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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QUEST_Porto, Portugal

Day 1~2, Incheon→Moscow→Madrid→Porto

by Rainy spell

일을 한다는 건 참 여러모로 짜증 나는 일의 연속인데, 특히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더욱 그렇다. 가려고 한 때에 가려고 한 나라를 못 가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건 정말 타격이 크다. 특히 취소하는 날이 여행 시작일에 가까워질수록 그 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데 당연히 Cancellation Fee가 커지기 때문이다. 내가 포르투갈을 여행했던 해도 원래 5월로 준비했던 계획이 취소되고 허겁지겁 다시 비행 티켓을 구해 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 일정부터 모든 것을 바꿔야 했는데, 한가한 5월이 아닌 추석 때 가게 되어 최적의 비행 여정(환승 대기시간이 적절하다든가)은 커녕 항공사부터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래저래 말이 많은 아에로플로트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로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포르투갈까지는 연결편이 없어서 모스크바에서 환승해서 마드리드까지 간 다음, 1박을 하고 또 별도 티켓을 구해 포르투갈로 가야만 했다.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추석을 이용해서 순수 여행에만 9일짜리 여정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짜증을 상쇄해 줬다. 5일 휴가를 내면 앞뒤 주말을 포함해서 9일이지만, 유럽을 왕복하면 시차와 비행시간 때문에 아무리 최적화된 일정을 만들려고 노력을 해도 순수 여행은 6.5~7.5일을 넘길 수 없으니까.


아침저녁 슬슬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9월 말, 나는 포르투갈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 두근대며 아에로플로트의 비행기에 올라 모스크바로 가는데, 과연 인천-모스크바 구간의 비행기는 오래된 비행기만 쓴다더니 정말 그랬다. 일단 나보다 2열 앞의 Overhead Bin은 잘 닫히지 않아서 스튜어디스가 몇 차례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는지 모르겠고 기내식의 퀄리티도 그냥 기내식이긴 해야겠으니 구색만 갖춰 놓은 수준에, 국적기나 다른 선진국 항공사의 친절한 기내 서비스 같은 건 당연히 기대도 안 했고 또 일견 시베리아 북서풍 같은 서비스 마인드가 차라리 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 건 다 좋았는데 모스크바에서 마드리드로 가는 환승은 정말 최악이었다. 동선부터 이리저리 꼬여 있는 데다가 검색대를 두 번 통과해야 하는 등 정말 어떤 녀석이 설계를 했는지 이렇게 멍청하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의욕 없이 느릿느릿 일하는 심사관과 직원들 때문에 환승시간이 세 시간이나 있었는데도 ‘어… 이거 잘못하면 시간 모자라겠는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빙빙 돌고 돌아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예견된 거지만 비행기는 최신 에어버스 기종이었다. 국가의 이미지 때문에라도 서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는 좋은 비행기를 쓰는 것이다. 물론 비행기 말고 나머지는 인천~모스크바 구간과 다른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렇게 어찌어찌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거의 열두 시가 다 된 시각, 공항 근처 이비스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라이언 에어를 이용해서 드디어 포르투갈 여행의 시작 도시인 Porto에 도착했다. 공항 건물에서 나오자 시원한 공기가 상쾌하게 나를 맞아준다. 아 이 기분이 너무 좋다. 여행지에 드디어 도착해서 공항을 나서면 여행 목적지의 공기가 나를 감싸주는 이 기분.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it never gets old.


아침 나절의 포르투 공항, Aeroporto Francisco Sá Carneiro.


Porto(포르투갈 발음으로는 포르투)는 Douro강이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한 포르투갈 제2의 도시로 이 나라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고대 로마제국이 이곳을 주요 항구도시로 발전시키면서 역사에 등장하고, 이 도시의 이름인 Portus Cale가 결국 그대로 국명인 Portugal이 된다. Porto=Portus(라틴어)=Port(영어)이니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된 Case인데 유럽의 지명에는 이런 것들이 널려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의 Provence(프로방스) 지방도 원래 속주를 뜻하는 라틴어인 Provincia를 프랑스어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이 역시 보통명사가 지역의 고유명사가 된 경우다. 고딕의 절정을 보여주는 대성당으로 유명한 독일의 도시인 Köln(쾰른)도 마찬가지로 로마의 식민시인 Colonia(=Colony)를 독일어식으로 읽은 것이고. 라틴어에서 유래한 지명 고찰은 이쯤 하고, 포르투는 이후 수에비족과 서고트족의 지배 시기는 물론 무어인의 통치를 거쳐 가톨릭교도들의 이베리아 반도 국토 회복 운동인 Reconquista(헤콩키스타, Reconquer) 초기에 가톨릭교도들이 탈환하고 포르투갈의 주요 도시로 주욱 기능하게 된다. 이렇듯 역사가 오래된 곳이라 도시 곳곳에 볼거리들이 널려 있다.


