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 비우기 2

by 구육오

이전 글에서 공허하다는 마음이 왜 생겨나는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그걸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려 했다. 나도 나의 공허함을 완전히 마주 볼 수 있을지,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냥 한번 해보려 한다. 실패할 수도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한 번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뭐.

공허함에 대한 좋은 생각이 있다면, 꼭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우선 의식의 흐름대로 공허함을 따라가 보자. 공허함은 어디에서 올까? 직관적으로 떠올려보면, 공허함은 이불에서 오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이불에서 알아차리는 것 같다. 특정 기간을 너무나 열심히 살아서 번아웃이 온 사람이든, 평범하게 자기 할 일을 잘 하면서 살지만 어느새 지루함을 느끼고 '앞으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발전할 수 있지?' 같은 고민에 빠진 사람이든, 특별히 열심히 살지도 않고 딱히 하는 것도 없어서 자기 스스로 불안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는 않게 되는 사람이든 공허함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보통 그런 생각은 하루를 끝마친 후 이불, 혹은 쉬는 날의 이불에서 하게 된다. 공허함과 이불은 너무 잘 어울린다.

사실 공허함은 어디에서 온다기보다는 내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다른 모든 감정들처럼 나에게서 생겨난다. 우리는 왜 공허함을 만들어낼까? 이전과 같은 것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전만큼의 만족감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공허함을 느끼게 해 지금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촉구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새로운 만족감을 향해 나아가는 것 대신에 "지금 상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욕망을 가진 나"의 모습에 중독되어버려 그 상태에서 멈춰버린 것은 아닐까? 욕망을 가지는 것이 욕망을 이루는 것보다는 쉬우니까 말이다.

더 강한 것,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 공허함은 어쩌면 우리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 대신 마음만의 욕심. 몸이 따라주지 않는 욕심이다. 그렇기에 욕심과 성격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마음은 하늘에 있는데 몸이 땅에 있으니, 올라갈 생각에 막막해진다. 대신 하늘에 있는 나를 상상하고, 하늘을 꿈꾸는 나의 모습 그 자체는 나쁘지 않으니 거기에서 멈춰버린다. 반대로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껍데기만 쫓고 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 경우엔 몸은 하늘인데 마음이 땅에 있는 건가? 어쨌든 이 역시 내가 지금 느끼는 것과 다른 종류의 행복이나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보면 공허함이라는 건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그 간격만큼 생겨나는 건 아닐까?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상황, 하기 싫은데 하고 있는 상황.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이 따로 떨어질 때 그 벌어진 틈, 그 간(間)의 이름이 허(虛) 함이고, 한번 벌어진 틈은 관성으로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몸과 마음의 차이에서 공허함이 생겨난다고 생각하고 계속 진행해 보자. 그럼 공허함은 정말 나쁜 걸까? 사실 감정이 100% 나쁘기만 한 게 어디 있을까? 그냥 그러한 상태가 있을 뿐, 거기에 가치를 더해 넣는 것은 우리가 임의로 하는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러한 가치는 나 자신만의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나 타인에게서 온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만족하고 살지만, 누구인지도 모를 임의의 타인의 기준으로(결국 그것도 내가 보는 것이라고 하면 내 기준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보면 한참 모자라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타인의 눈을 내 눈에 끼워 넣고 거울을 보면 모자라 보이는 것이다. 그러한 기준 역시 어떻게 보면 공허한 느낌이 든다. 가치의 기준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을 해봐야겠다.


우리가 느끼는 공허함의 장점을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못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해준다는 점이 있다. 즉, 나의 부족함을 보게 한다. 공허함이란 어떻게 보면 메타인지가 아닐까? 자신의 못난 점을 보게 하고,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참 기가 막히게 떠오르게 한다. 공허함이 세워주는 계획은 어떻게 보면 최상의 계획일지도 모르겠다. 또 공허함은 죄책감을 통해 동기 부여도 해준다. 죄책감을 느끼기 싫으면 움직이면 되는 거니까. 다만 무엇을 고치면 되는지, 무엇을 할지는 알려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혹은 너무나 잘 알려줘서 그 고통의 시간을 미리 보여주고, 자신이 정말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고통을 미루게 한다. 또 공허함이 세운 계획은 다른 모든 계획들이 그러하듯,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까.

공허함이라는 건 양가감정일까? 비어있지만 무거운 마음, 해야 한다는 생각과 하기 싫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마음, 지금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지금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 동시에 두 가지를 하게 만드는,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죄책감이라는 완벽한 변명까지 가지고 있는 공허함. 공허함의 장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허함은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에너지를 사용하게 해서 결국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그 자체의 패배감을 우리에게 준다. 몸과 마음의 분리로 인해 우리는 불안함을 느낀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공허함을 느낄 때, 우리의 몸은 마음에게 지고 만다.


애초에 우리는 양가감정, 아니 다가감정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우리는 대부분 다가감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상태나 감정에 이름을 붙일 땐 그냥 내가 느끼는 감정 중 가장 크게, 혹은 가장 쉽게 보이는 감정을 말할 뿐이다. 공허함이 힘든 건 오히려 양가감정이라서가 아닐까? 원래 50 대 50이 가장 고르기 힘드니까 말이다. 어쨌든 나는 공허함을 줄이고 싶다. 그 이유는 나의 평안을 위해서다. 아무리 편안한 패배감이라고 해도, 패배감은 패배감이다. 아무리 이불 속에서 생각만 하고 있다고 해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잊히지 않는다. 그 사실과 알면서도 하지 않는 나를 바라보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한다. 그렇기에 공허함은 나의 사랑과 평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서도 못 본 척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몸이 힘들고 그 과정이 힘들더라도 그 상태를 벗어나려 움직여야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이전 글에서 말했듯,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 행동으로 드러난다. 내 마음에 공허함이 가득 차면 나 또한 공허한 행동을 하게 된다."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공허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힘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공허한 꿈을 꾸는 공허한 사람이 되는 것은 본능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추구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허함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좋을까? 단순히 생각해 보면 몇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1. 마음을 움직인다.

