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가?
집, 나의 내면
1. '세계'가 보는 '나'
'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자신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내면은 정리되지 않은 창고이다. 스스로에 관한 많은 잡동사니들이 내면의 구석에 뒤죽박죽 섞여있다. 그렇기에 내면에서 나를 찾는 것은 어렵다. 이번 글에선 내면의 의식이 아닌 외면의 나로 정의하고자 한다.
'세계'는 나의 외면을 의식할 수 있고, 의식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것이라고 해보자. 모든 생명체, 나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물, 물질이 아닌 개념까지도 모두 세계에 포함한다. 즉, 외부의 모든 것이다. 이러면 '세계'가서 보는 '나'가 뜻하는 바를 말할 수 있겠다. 세계는 외부의 모든 것과 상호작용할 때의 나를 보고 있다.
2. 행위, 존재, 세계
나의 의식은 '세계'에 드러나지 않는다. 나의 '행위'만이 드러난다. 자신의 행동을 모두 설명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의 내면은 분명 내 행위에 관여하여 작용하지만, 세계에 드러나지 않는다.
행위는 곧 상호작용이다. 책을 읽는 것은 행위이다. 세계의 어떤 개념과 관념을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 음악감상, 영화감상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작용은 일반적으로 보이기 쉽지만 상호작용이다. 내가 공부나 독서를 하며 세계에 받은 것은 내 행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를 외면의 모습으로 정의했기에 나의 행위가 곧 나이다. 그렇다면 행위하지 않는다면 세계에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내가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등의 행위조차 하지 않는다면 나의 존재감은 더 없어지게 된다. '세계에서 보는 나'는 '내가 존재하는 것'을 뜻하고, 결국 나의 내면보다 행위에 관련한다.
3. 집, 내면
집은 안전하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집에선 존재하기 위한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면에 갇히는 과정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내면의 나를 세계는 보지 못한다. 세계는 굉장히 거대한 것이기 때문에 안전한 내면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러나 존재는 인간의 필수적인 요소인 것 같다. 집은 안전한 장소이고, 내면의 나를 세계는 보지 못하는데, 어째서 불안함을 느끼는가? 언젠가는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나를 보게 된다. 결국 존재란, 내가 행위하는 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4. '나'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가?
이 글은 그냥 집을 나가기 위한 이유를 생각해 보다 쓴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면에만 틀어박혀 있고, 바로 옆의 세계의 존재를 몰랐다. 나의 내면은 세계와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내면이 나의 행위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나의 존재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세계는 생각보다 가깝다. 하지만 나의 존재를 세계가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나'를 '세계'와 연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연결의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부턴 내면에서 벗어나자. 집 밖으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