포르투의 공항은 시내와 1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메트로로 이동이 가능하다. 유럽의 메트로들은 대개 그 역사가 오래되어 차량이 오래된 것은 물론 역사(驛舍)는 더더욱 오래되어 지저분한 곳들이 많은데 포르투의 메트로는 굉장히 깨끗했다. 위도가 낮아 더울 줄 알았는데 대서양 쪽에 있어서 그런지 이 날 아침 약간 흐린 날씨 때문이었는지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고, 거기에 메트로 내부는 냉방을 원 없이 틀어주는 바람에 주섬주섬 윈드브레이커를 꺼내 입고는 목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어쩌면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 더 춥게 느껴졌을지도.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길에 이용한 Metro E 라인. 굉장히 깔끔했다.


메트로에서 내려 호텔을 찾아가는데 전형적인 유럽의 돌로 된 길이다 보니 아침부터 울려 퍼지는 캐리어의 바퀴 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민망할 지경이었다. 축척으로는 가까워도 짐과 함께 가는 길은 체감상 늘 더 길게 느껴진다. 평생 Backpacker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날로그로 여행할 때나 가능한 것이었고 이런저런 디지털 기기가 늘어난 지금은 캐리어만이 유일한 선택지로 남아 있다. 게다가 삼각대까지 함께 하는 길은 항공사나 공항마다 기준이 미묘하게 달라서 캐리온으로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도 있고 제멋대로라 그냥 맘 편히 체크인 러기지에 넣어서 보내버리는 게 마음이 편하다. 포르투갈 여행에는 엄청난 고민 끝에 가지고 가지 않았지만. 호텔에 도착한 때는 체크인할 수 있는 시간이 당연히 아니라서 짐을 맡기고 론리 플래닛과 카메라만 달랑 챙겨서 길을 나섰다.


포르투갈 여행의 첫 도시 포르투의 첫 번째 목적지는 Livraria Lello(렐루 서점). 1906년에 지금 있는 그곳에 세워졌으니 자그마치 1세기가 넘은 서점이다. 이 서점이 유명한 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조앤 롤링 여사가 포르투에서 영어 선생을 하던 시절 이 서점을 들락거렸는데, 바로 여기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호그와트 학생들이 입는 외투도 포르투갈 대학생들이 입는 검은색 외투에서 따 온 것이니 여러모로 조앤 롤링은 포르투에 빚이 있는 셈. 안으로 들어서면 그 유명한 빨간색 계단이 그야말로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방문객을 맞아주고 2층의 Bridge로 인도한다. 천장에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큼지막하게 있어 자연 채광이 부드럽게 여과되어 들어오는데 정말 몽환적으로 느껴진다. 과연 해리 포터 같은 이야기가 절로 떠오를 것만 같은 정경.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서점 중앙의 계단과 천장의 커다란 스테인드 글라스.


1층과 2층을 이어주는 계단. 짙은 갈색과 빨간색이 강렬하게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렐루 서점의 바로 옆에는 Torre dos Clérigos(Clérigos Tower)가 우뚝 서서 보는 이를 압도한다. 18세기 중반 건설된 Igreja dos Clérigos(Clérigos Church)의 종탑으로 높이가 무려 75m에 달해 올라가면 포르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문제… 까지야 아니지만 엘리베이터 따위는 없고 오로지 두 다리로 올라가야 한다. 이 때는 일에 완전히 찌들어서 매일매일 축 처진 파김치 신세여서 운동은 전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이었는지 계단이 많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는데 다 올라가니 숨이 턱끝까지 차서 넘쳐흘렀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남들 모두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중국의 황샨을 패기 하나로 계단을 걸어 올라갔던 게 무색했다(황샨을 올라가는 계단은 무려 6만 개). 물론 걸어 올라가서 힘은 들었어도 다음날 정상에서 맞는 일출을 선물 받긴 했으니 그걸로 된 거지만.


장대한 모습을 뽐내는 Torre dos Clérigos.


그렇게 힘겹게 올라가니, 포르투의 전경이 나를 맞아준다. 날씨가 흐린 게 조금 아쉬웠지만 짙은 오렌지색으로 칠해진 지붕들이 프라하의 페트신 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과도 비슷한 느낌을 자아냈다. 탑 위에서 남쪽을 바라봐을 때 Douro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이 Port Winery가 몰려 있는 Vila Nova de Gaia, 왼쪽 위에 있는 것이 포르투의 대성당인 Sé do Porto다. 여기에 올라와 보면 왜 포르투를 hilly city라고 하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는데 군데군데 언덕들이 굽이쳐서 고저차가 꽤 있는 편이다.


