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 비우기 1

by 구육오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공부를 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나 왜 이렇게 힘들지?' 하고 느껴지는 순간. '나 왜 이렇게 많이 힘들지?'일 수도 있고, '나 별거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느낌으로(이렇게) 힘들지?' 하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냥 다 재미가 없기도 하다. 특별히 공부나 일을 안 해도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꼭 열심히 살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땐 맛있는 것도 별로 먹고 싶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는 뭘 먹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땐 배고픔이라는 게 그냥 연료가 떨어진 기계가 보내는 신호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사실은 그냥 연료나 열량을 필요로 하는 기계에 불과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우울함까진 아니고, 그냥 비 오는 날처럼 회색이 마음에 가득 찬 느낌이 들기도 한다.


쉬는 날이어도 나가서 놀기도 귀찮다. 씻고, 준비를 하고, 어디에 갈지 정하고, 그렇게 준비를 하다 보면 또 시간이 애매하게 지나있지는 않을까, 지금 나가면 애매한 시간에 애매한 공간에 갔다가, 하는 것도 없이 애매하게 돌아다니다가 아쉬움만 가득 채워서 오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나가지 않게 된다. 하루를 아쉬움에 빠뜨리고 싶지 않으니 불확실한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편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나가봐야 돈만 쓰지.' 하면서, 조금 한심해 보일진 몰라도 안전하게 있기를 택한다. 그냥 내가 버렸고, 버리게 될 수많은 하루 중에 하루가 더 생길 뿐이니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하면서 불안한 마음은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폰만 본다. '오늘은 그냥 휴식해야지' 생각하지만, 재미있게 노는 것도 아니고 편하게 잠을 자거나 맘 편히 쉬는 것도 아닌 상태로 눕는다. 스스로에게 완전한 휴식을 허락하는 것이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면서 '아, 나는 그래도 마냥 쉬고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죄책감은 느끼고 있으니 갱생 불가능한 인간은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휴식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100% 편안한 마음으로 쉬지는 못한다. 불편한 불안감과 함께 조금 움직여볼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기절하듯 잠들 때까지 멍하니 폰만 보고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그렇게 잠에 든다.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이유 모를' 공허함을 느끼기 때문 아닐까? 말 그대로 이유를 모르게 마음이 텅 비어있으니까, 방치하기도 더 쉬운 것 같다. 어디에서 왔고, 어떤 마음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공허함은 우리가 눈치채기 힘들게 천천히 조금씩 자리를 넓혀간다. 우리는 미지의 감정을 알아가는 것보다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 더욱 집중하면서 자연치유되기를 바라며, 오히려 마음속에 생겨난 공허함을 무시하곤 한다. 아니, 오히려 지금은 그런 공허함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며 생각에서 잠시, 그러나 완전히 지워내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의 빈 공간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채고, 눈치를 채고 나서도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으니까 해결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이유를 모르니까 어느 쪽으로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가 유지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우리가 무시하고 지낸 시간만큼 공허함은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하고, 무시하고 지낸 만큼 공허함의 이유를 찾는데 더욱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아마 공허함의 공간이 커진 만큼 공허함의 이유가 숨을 공간도 함께 넓어지나 보다.


아마 공허함이 가장 잘 하는 게 그런 것 아닐까? 공허하다는 건 비어있다는 거니까, 마치 아무것도 아닌 척 슬며시 생겨나서, 아무것도 아닌 척 우리가 신경 쓰지 않게 만들고, 아무것도 아닌 척 자리를 넓혀가고, 어느새 눈치를 챘을 땐 너무 커져버려서 아무것도 아닌 척하고 있는 그 감정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게 되어있는 것이다. 공허함이 가득 차면 모든 것이 귀찮다. 아무것도 아닌 척하는 감정이 마음에 가득 차면 내가 느낄 다른 감정들이 자리를 잃고, 결국 나 자신도 내 마음에 가득 찬 공허함처럼 자신 스스로에게 마저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척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까? 머리로는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지내면 안 된다는 것을. 공부도 해야 할 것 같고, 돈도 벌어야 할 것 같고, 뭔가 자신의 앞길을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아니면 적어도 편하게 확 쉬어서 컨디션을 회복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나가서 놀면서 어떤 경험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음이나 기분은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 행동으로 드러난다. 내 마음에 공허함이 가득 차면 나 또한 공허한 행동을 하게 된다. 우리 주변을 봤을 때, 이런 날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나에게서도, 내 주변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내가 볼 수 있는 수많은 건물들의 수많은 방안에서도 그런 날들은 생겨난다. 멍한 하루. "어제 뭐 했어?"라는 질문에, "그냥 누워서 폰"이라는 대답이 나왔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런 하루를 보낸 사람이지 않을까? 그런 공허함은 우리에게 일종의 패배감을 준다. 편안한 패배감. '그런 하루가 있다고 해서 내 인생이 망하진 않을 것이고, 미래에는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마음. 지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꼭 지금 당장 오늘은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미루고 있지만 적어도 그 미룸에서 죄책감을 느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변명까지 완벽한 편안한 패배감.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공허하다는 것이 왜 생겨나는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그걸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일 것이다. 공허함은 어디에서 올까?

방금 문득 든 생각인데, 정말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딱 여기까진 잘 읽었어도 이 이상 글이 길어지면 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위에까지는 그냥 별생각 없이도 읽을 수 있었지만, 이 문단의 첫 문장은 마치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읽어야 할 것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글은 점점 길어지고 있고, 마음속 공허함은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하루를 아쉬움에 빠뜨리고 싶지 않으니 불확실한 일은 하지 않는다."라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냥 누군가의 하나의 의견일 뿐인 이 글 읽는 시간을 자신이 투자했을 때, 다 읽고 나서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으니 굳이 이 이상 불확실한 일을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자신이 느끼는 공허함을 마주하고 나면, '내가 공허함에 대해서 알면서도(혹은 생각해 봤으면서도) 바뀌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면서 정말로 알면서도 안 하는 자신이 느끼게 될 죄책감이 더 커질까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주하지 않으면 몰라서 안 한다고 자신을 속일 수 있지만, 알고 나서 안 하는 것은 편안한 패배감의 범주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미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허함을 마주하고 나서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찮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운 감정을 변화시키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도 내 안의 공허함을 마주하려 노력해 보는 것일 뿐, 성공할 수 있을지,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번 도전해 보려는 것일 뿐, 내 삶은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아쉬움에 빠지더라도 불확실한 일을 한번 해보려는 것뿐이다. 당신이 귀찮다면 여기까지만 읽어도 상관없다. 불확실한 일을 하라고 설득할 수는 없으니 이 글은 여기까지만 쓰도록 하겠다. 나의 불확실함의 과정은 다음 글에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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