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by 문성원

0. 이 모든 일이 내 탓이란 말인가?

당신이 지금 고통받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삶은 그 자체로 비극적이다. - 232p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세상을 향해 분노하지 않는 길은 정말 없는 걸까? - 222p

조던 피터슨은 삶의 본질은 고통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투쟁하는 삶이고, 세상에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노력의 과정은 당연히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그나마 노력은 개인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떤 고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세상에는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난다. 갑자기 몸에서 암을 발견한다거나, 자연재해나 사고로 가까운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 정말 노력했음에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최악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만약 인생이 고통스럽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이 전부 우리의 잘못일까? 그렇지는 않다. 세상에는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기는 불행한 일들이 많다. 만약 그런 일을 당하거나 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가 세상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우리에겐 세상을 탓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탓하기 시작하면 결국 분노로 이어지게 된다. 다른 어떤 원인으로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의 내면에 불합리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분노를 외부로 표출한다. 그렇게 세상을 향한 분노는 다툼과 갈등의 원인 중 하나이다.



1. 다툼과 갈등

2018년 즈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남녀갈등을 얘기해 보겠다. 사람이 서로 다른 성별로 태어난 것은 어찌 보면 세상의 불합리함이다. 누구도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각각의 고충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사회적 문제로 제시되었고 사회는 해결 방안을 찾아야 했다.


논쟁이 계속되며 서로가 겪는 고충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충분히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과격한 사람들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르다는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생각했다.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서로를 비난하기 바빴다. 젊은 세대의 남녀 사이엔 서로를 증오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결국 남녀 갈등은 서로의 화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혔다. 당시의 일의 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막연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사회적인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제의 책임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렸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것들로 인해 무엇이 나아졌을까?


분노와 증오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오직 혼돈뿐이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저주가 모여 앞으로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조던 피터슨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세상을 탓한 결과의 예시로 정치적 갈등과 범죄를 예시로 든다. 많은 범죄와 정치적 갈등이 개인의 불안의 표출과 관련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툼과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것일까? 불합리한 세상과 환경을 탓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2. 희망과 변화

우리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조던 피터슨은 먼저 문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정말 내 책임은 아무것도 없는가?' '내가 여기까지 오는 수많은 과정 속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해 보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내 책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세상은 앞으로도 불합리할 것이지만 나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조던 피터슨은 이에 관해 <수용소 군도>를 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언급한다. 솔제니친은 극악한 수용소의 환경에서도 세상을 탓하고 저주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수용소 군도>를 통해 소련의 독재 정권과 공산주의 사상의 실태를 세상에 알렸다.


비슷한 예시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있다. 그는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이다. 그 또한 생존 확률이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


조던 피터슨과 빅터 프랭클의 말하는 바는 비슷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불행과 시련을 빌미로 세상을 탓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앞서 말한 작가들과 같이 대단한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시도해 볼 만한 여러 가지 일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3.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것이 더 쉽다

다툼과 갈등, 희망과 변화.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을 남에게서 찾으며 의미 없는 다툼을 계속해야 할까? 세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내가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바꿀 수 있다.


그렇다고 사회적 문제에 손 놓고 있으란 말은 아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부터 조금씩 좋아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이 엉망진창이고 방이 어질러져 있는 사람이 사회에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사회도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한번 찬찬히 살펴보자. 엉망인 것이 여기저기 보일 것이다. 미뤘던 해야 할 일들도 많을 것이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 3달 끊어놓고 일주일밖에 안 간 헬스장, 먼지투성이인 방. 우리가 당장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나를 세상의 피해자로 만드는 것보다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나에게 훨씬 더 도움 되는 일이다.


당신의 삶을 깨끗이 정리하라.
이전 07화아이를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