약간 흐린 날씨 덕분에 조금 더 그윽한 느낌을 줬던 포르투의 전경


탑에서 내려오자 마치 잊고 있던 가방 속의 초콜릿이 무심코 손에 집힌 것처럼 문득 배가 고파왔다. 여행을 할 때면 종종 이럴 때가 있다, 정신이 없어 배가 고픈 것도 잊은 채 돌아다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배가 고픈 것을 인지하게 되는. 탑 앞쪽의 조그만 광장에는 노천 카페가 있어 간단히 요기를 할 생각으로 들어가서 카푸치노와 고구마 무스 패스트리를 주문했다. 카푸치노는 여행 첫날의 정신없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 패스트리는 당을 채워 장시간 이동후 지쳐 있는 몸에 에너지를 주기 위해서, 라기보다 나는 그냥 대놓고 단 걸 좋아하는 유치한 입맛의 소유자라서 먹었는데, 그런 내 입에도 정말 과하다 싶을 정도의 단 맛이었다. 패스트리 안에는 층 사이사이에 고구마 무스가 들어 있고 그 위에 두툼한 sugar powder와 초콜릿이 올라가 있어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폭탄과도 같은 비주얼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보이는 그대로의 맛이 났다.


노천카페에서 잠시 쉼표를 찍는 시간을 함께 해 준 카푸치노와 다이어터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해줄 비주얼의 패스트리.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길이 내리막이라서 조금 내려온 다음에 돌아서서 클레리구스 성당과 탑을 함께 담아봤다. 거리 양쪽에는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색깔이 칠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그 소실점에 성당과 탑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유럽 특유의 거리 느낌이 참 좋다. 간판으로 점철된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차분함과 오래된 건물들과 성당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고즈넉한 아름다움.


차분하고 옅은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건물들과 어우러진 300년 된 성당과 탑.


그렇게 언덕을 내려와서 Centro Portugues de Fotografia를 가 보았는데 좋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기보다 포르투갈의 근현대 주요 사건들을 기록으로 남긴 느낌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단한 사진전을 기대하고 간 건 아닌 데다가 우리나라 근현대사도 잘 모르는 주제에 포르투갈의 그것은 언감생심 더 모르기 때문에 조금만 구경하고 나와서 Museu Nacional Soares dos Reis(국립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 박물관)으로 갔다. 이 미술관은 포르투갈 최초의 박물관 타이틀을 가진 곳으로 19세기 포르투에서 활동했던 조각가인 소아레스 도스 레이스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으로 그의 조각 작품은 물론 다양한 회화 및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카항카스 저택(Palácio dos Carrancas)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나의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Henrique Pousao의 작품 ‘Esperando o sucesso(Waiting for success)’.


포르투갈의 아이콘이라고 하면 단연 대항해시대와 Ajulejo(주석 유약을 사용해 그림을 그려 만든 포르투갈의 도자기 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드디어 이 아줄레주를 구경하러 갈 차례가 되었다. 포르투의 도심을 P자를 그리는 식으로 동선을 짜서, 박물관 구경을 끝낸 다음 이 날 여행을 시작한 Lello 서점 근처에 있는 Igreja do Carmo로 향했다.


가르멜 수도회의 수녀원으로 지어진 Igreja do Carmo(Carmo Church). 자세히 보면 두 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은 가르멜 수도회의 성당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내부도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지만 이 성당은 외벽을 가득 덮고 있는 ajulejo가 가장 아름답고, 포르투의 성당 중에서 가장 큰 아줄레주를 가지고 있다. 이 아줄레주에는 가르멜 수도회의 전설(이 수도회는 기원이 십자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이 묘사되어 있는데 회색 벽체에 흰색 바탕-파란색 채색의 아줄레주는 정말 아름다웠다. 파란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기도 해서 더욱 마음에 든 것일지도.


화려환 내부는 목각 위에 금박을 입힌 것이다. 십자가가 걸려 있는 제단과 감실은 화려함 그 자체.


높은 벽체와 성당 길이의 거의 2/3를 캔버스 삼아 장식되어 있는 아줄레주.


카르모 성당을 구경하고 다음 목적지는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어 걸어가면서 포르투의 구석구석을 즐길 수 있었다. 언덕진 큰길에서부터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까지.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 중심부가 으레 그렇듯이 고도제한으로 3~4층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는 주택가는 그 자체로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데 포르투는 집집마다 개성 있게 장식이 되어 있어 높이와 구조는 비슷해도 지루하지 않은 재미를 안겨줬다. 특히 벽을 다양한 색으로 칠해 놨는데 조잡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시에 녹아들어가 있는 모습이랄까.