2. 몸을 움직인다.

3. 몸과 마음을 둘 다 움직인다.

4. 몸과 마음을 둘 다 움직이지 않는다.


1.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을 움직이면 몸은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미래에 대한 꿈도 계획도 세우지 않고 포기하면 된다. 이상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냥 움직이지 않은 채 이불 속에서 편히 누워있는 자신을 받아들이면, 적어도 공허함은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공허함이 문제가 아니게 될 수 있다. 자신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을 포기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는 있지만 설명하고 싶지 않은 생각과 감정은 쓰고 싶지는 않다. 이쪽은 굳이 추천하고 싶지도 않고, 딱히 내가 가고 싶은 길도 아니다.


2. 몸을 움직인다.

자신이 떠올리는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일단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변화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에 읽은 책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시간은 금이다. 자신의 금을(시간을) 비싸게 팔고 싶다면, 금덩어리가 아니라 금반지를 만들어서 팔아야 한다. 다만, 금반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도 들고, 갈려나가는 금도 생긴다. 금반지를 만드는 동안에는 금을 팔 수 없다. 자신의 시간을 더 값비싸게 만들기 위해서도 결국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이상이 무엇인지 안다면, 포기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몸만 움직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너무 멀리에 있거나 뚜렷하지 않다면 중간에 지칠 가능성이 있다. 한 번에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에 가는지 모르면서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사람은 오래 달릴 수 없다.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어느 순간에 다시 공허함을 느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3. 몸과 마음을 둘 다 움직인다.

개인적으로 공허함을 관리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큰 목표, 골인 지점은 어디 있는지 어떤 모습인지 알지만,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마음을 조금 움직여보는 것도 좋다. 너무 뻔하고 당연한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작은 목표부터 세우고 이뤄나가는 것만큼 확실하고 뚜렷한 방법이 없다. 가까운 계획은 실행하기 쉬우며, 가깝기에 길을 잃어도 금방 돌아올 수 있다. 내 키보다 작은 벽이 세워진 미로를 가는 것처럼 말이다. 목표 지점도 보이고, 그곳으로 가는 길도 조금만 집중하면 찾을 수 있다. 멀지 않은 목표이기에 몸을 움직이기에도 부담이 적다.

본인이 가진 이상이 애초에 작은 것임에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오히려 목표를 조금 더 높게 잡아보는 것도 좋다. 너무 쉬운 목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눈길이 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너무 쉬운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작은 것에도 실패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차라리 어려운 것에 도전해 보는(도전하는 척 말고, 진심으로)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몸과 마음을 둘 다 움직이지 않는다.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상 이미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몸과 마음을 둘 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공허함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에게 휴식이 필요하고, 회색의 기분이 되고 싶다면 공허함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나는 개인적으로 글을 쓸 때 약간 그런 기분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너무 행복하기만 하면 글이 잘 안 써질 때가 있다. 우울함이나 공허함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 그렇기에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어떤 감정이든 우리에게 필요하다. 잘만 이용하면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수영을 배울 수 없는 것처럼 그 안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그곳에서 나오는 법을 배우기는 쉽지 않다. 넘어져 봐야 달릴 수 있다. 충분히 빠져서 그곳을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너무 오래 있지는 않기를 바란다. 물속에 들어가도 땅까지 나올 힘은 있어야 하고, 땅에 나와서도 집까지 걸어갈 힘은 남아있어야 한다. 깨끗한 물이 아닐 수도 있고, 그 속에 푹 빠지고 나면 나중에 더 큰 회복의 시간이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만약 자신 스스로를 자주 안 좋게 보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탈출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자신만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공허함에게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고, 그것을 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다. 마음에 생긴 공허함은 공허하다는 이름처럼 비어있지만은 않을 수 있다. 비어있음도 비워내라고 하는 것 같아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글 일 수도 있고, 너무 뻔한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지만 긴 글이 무색하게 남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추천을 해보자면 지금 상태에서 벗어나 보라는 것이다. 움직이고 있다면 멈춰보고, 멈춰있다면 움직여보라. 마음과 몸이 동시에 같은 곳에 있을 수 있는 일을 해보기를 추천한다.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시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하는 생각 말고, 실제로) 그 순간만이라도 공허함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과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야 한다. 실제로 "찾아내야" 한다. 어디 있는지 기억을 되짚어 생각하거나 떠올리는 것은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미 수없이 많은 시간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몸을 움직여 찾아야 한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이 아니다. 해야 한다고, 해야 한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안 하게 된다. 딱 한 번만 해보자. 지금의 나 말고 미래의 나를 위한 행동을 딱 한 번만 해보면 된다. 사실 미래의 나든 지금의 나든 결국 '나'라는 이름을 붙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한 번만 해보자. 오늘 잘한 일 딱 하나만이라도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생각 말고 눈에 보이는 것 딱 하나만 해보자.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너무 뻔한 글이고, 예상되는 단순한 해결책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올바른 정답일 때가 있다. 만약 당신이 이 글에 동감하여 무언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딱 한 가지만 지켜줬으면 좋겠다. 또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거나 싫어하지 않기. 실패했다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언제나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공허함에 빠지더라도 절대 자신을 잃지 말고, 가끔은 혼내더라도 꼭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한 마디만 하고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그만 좀 미루고 그냥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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