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쓰는 글, 새해를 맞이한 글, 30살이 되고 처음으로 쓰는 글이 또 겁에 관한 내용일 줄은 몰랐다.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쓴 글은 "공허함 비우기"였는데, 그 이후로 딱히 공허함을 못 비웠나 싶기도 하다. 하나 웃긴 것은 지금 쓰게 되는 글의 답이 다 전에 쓴 글에 있다는 것이다.
왜 알면서도 못하는지.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코앞에 있는 답도 못 봤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쉬운 것도 못했을까. 그래도 괜찮다.
최근에 침착맨 유튜브를 보다가 '에니어그램'에 대해 듣게 되었다. 에니어그램은 MBTI처럼 사람의 성격을 분류하는 성격 유형 이론의 하나이다. 에니어그램에서는 사람을 크게 9가지 성격으로 분류하고 있다. 학창 시절에 이것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테스트를 했었는지, 했었다면 어떤 유형이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나는 어떤 유형일까 하는 궁금증과 심심한 마음에 인터넷에 있는 무료테스트도 받아보고 나무위키도 좀 찾아봤다. 그러던 중 "한국 에니어그램교육연구소"를 알게 되었고, 해당 사이트에서 정식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가격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비싸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를 받아 보았다. 가격은 6,000원, 총 81개의 문항을 가지고 있다.
총 9가지 유형 중 나는 5번 사색가 유형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1번 개혁가 유형의 점수 역시 높은 편이었지만, 사색가 유형의 점수가 가장 높았다.
에니어그램은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의 양옆 숫자와 맞닿아 있는데, 각 유형은 자신과 맞닿아 있는 2개의 유형을 '날개'로 사용할 수 있다. 쉽게 이야기해 본래 자신의 유형(나의 경우 5번) 외에도 그 양옆에 위치한(나의 경우 4번 혹은 6번) 유형들의 성향을 보조적인 삶의 전략으로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나는 6번 충성가 유형을 날개로 사용하고 있다. 에니어그램에서는 이를 5w6로 나타낸다. 5w6 유형은 "문제 해결자"형이라고 한다.
나의 검사 결과나 에니어그램 자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적어두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하나하나 다 설명하면서 글을 쓰기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중심이 되는 부분을 정리하거나 전달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우선시하고, 에니어그램 자체에 대한 설명은 상당 부분 생략하도록 하겠다. 개인적으로 6,000원이 아까울 정도의 검사는 아니라고 생각하니 관심이 있다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에니어그램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한국에니어그램교육연구소 사이트나 나무위키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검사 결과, 나의 상태는 '스트레스 상황'이었다. 뭐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듣고 나니까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나 하는 생각인지 자각인지 모를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솔직히 테스트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스스로 내면이 굉장히 안정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조금 자만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평소 감정의 폭이 넓지 않고 안정적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정말 큰일이 아닌 이상 별로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히 '테스트 결과도 좋은 상태로 나오겠지' 하고 예상했다. 누군가와 상담을 하거나 이야기를 할 때, 잘 들을 수 있는 이유 역시 나의 내면이 평화롭고 안정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각 유형의 점수가 너무나 뒤죽박죽이었고, 거의 사용하지 않는 유형의 에너지도 있었다. 이렇게 넓게 분포된 점수대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각 유형의 특징이 나에게 고르게 있지 않다는 것은 내가 어딘가에서는 분명한 약점이나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3번, 7번, 8번 유형의 에너지는 나의 메인 유형인 5번과 16점 이상의 차이가 났다. 개인적으로는 결과를 받고 조금 충격이 있었다. '멀쩡한 상태인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 상태라니, 내가 이렇게 뒤죽박죽인 점수를 가지고 있다니.' 하는 생각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나에 대해서 잘 알고, 내 감정을 잘 컨트롤하고, 솔직히 '건강 점수는 떨어져도 멘탈 점수는 좋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물론 이 테스트의 결과가 내 정확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강력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단지, 내가 내 생각보다 내 상태를 잘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이 검사를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지에 나온 조언만큼은 정말 나에게 해당하거나 필요한 것들이었다.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 보시길 바랍니다.
