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Porto→Guimarães→Potoa→Lisboa
이 날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Guimarães를 가는 날이었다. 전날 아침 일찍부터 늦은 시각까지 언덕으로 이루어진 포르투를 가열차게 걸어 다니느라 상당히 피곤함이 느껴졌는데, 기마랑이스를 다녀오고 나서 저녁에는 리스본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백팩에 캐리어까지 끌고 길을 나섰다.
미리 알아본 바로는 포르투에서 기마랑이스까지 버스가 50분, 기차가 75~80분이라 나에게는 시간이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당연히 버스를 타고 가려고 계획했다. 그렇게 캐리어까지 끌고 버스터미널로 갔는데 왜인지 사람이 나 말고 딱 한 명 있었다. 티켓 오피스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사람마저 없으니 완전히 당황해서 유일한 승객(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승객이 맞는지 의심스럽다)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영어로 물어보니 가차 없이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포르투갈어의 향연. 어떻게 도시 이름과 시간이라도 더듬더듬 포르투갈어로 흉내를 내보려 하지만 그 사람이 알아듣는다 해도 설명해주는 포르투갈어를 내가 못 알아들으니 그냥 항복이다. 순간 여기서 더 버스를 기다려 볼 것이냐, 아니면 시간은 더 걸리지만 확실한 기차역으로 가느냐 엄청난 고민을 했다. 사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버스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날려 먹을 수는 없었으니. 결국 다시 상 벤투 역으로 가서 늦은 출발을 했다.
그렇게 아침부터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겨우 Guimarães에 도착했다. 포르투에서 북서쪽으로 약 40km(직선거리) 떨어져 있는 이 자그마한 도시는 다름 아닌 포르투갈이라는 국가가 탄생한 곳이다. 포르투갈 최초의 왕인 아폰수 엔히크가 여기서 독립왕국을 세우고 주변으로부터 왕국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데 그의 근거지가 바로 이 기마랑이스였던 것.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에 더해 포르투갈 국가의 탄생지라고 하니 그냥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어서 선택한 것이다.
기마랑이스는 정말 자그마하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가 대개 그렇듯 Old City Center는 Largo da Oliveira와 Praça de São Tiago를 중심으로 대략 직경 5~600미터의 둥그스름한 원 안에 볼거리가 몰려 있고, 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공작의 저택과 오래된 성채가 서 있는, 한나절이면 보기에 정말 충분한 미니 사이즈를 갖고 있다. 기차역에서 약간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Old City Center는 금방 나온다.
첫 방문지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꽤 알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Museu Alberto Sampaio를 보고 Largo da Oliveira로 나오자 엄청난 인파가 광장에 가득가득 들어차 있다. 이 자그마한 포르투갈의 Medieval City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던 이유는, 내가 방문했던 당시 포르투갈이 ‘European Cultural Capital’의 후보지로 이 도시를 자랑스럽게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벤트로 중세 복장을 한 사람들이 그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하거나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런 건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광장의 모습은 정말 중세 그대로에서 멈춘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마음에 쏙 들었다. 로빈 후드와 리틀 존이라도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
광장의 한쪽에는 특이한 모양의 구조물-Gothic Canopy-이 서 있고 그 안에는 십자가가 서 있다. 전설에 따르면 Suebi족을 물리친 Visigoth의 Wamba가 현재도 있는 올리브 나무 옆에 창을 던지면서 이 창에서 나무가 자라나지 않으면 통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정말 창의 나무 부분에서 싹이 터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Wamba는 사실 이베리아 반도 전역과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남부 일부까지 정복한 정복자인데 여기까지 와서 창을 정말로 던졌는지는 의문이지만, 바로 그 이벤트를 기념하기 위해 창을 던진 그 자리에 이 기념물을 세웠다고 한다.
이 Largo da Oliveira와 바로 그 북쪽에 붙어 있는 Praça de São Tiago가 Old City Center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둘 다 중세시대 그 자체.
중세라는 호수에 가슴 언저리까지 빠져서 열심히 구경을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제 약간 북쪽에 떨어져 있는 더욱 멋진 유적지들을 만나볼 차례. 광장에서 북쪽으로 뻗어 있는 길이 Rua Santa Maria인데, 이 길을 따라 3~400미터를 걸어 올라가면 Paço dos Duques de Bragança(Palace of the Dukes of Braganza)가 나온다.
