 개인적인 고민과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글이기에, 내가 아닌 사람이(나 말고는 다 내가 아니긴 하지만) 내가 쓴 글에 공감하는 것을 보면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내 생각을 적었는데, 그 생각을 읽은 누군가가 내 생각을 그의 생각이라고 하니 말이다.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그의 마음속에 있는 형태 없는 무언가에 점점 이름과 설명이 붙게 되고, 그가 나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착각한 것일까? 다시 말해 내가 그의 생각을 지배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의 생각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흡수해서 대신 글로 적어준 것일까? 그들이 나에게 공감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들에게 공감하고 있는 것이고 단지 글로 적은 것일 뿐일까? 내 생각이란 것이 있을까?
좀 더 개인적인 의미에서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에게 글쓰기란 지나가는 생각들을 잡아두기 위한 장치이다.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들을 글로 적고 나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내 스스로 내 생각들을 규정하고, 정리하고, 분류한다. 그렇게 글로 적고 나면, 그 생각들은 다시 살펴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미 잡아둔 생각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잡아두지 않으면 계속 머릿속을 빙빙 돌면서 툭툭 튀어나오곤 한다. 그렇게 튀어나오는 생각은 가끔 어딘가에 걸려 지나가지 않고 계속 눈에 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눈에 띈다. 그럼 그 생각을 잡아다 글 속에 넣어둔다. 그럼 한동안 다시 보이지 않는다. "머리 비우기"를 통해서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꺼내어 놓고 나면, 한결 편해진다. 그 생각을 다시 안 해도 되니까. 그냥 꺼내 놓았던 그 글을 보면 된다. 그래서 글이 점점 길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순간을 잡아 놓으려고 하니, 다시 꺼내 보았을 때 '이거 말고 분명 다른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 하면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 하고, 최대한 깨끗이 비우려고 하는 것 같다. 온전히 담고 싶어서 말이다. 이렇게 글을 쓰면 마음속이 청소되는 기분도 든다.
내 글을 읽다 보면 주제가 달라도 어느 정도 항상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행복이나 미래, 선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 수많은 가능성들이 피어나게 만든다. 뭘 봐도 그런 것들만 떠오르나 보다. 그래서 서로 다른 주제로 시작해도 결국 다 그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머리 비우기"라는 사실 "마음 비우기"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머리 비우기를 제대로 못해놓은 건가 싶기도 하다. 형태만 다르게 똑같은 내용을 똑같이 반복해서 쓰고 있으니 말이다. 제대로 비웠으면 다시 올라오지도 않았을까 싶다. 하긴 쓰레기가 계속 나온다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행위를 멈춰 선 안되는 것처럼, 그게 오히려 깨끗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생각을 다르게 보고 있으면 좋을 텐데, 내 글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히 나의 착각일지 진짜일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는 행위가 나에게는 행복이다. 어떤 생각을 어떻게 적을지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집중할 수 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나에게 참 중요하다. 잠을 자는 느낌이랄까. 회복과 정리의 시간이다. 나름의 표현을 생각하는 건 꿈을 꾸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나에게 글쓰기는 잠자기인가 보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점점 앞으로 나간다. 시작하기만 하면 점점 글이 길어진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으면, 그러니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마구 쏟아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보통은 못한다. 그런 생각은 꼭 어딘가로 이동할 때 들어서 그렇다. 꼭 바쁠 때 그런 생각이 난다. 바쁜 게 피하고 싶어서 그런 건가? 글을 쓰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오히려 글을 쓰는 시간만 보면 양이 적은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하다 보니까 생각하고, 글 쓰고, 생각하고, 글 쓰고, 이런 과정을 반복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그 시간이 재미있다. 뭐랄까 그 시간 안에 계속 머물고 싶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잘 안 써지면 좀 스트레스 받기도 하고, 꽤 많이 쓴 글을 그냥 다 지우기도 하고 하는데, 근데 그냥 재미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렇게 "재미있다."라고 말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름 붙이기, 규정하기 이런 것 같다. 분명 글을 쓸 때 내가 느끼는 건 차분함, 고민, 답답함, 그런 것들인데 왜 거기에 "재미있다."라고 이름 붙이는 걸까? 이상하다. 끝나고 나서도 재미라기보다는 끝냈다는 후련함, 반응에 대한 기대감, 또 하나 만들어냈다, 쌓았다.라는 것에 대한 만족감, 그런 것들인데 왜 나는 자꾸 재미있다라고만 표현할까? 이렇게 자꾸 내 감정을 뭉뚱그려 생각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글을 길게 쓰는 만큼, 내 감정도 조금 더 솔직하게,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고민을 결국 글에 다 담으려는 무리한 시도도 계속하고 있으니까, 감정도 그렇게 느끼는 건가 싶기도 하다. 다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으려는 욕심. 결국 글을 쓰는 행위란 그런 것일까?
그래도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에 취미를 가진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생각해 보면 근 2년간은 그렇게 쳇바퀴도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다 상대적인 거니까. 만약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난 재미있을 것 같은데, 직업이라면 역시 글이 인기 있어야 할 텐데 매번 비슷한 글을 쓰는 내 글이 잘 팔리려나. 글을 쓰는 취미는 좋다. 나를 드러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를 드러내는 거의 유일한 취미이다. 이상하게 글로 나를 드러내는 건 그렇게 부끄럽지 않다. 뭐랄까 글은 시간을 들여서 읽어야 하다 보니, 우선 그만한 관심이 없다면 읽지 않을 것이고, 읽다가 자신과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 읽을 것이고, 다 읽고 굳이 나에게 표현 안 할 수도 있고, 뭐랄까 적당한 거리감이 있는 느낌? 글을 읽는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은 것은 전혀 아니지만, 시간을 내서 이런 글을 읽어주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싫으면 굳이 안 와도 된다는 마음이 드러나는 매체가 가진 장점들이 좋다고 할까. 시간을 들여서 정리하고, 일정 부분 가공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읽고 싶은 사람만 읽고, 다가오고 싶은 사람만 다가오는 글쓰기의 모습을 나는 좋아하는가 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옥에 살면서도, 지옥을 떠나지 못하나 보다.
살아보니까 그렇게 지옥도 아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