혼자서 두려워하지 말고 서로 협력하면서 의견을 나누세요.
선입견을 버리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지도록 심호흡을 해보세요.
자신 있게 사회에 참여하도록 하며 타인과 생각을 공유하세요.
새롭고 모험적인 경험에 도전하십시오.
자신 있는 태도로 삶을 개척하십시오.
"할 수 있다"라는 태도로 이슈에 관여하십시오.
너무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때론 육감을 믿으십시오.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행동하십시오.
생각만 하지 말고 추진하십시오.
나의 감정을 알도록 노력하십시오.
솔선수범하여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파란색으로 칠해놓은 조언은 정말 내가 내 스스로 보아도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다. 나는 솔직히 너무 안 한다. 마음먹은 일들은 한가득인데, 막상 몸을 안 움직인다. 심지어 내가 전에 쓴 글에서도 몸을 움직이자, 그냥 좀 하자고 써놨는데, 그렇게 써놓고도 안 한다. 그런 점을 보면 이 테스트가 마냥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에니어그램에 따르면 5, 6, 7번에 해당하는 유형은 머리(사고) 중심의 사람인데, 이들은 에너지의 중심을 사고에 두고 살아가며, 세상 일에 대한 불안이 있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한다. 머리 중심의 사람은 '뭔가 틀린 것은 아닐까? 잘못되지는 않을까?'하고 걱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생각해낸 전략과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진짜 너무 맞는 말이다. 그냥 딱 나다. 오만 걱정, 별별 걱정을 다 하지만, 막상 실행력이 약하다. 나는 어딜 놀러 가도 항상 짐이 많다. 나는 거의 내가 예측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예측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걱정, 온갖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짐을 챙긴다.
나에게 불안감이 많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돌아보면 정말 그랬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어쩌면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르겠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꼭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사람은 뭘 원할까?'하는 궁금증이 든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순한 궁금보다는 파악하고 싶은 느낌? 그러니까, 호의나 순수한 궁금증보단 이 사람을 분석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그게 그건가?) 어쨌든 그런 궁금증이나 파악하고 분석하고 싶은 마음 역시 어쩌면 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마음에서 기인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이 사람이 안전한 사람인지, 안전한 상태인지 알고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타인에게 선을 긋고, 천천히 그 사람을 파악한 만큼 가까워졌던 게 아닐까? 뭐, 순식간에 친해지는 사람도 있긴 하니까 100% 그런 것은 또 아닐 수 있다. 그냥 그랬을 수도 있다는 거지.
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 등이 의도하지 않아도 느껴질 때가 있다. 내 나름으로는 꽤나 예측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타인의 감정이나 상태를 잘 알아차리는 것도 어쩌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반복한 행동으로 인해 생겨난 능력 같은 것이 아닐까?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이 예측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그건 나에게 안전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대낮 외국 골목길은 무서워도, 한밤중 우리 집 앞 골목길은 무섭지 않다. 무엇이든 알고 나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자꾸 알고 싶어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사람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내 두려움을 없애고 싶어서 그런 궁금증을 가졌던 걸까? 물론 매번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아니다. 내 불안을 없애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 사람의 불안을 없애주고 싶어서 그 사람을 알고 싶던 마음도 분명 있었다.
나는 나름의 자아성찰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메타인지도 이 정도면 괜찮게 하고 있는 수준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여태까지 안정적이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내 상태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과를 받고 나니,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안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냥 내 상태를 잘 모르는 사람, 혹은 내 상태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나? 사실 내면의 나는 마음껏 기쁘거나 슬프고 싶었는데, 내가 무시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10대, 20대의 불안했던 시간을 거쳐 드디어 안정적인 사람이 된 줄로만 알았는데 아직도 멀었었나? 생각해 보면 꼭 안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나는 늘 안정적이고 싶었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그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었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유추하게 된다. 논리적으로 앞뒤만 맞으면 그냥 "다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단지 내가 그런 것들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내가 감정이 0인 사람은 아니니까, 알고 나면 더욱 공감 되는 부분이 분명 있다.
