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게 뭔데

by 구육오

요즘 들어 낯선 기분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모습도 많은데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붕 떠있는 느낌이다. 글도 잘 써지지가 않아 아쉬움이 많다. 30살이 되어서 이런 대사를 하는 게 참 어이없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다운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인식 가능한 나다운 모습이 생겨버려서 그 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 있나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어떤 상황이나 질문, 작품 같은 것을 마주하면 노력하지 않아도 생각이 슈루룩 뻗어나갔다. 오히려 동시에 너무 많은 것들이 떠올라 행여 버려지는 게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곤 했는데, 지금은 뭔가 턱이 많다. 이전엔 괜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 나오면서 생각이 발전되어갔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 느낌이다. 생각이나 정신이 조금 뻑뻑하다. 기름칠이 안 되어있는 느낌이다. 놓치는 것이 많고, 어떤 것을 떠올리는 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집중하는 것도 좀 어려워진 것 같고, 뭐랄까 직관이 너무 단순해진 느낌도 든다. 물론 직관이라는 것이 원래 어림짐작 같은 것이고, 단순한 것이긴 하지만, 이전과 느낌이 다르다. 좀 더 무뎌진 느낌이다.

오히려 보통 내가 어떻게 하더라?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 평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하지? 하는 생각들이 먼저 들 때도 있다. '나다운 모습'에 스스로 갇혀버린 느낌이다. 그게 뭐였든지 간에, 뭔가 이상하다. 나를 따라 하는 나 같다. '나'라는 배역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참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이건 뭐랄까 감정이라기보다는 정말 느낌에 가깝다. 감정보다는 감각이다. 이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뭔가 다른 느낌이다.


나는 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정신적으로 많은 함양이 있기를 소망하는 사람이다. 그 과정이나 결과를 내가 썩 좋아하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방송, 독서, 공상, 투자, 자격증, 사람들과의 대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 혹은 어떤 방식이든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몇 가지는 내가 원해서 필요한 것들이고, 몇 가지는 조금 덜 원해도 나에게 도움이 되어서 필요한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하려면 분명 집중을 해야 하고, 시간을 써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잠에 들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어제 나눈 대화를 통해서 내 몸이 많이 지쳐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새삼 하나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려고 해도 결국 나는 깨어있어야 하고,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에너지를 썼으면 다시 충전을 해야 한다.


나는 쉬는 날이 많지만, 한번 출근을 하면 짧게는 13시간, 길게는 16시간 동안 회사에 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밤 10시를 조금 넘긴다. 그런 생활을 하고 다음 날이 쉬는 날이면 나는 보통 억울해서라도 놀고 싶고, 늦게 자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게임을 하든 유튜브를 보든 하면서라도 내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내 하루를 거의 모두 회사에서 사용했으니까 말이다. 회사에서의 나도 분명 나지만, 그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다음날 쉬니까 누워서 늦게까지 유튜브 봐야지~' 하는 나의 생각은 20분짜리 영상 하나를 채 넘기지 못한다. 금방 잠에 들고, 다음날 오전 내내 자고도 정신은 멍한 채 피곤함이 유지된다. 막상 쉬는 날이 되어도 앞에 써 두었던 내가 하고 싶은 몇몇 것들을 나는 결국 만족할 만큼 해내지 못한다. 쉬는 날엔 정말 쉬는 것 밖에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내 몸이 일하는 날과 일하지 않는 날을 버튼 누르듯 휙휙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의 상태는 쭉 이어져간다. 그렇게 쭉 이어진 나의 몸은 결국, 내가 원하는 뭘 하고 뭘 하고 어쩌고저쩌고의 것들이 아니라 나에게 정말 필요했을지 모를 휴식을 선택한다.