여행 첫날에 만난 포르투의 가감없는 뒷태. 이런 모습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한 재미.


이번에는 나란히 붙어 있는 Palácio da Bolsa(Stock Exchange Palace)와 Igreja de São Francisco(Church of Saint Francis)를 볼 차례. 볼사 궁전은 가이드 투어만 있어 조금 기다려야 해서 성 프란치스코 성당을 먼저 구경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굉장히 인기가 많은 성인이고 또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기도 해서 여기저기 성당이 많은데 유독 포르투갈에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많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 여행에서 본 프란치스코 성당 중에서는 포르투의 성당이 가장 아름다웠다. 13세기 최초로 건축된 것을 15세기 확장 개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특히 내부는 온통 금박(100kg 이상을 사용했다고 한다)으로 뒤덮여 있어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볼만이었던 건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라는 점.


유럽은 이런 유적 설명표지도 정말 잘 디자인하는 것 같다. 유네스코 문화 유산임을 알려주는 마크와 함께.


고딕의 표준이라 해도 좋을 파사드와 종탑. 문 바로 위에는 성 프란치스코의 상이 장식되어 있다.


볼사 궁전은 19세기에 지은 증권거래소로 신고전주의 양식에 따라 건축되었다. 지금은 가이드 투어로만 진행이 되는데 여기도 내부 촬영이 안된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도 원래 취지에 맞게 증권거래를 해준다면 더 좋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재판정으로 사용되던 곳까지 이르렀다. 이곳에는 포르투갈의 재판광경을 시대에 따라 그린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13세기 재판을 묘사한 그림에 눈이 멎었다. 왕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고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아기의 볼에 키스를 하는 그림이었는데 내용 설명을 부탁하니, 아기 때문에 물건을 훔친 아버지를 왕이 무죄로 선고하는 장면이라 이에 감격한 아버지가 아이에게 키스를 하는 것이란다. 당시에는 재판관이 따로 없고 왕이 재판관의 역할을 했다는 데, 당시 왕이 현명했던 듯. 아버지가 훔친 게 왕비의 물방울 다이아몬드였다면 어땠을까요 라는 농담을 하려다 그만두었는데 잘 그만둔 것 같다.


멋진 파사드를 가진 Palácio da Bolsa. 약간 시청사 같은 느낌도 난다.


투어는 영어, 프랑스어 투어였는데 가이드가 따로 있는 건 아니고 한 명이 영어로 설명하고 바로 프랑스어로 설명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삼십 분가량이라 시간이 충분하다 할 수는 없었지만 설명이 알차서 재미있게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여행 첫날은 이렇게 서서히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여행 첫날은 늘 조금은 어리둥절하고 약간의 흥분한 상태에 있는데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볼사 궁전은 두로 강에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힐 겸, 완전히 어둠이 내리기 전에 두로 강변의 Ribeira 구역을 구경하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Douro 강변에 면해 있는(강의 북쪽) 히베이라의 컬러풀한 모습. 맑은 날이었으면 더 멋진 샷이 나왔을텐데.


Ribeira는 두로 강변에 붙어 있는 Old city center개념의 구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지만 두로 강변에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Ribeira 답다. 컬러풀하게 채색되어 있는 건물들, 노천을 따라 늘어서 있는 카페와 Bar, 두로 강변에 떠 있는 포트와인을 운반하던 전통배까지 정말 그림 같다.


여행을 하는 중이나 마무리할 무렵 여기에 앉아 커피든 맥주든 한 잔 하며 두로 강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근사할 것 같다.


Douro강 남북을 이어주는 Ponte de Dom Luís I는 유려한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무려 Eiffel의 제자가 설계한 것이다.


루이스 1세 다리를 거닐며 다리 위에서 강과 포르투의 전경을 천천히 즐기고 있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즐기는 여행지의 전경은 늘 멋진 법이다. 그렇게 여유를 즐기고 ‘슬슬 호텔에 돌아가 볼까’ 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흐리더니 그래도 여행을 다 마치고 와서 정말 다행이네라고 생각하는데 심상치 않아지더니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나올 때 우산을 갖고 나왔으면 그만인 건데 에이 괜찮겠지라고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호텔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몸으로 DSLR을 감싸듯이 웅크리고 뛰어야만 했다.


두로강 건너편에서 바라 본 Ribeira. 저 구름이 곧 비를 뿌릴 줄 이 풍경을 즐기고 있을 때는 몰랐지.


그렇게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포르투갈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여행 끝나고 내리는 비는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포르투 하면 Super Bock이라 이 맥주를 사 가지고 들어와서 비도 오겠다 루이 암스트롱을 플레이리스트에 잔뜩 쌓아놓고 수페르 복을 즐기는 것으로 첫 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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