후일 브라간차의 공작이 되는 Afonso가 15세기 초 이곳에 저택을 짓고 살다가, 후에 공작이 되며 근거지를 옮기면서 이곳을 떠난다. 주인이 떠나간 성은 이후 버려져서 점차 폐허가 되어가다가 20세기 초에 이르러 대대적인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지금은 포르투갈의 국보가 되어 있다. 이 복원이 논란이 되었는데 복원을 진행하며 원래 저택의 존재했는지 확실치 않은 모습까지 더했기 때문이다. 그거야 뭐 어쨌든 지금의 모습은 멋지니까 봐준다. 게다가 어차피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니까. 복원할 때 궁전 내부를 17세기 플랑드르 지방의 태피스트리로 장식을 했다고.
궁전은 사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는데 마치 성당의 Cloister처럼 안뜰이 있고 1,2층은 아케이드로 되어 있어 상당히 독특하다. 열심히 내부를 구경하고 안뜰 쪽으로 나오니 오후의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회색과 갈색으로 이루어진 궁전을 더욱 멋지게 장식해줬다. 둥근 아치와 길쭉하게 삐죽삐죽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원통형 굴뚝이 퓨전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 어딘지 모르게 이슬람의 건축을 떠올리게도 하고.
궁전을 구경하고 북쪽으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저 멀리 성채가 보이는 가운데 조그맣고 소박한 성당이 나오는데, 이게 바로 포르투갈 건국의 아버지 아폰수 엔히크가 세례를 받은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Igreja de São Miguel do Castelo다. 이것도 역시 논란은 있는데, 그가 세례를 받으려면 이 성당은 9~10세기에 건설이 되었어야 하는데 기록에는 13세기에야 처음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이고 이 성당이 1000년이 되었냐 800년이 되었냐 하는 건 우리가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성당 지하에 많은 기사들의 무덤이 발굴되어 더욱 전설을 그럴듯하게 들리게 해 준다, 물론 후대의 왕이나 귀족의 전우들이었을 수도 있지만.
여느 유럽 도시가 그러하듯 기마랑이스에서 가장 높은 언덕 꼭대기에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장대한 성채, Castelo가 서 있다. 도시를 굽어보는 위치에 있는 높은 성벽의 중세 성채는 공격군에게는 여러 가지 난점을 안겨주고(성채가 없더라도 냉병기를 사용해서 아래에서 위로 공격하는 건 불리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자신들이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정치적 선전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더구나 이 성은 아폰소 엔히크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 앞에 다다라서 강렬한 햇살과 오르막길의 조합에 그늘에 들어가 약간 가빠진 숨을 잠시 고르고 있자니,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그렇게 고양이와 잠시 놀고 계속해서 성을 구경했다. 10세기에 시작되고 13세기에 대대적인 개축이 있었다 하는데 토대나 벽체는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을 테니 정말 견고하게 잘 지은 것 같다. keep(아성)에도 올라가 볼 수 있고, 성벽에도 올라가 볼 수 있는데 거기서는 그야말로 기마랑이스를 굽어보는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기마랑이스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왔으니, 이제는 다시 내려갈 차례다. 이 날 여행을 시작했던 Largo da Oliveira로 가서 아침에는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던 Igreja de Nossa Senhora da Oliveira를 구경했다. 크지는 않지만 실내가 정말 멋졌던.
여전히 중세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분주한 광장은 늦은 오후에도 활기가 넘쳤다. 잠시 광장을 다시 둘러보는데 귀여운 장면이 연출되었으니,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기마랑이스에서 가장 조화로운 파사드를 가진 18세기에 지은 바로크 성당인 Igreja de São Gualter였다. 앞에는 길쭉하게 광장이 있는데 화단을 정말 아름답게 꾸며놔서, 광장과 함께 바라본 성당은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줬다.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나중에 지어진 성당이라 인테리어는 평범했는데 파사드와 그 앞에 있는 광장이 정말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렇게 중세 도시이자 포르투갈이 탄생한 기마랑이스의 모든 여정이 끝나고 다시 포르투로 돌아왔다. 이제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만 하면 되는데, 배는 고프고 기차 출발 시각까지 여유는 없어서 서브웨이에서 참치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는, 리스본행 기차에 피곤한 몸을 실었다. 기차는 제법 빠른 속도(최고 속도는 190km였던 듯)로 달려가고 창밖을 보니 해가 막 넘어가서 붉은 노을이 유럽 대륙 서쪽 끝의 포르투갈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리스본 기차역에서 호텔까지 찾아가자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아침부터 버스 터미널에서 당황해서 허둥지둥했지만 이제 남은 기간은 리스본에서 당일치기가 가능한 곳과 리스본 여행만 남아 있어서 더 이상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일은 out 도시인 마드리드로 갈 때 밖에 남아있지 않아 마음은 편했다. 이 날은 조금 긴장이 풀려서인지 정말 깊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