이렇게 푸념하는 이유는 그냥 내가 나를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 생각이 나에게는 조금 스트레스를 준다. 사실 특별히 기분이 좋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다. 그냥 내가 타인의 감정을 바라볼 때, 마음보다는 머리를 조금 더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게 참 애매하다. 내가 생각하는 공감은 머리와 마음을 같이 쓰는 느낌이다. 진정한 공감은 이해와 공감이 동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머리를 더 먼저, 더 많이 쓰느냐, 마음을 더 먼저 더 많이 쓰느냐하는 그 단순한 차이 때문에 이러고 있나 싶기도 하다. 사실 뭐가 먼저든 크게 상관도 없고, 여태까지 자연스럽게 해왔던 것들인데, 갑자기 이상해진 느낌이다. "내가 평소에 오른쪽 신발을 먼저 신었나, 왼쪽 신발을 먼저 신었나." 그런 느낌? 분명 둘 다 사용하고 있는데, 뭐가 나에게 더 중요하고, 더 우선시 되는지 잘 모르겠다. 왜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잘 모르겠다. 뭐가 먼저면 어떻다고.
테스트를 괜히 했나... 알게 되어서 좋은 건지, 괜히 몰라도 될 것을 알아서 스트레스를 만들어서 받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그 덕에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방송도 켤 결심도 하게 되고, 오랜만에 글도 쓰게 된 것은 좋다.
그런데 뭔가 글쓰기에 집중이 안 되는 느낌은 있다. 오랜만이라 그런 것인지, 내 정체성을 다시 세워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다. 꼭 달라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테스트 하나 했다고 나에게 없던 모습이 생겨난 것도 아닌데, 괜히 낯선 사람처럼 느껴진다. 나를 보는 내 눈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닌가? 그게 달라지면 다 달라진 건가?
앞으로 내가 느끼는 내 감정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조금 든다. 또다시 내가 잘 못 알게 될까 봐 그렇다.(또 모를까 봐, 잘 못 알까 봐 무서워하는 게 참 한결같다.) 테스트 결과지를 보니 8번 유형의 강점을 따라가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8번 유형은 지도자형으로 자기주장이 강하고, 의지가 밖으로 향한다고 한다. 원하는 것을 빠르게 성취해내려 노력한다는 강점도 있다고 한다. 확실히 나에게 부족한 점들이다.
나에겐 추진력이 부족하다. 뭔가를 강하게 추진해 내는 일과 거리를 두다 보니 점점 더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마음을 먹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항상 정보를 찾아보고, 준비를 한다. 딱 준비까지만 하고 끝난다. 바로 무언가를 실행하는 건 무섭다. 실패할까 봐 무섭다. 어쩌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가 아닐까? 실패를 피하려고 자꾸 도전을 회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준비는 다 해놓고 뭘 자꾸 망설이는 걸까... 실패를 맞이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마음을 다시 먹어봐야겠다. 내가 여태까지 누군가의 감정에 마음으로 공감했든, 머리로 이해했든 그래도 그것은 다 진심이었다. 나는 두려움을 알고, 불안함을 알고, 공포를 안다. 누구에게나 그런 감정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볼 때도 그 감정들에서 빨리 벗어나길 바랐다. 그러니 내가 여태까지 누군가를 어떻게 대했건, 어떤 감정을 느꼈건 그것이 진심이었다면 그저 지금처럼 살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 문제가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몰라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고, 모자라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너무 큰 두려움은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준비한 것들을 실행에 옮길 계기가 생겨났을 뿐이다.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돼. 여태까지 잘했는데 뭐. 괜찮아. 이렇게 오랜만에 글도 쓰고, 방송도 켜보고. 아무 일 안 일어나는데 뭘 그리 걱정했어. 괜찮아. 잘했어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