평소 같았다면 이렇게 "피곤해서 못 한다. 힘들어서 쉬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들은 다 변명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지금은 변명이라고 해도 좋으니 좀 회복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가 들으면 웃을 이야기긴 하지만 나이 들어서 피곤한 느낌과는 뭔가 다르다. 컨디션이 회복이 안되는 느낌이다. 현재 체력이 아니라 전체 체력이 깎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진짜 바이오리듬이 엉망인 느낌이다. 운동을 좀 해야 하나?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고, 신기한 점 하나는 이것도 알고 나니까 좀 낫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내 상황을 듣고 나니까 진짜 그럴 수 있겠다고 느껴지고,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여유를 가지게 된다. 아마 어제 대화가 없었다면 이 글을 쓸 때도 '아 방송 켜고 해야 하는데...' 하면서 부담을 가졌을 텐데, 오히려 포기하니까 좀 편한 마음도 있다.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욕심도 부리고, 하고 싶은 게 많은 것도 좋지만, 역시 지금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은 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속 노를 젓고 있으면 물은 언젠가 들어오겠지만, 물이 들어오기 전에 노를 최대로 저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만족하지 못할 만큼 일수는 있어도, 하고 싶은 일들에 전원을 조금씩 나눠주면서 여유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가 나와 합치되지 못한 채 붕 떠있는 존재가 된 것 같고, 여태껏 어떻게 해왔는지 어색하기만 한 감각들도 어쩌면 모자란 회복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아마도 육체가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알아도, 이런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는 몰랐던 것 같다. 나의 정신이 잘 작동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빠르게만 변해가고, 더딘 성장은 우리에게, 아니 스스로에게 무언의 압박을 준다. 타인의 한 계단은 멀기만 해 보이고, 나의 한 걸음은 작게만 보인다. 그 작은 한 걸음이라도 멈추는 순간에는 마치 완전히 뒤처지고야 말 것이라는 이유 없는 공포에 휩싸인 채, 마음은 급해지고 발에 가시가 박혔는지, 다리에 근육통이 있는지 따위를 신경 쓰기보다는 우선 지금의 한 걸음이 급하게만 느껴진다. 누구인지도 모를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다 보면, 어느 날 어느 순간에는 "그래,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다 무용한 일이야."생각하며 발에 박힌 가시를 빼보지만, 빠진 가시가 있던 곳에 살이 마저 차오르기도 전에 참지 못하고 또 달려나가고야 마는 우리는, 어디까지인지도 모를 미래만을 맹목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니, 바라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긴 시간 푹 쉬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나는 많지 않다. 우리가 가지고 싶은 것은 끝 모를 투쟁 같은 노력이 아니라, 그 끝에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편안한 마음과 자신을 위한 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베풂과 여유 같은 아름다운 것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아름다운 것들은 절대로 피나는 노력 후에나 가질 수 있는 높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나 자신의 욕망이 맞는지도 아닌지도 모를 목표만을 향해, 휘청이는 좀비처럼 달려간다. 그 아름다운 것들이 언제나 언제나 나를 기다려 줄 것이라고 착각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가능한 행복을 버리고, 죽을 듯 노력했음에도 찾아오지 않을지 모르는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정녕 옳은 길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녕 틀린 길이라고도 나는 말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달리려 하는가. 무엇을 가지고 싶어 하는가. 우리가 가지고 싶은 것이 정말 '지금'을 버리고서라도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소중한 모든 것이야말로 언젠가의 내가 원했던 것이고, 또다시 원하게 될 무언가이지는 않을까? 얼마만큼의 성공을 해야만, 우리는 멈출 수 있을까? 정말 오늘이, 언제일지도 모를, 아니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를 그날보다 그렇게나 가치 없는 것일까? 그날의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이지는 않을까?


늘 오늘 하루만 행복하게 지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만 행복하게 365번을 지내고 나면 나는 1년 내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행복은 어디에나 있는데, 어디서 튀어나온 지 모르는 욕심은 자꾸 나를 재촉하기만 한다. 스스로를 열정이 가득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또 내가 나를 잘 몰랐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당연히 욕심도 부리면서 행복도 할 수 있다. 그 욕심이 자신의 행복일 수도 있다. 정답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쉴 땐 쉬는 것 한 가지, 원하는 것을 할 땐 원하는 것을 하는 한 가지. 일하면서, 쉬기도 하면고, 놀기도 하는 것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내 몸은 하나다. 소중한 나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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