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구호에 유혹되지 마라
법칙 6 :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신은 죽었다." - 니체
니체의 이 견해는 서양 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유대-그리스도교의 모든 가치가 위험할 정도로 경솔한 이성적 비판에 시달리고, 그 기초에 놓인 초월적이고 전능한 신의 존재가 치명적인 공격에 노출되었다는 두려움에서 나왔다. - 193p
조던 피터슨은 니체의 선언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배경을 설명한다. 19세기말, 이성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절대자였던 신은 권위를 잃었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이성적 비판이 신을 중심으로 한 절대적인 가치 체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하지만 신은 단순한 종교의 대상이 아니었다. 삶의 규칙과 목표를 세워주고, 가정과 사랑과 헌신을 실천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이었다.
먼저 니체는 일신교 사상의 목표지향적인 구조와 그것이 제시하는 의미 있는 세계 바깥으로 인생의 목적이 밀려나 불확실해짐에 따라 허무주의가 부상하여 우리의 실존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194p
신을 공격한 것은 이성과 과학이었다. 과학은 물질적인 풍요와 사회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인간에게 꼭 필요한 '의미'를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과학이 대신할 수 없었다. 신은 단순히 종교적인 대상을 넘어 인간의 삶에 의미와 질서를 만들어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렇게 의미의 부재가 일어난 세상에서 사람들은 신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 '거짓 우상'이 바로 이데올로기라고 조던 피터슨은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는 보수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인종 및 젠더 사상, 포스트모더니즘, 환경주의 등의 각종 '주의'를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 200p
왜 이데올로기는 '거짓 우상'일까? 각종 '주의(-ism)'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상이다. 그러나 종교가 힘을 잃은 시대에 이 사상들은 본래의 목적을 넘어 숭배의 대상인 '신'의 자리를 대체해 버렸다. 사람들은 신이 아닌 특정 사회 문제에 대한 도그마를 신봉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조던 피터슨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 그들은 일신교도와 다를 바 없다.(몇몇 신을 믿는 다신교 숭배자일 수도 있다.) - 200p
이데올로기는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페미니즘, 공산주의 같은 사상은 주로 피해 의식과 억압에 시달리는 이들이 모이고, 환경주의 같은 사상은 도덕적 선민의식에 빠진 이들이 모인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당연히 해결해야 할 것들(환경오염, 성차별, 빈부격차)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내세우는 정의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1) 이데올로기적 환원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는 개별 원인들을 신중하게 분석한 뒤에 잠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실행하고서, 그 효과를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한다. ... 반면 문제를 단순하게 축소하고 그 문제를 야기하는 악인을 등장시켜 공격하는 것은 훨씬 쉽고 즉각적인 만족을 준다. - 201p
물론 권력도 경제처럼 역사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질투, 사랑, 굶주림, 성, 협력, 계시, 분노, 혐오, 슬픔, 불안, 종교, 자비, 질병, 기술, 적의, 우연도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중 어느 것도 다른 것으로 완벽하게 환원되지 않는다. - 206p
이데올로기의 큰 특징은 세상을 단순화한다는 점이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원인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해결책의 부작용까지 검토하고 평가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많은 수고를 생략한다. 대신 명확한 악인을 설정하여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공감을 유도한다.
급진적 페미니즘 : 급진적 페미니즘의 경우 법적, 문화적 제도의 결함을 개선하기보다,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집착한다. 성차별에 관한 모든 문제를 남성의 억압이라는 한 가지 원인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극단적 환경주의 : 환경오염은 인구 증가, 기술적 한계, 천연자원, 경제 발전 단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다. 그러나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은 이를 '기업의 탐욕'이나 '자본주의의 폐해'라고만 규정한다.
조던 피터슨은 이데올로기의 이런 태도에 대해 경고한다.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변수로 설명하는 것을 경계하라."
(2) 분노와 시기심
그들은 먼저 그 사회구조가 불공평하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은 논리적으로 착취와 부패에 의존해 부당한 수혜를 누리면서, 불공평한 사회구조를 옹호하는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 206p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은 세상이 불공평한 장소로 규정하고, 자신을 세상의 불합리함의 피해자라 여긴다. 이들은 단순히 현실의 불합리함에만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성공을 거둔 이들을 향해 '부패한 체제의 수혜자'나 '부도덕한 착취자'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러한 인식이 집단의 공감대를 얻게 되면, 사회 제도나 체제에 대한 공격은 분노와 시기심이 아닌 '정의로운 행위'로 포장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분노와 시기심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이데올로기는 과거에도 몇 번이나 실패한 역사가 있다. 분노와 시기심에 빠져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세상을 파괴할 힘을 가질 수는 있어도,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건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없다.
(3) 이분법적 사고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이 지지하는 피해자는 항상 선량하고(때로는 맞는 말이다), 가해자는 항상 악하다(사악한 가해자는 언제나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세계가 죄 없는 희생과 사악한 가해로 가득하다는 저해상도의 일괄적 진술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어떤 집단도 죄가 있다고 미리 가정해서는 안 되고, 그 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 207p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복잡하게 분석하는 대신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피해자 집단에 속해 있는지, 가해자 집단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선인과 악인이 나뉘는 것이다. 결국 개인은 없어지고 우리 편인지, 아닌지만 남게 된다.
마르크스주의 : 세상을 '생산 수단의 소유'라는 관점에서 집단을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으로 나눈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가 되고,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에 착취당하는 사람이 된다.
정체성 정치 : 인종, 성적 지향, 국적 등을 기준으로 집단을 나눈다. 특정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도덕적 우월감을 부여하거나(피해자), 반대로 역사적 원죄를 짊어지게(가해자) 만든다.
급진적 페미니즘 : 사회 구조의 모든 불합리함을 '가부장제'라는 하나의 변수로 환원한다. 이 구도 안에서 남성은 태생적인 가해자가 되고, 여성은 아무런 주체적 선택권이 없는 무력한 피해자로만 그려지게 된다.
당신 자신에게서 세계가 잘못된 이유를 찾는 것이 도덕적으로 훨씬 타당하다. 불의를 외면하지 않는 정직한 사람이라면 응당 하는 일이다. 일단 남의 눈에서 티끌을 찾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음을 깨달으면 무엇이 무엇이고, 누가 누구이고,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가 한결 명확해진다. - 208p
조던 피터슨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여섯 번째 법칙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와 일맥상통하다. 세상을 비난하기보다는 내면의 무질서를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 훨씬 건설적이다. 내 방과 마음은 내 의지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믿게 된다면 비난 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고통이 세상의 탓이라고 느껴진다면 아주 작은 문제들부터 해결해봐야 한다. 작지만 무언가가 달라질 것이고, 그것이 분노와 시기심이 아닌 선한 미래를 그리는 원동력이 생겨난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보내고, 더 작고 정확하게 정의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해야 한다. 문제를 정의할 때는 남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크기로 개념화하고, 문제를 개인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그 결과를 책임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 209p
이데올로기에 의지하여 자신의 불행을 감추고자 하면 안 된다. 삶의 문제는 세상의 문제만큼이나 복잡하다.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공식과 구호가 삶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진 않는다. 그러니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