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워킹맘입니다. 계약직이긴 하지만, 분명 워킹맘입니다.
둘째 아이 임신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고, 그 후 약 5~6년 정도 살림과 육아에 전념하였습니다.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결국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돈"
초등학교를 막 입학한 첫째와 아직 감기를 달고 사는 여섯 살 둘째를 뒤로하고 다시 생업의 터전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1. 남편의 '힘'이었던 가족이 '짐'으로
남편은 원래도 몸이 약한 편이었습니다. 마른 체형에 자주 체하고, 아픈 날이 많았습니다.
아이 둘을 돌보는 것도 벅찬데 남편까지 아프다고 하면 마치 아들이 셋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예민한 성격과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외벌이 가장으로서 혼자 감당해야 할 부담이 얼만 컸을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됩니다.
체할 때마다 죽을 끓여주었지만, 남편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죽'이 아니라 그 무게를 함께 나눌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 복직 전화를 받고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옛 동료에게서 복직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미 시간강사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 일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남편은 시간강사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으니까, 복직해 보는 게 어떠냐며 은근히 복직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 출퇴근, 집안일... 모든 것이 눈에 밣혔습니다.
주변에서는 치킨도 아닌데 반반이었습니다. 출근파와 전업파. 출근파는 아이들은 어떻게든 크니 돈 버는 게 우선이다, 기회 왔을 때 일해라 합니다. 전업파는 월급 얼마주냐, 최소 350만 원 이상은 돼야 아이들 학원비에 출퇴근 할 수 있다는 강경파도 있었습니다. 월급 350만 원, 심지어 세후 350이면 연봉이 5000만 원입니다.
3. 6개월 변동금리의 나비효과
결국 저는 복직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친구가 말하던 세후 350만 원커녕 세전 250만 원 수준의 급여였지만 그 마저도 절실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을 약 3억 5천만 원하면서 6개월 변동금리로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5년 고정 후 변동금리보다 대출이자가 약 0.5% 저렴하게 시작되었고,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가 없다는 가정에 6개월 변동금리로 선택했습니다. 이후 약 3년 만에 금리가 대폭 오르면서 매월 상환금액도 50만 원 이상 부담이 더 해졌습니다.
외벌이로는 감당이 어려웠고 이제는 맞벌이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습니다.
4. 전업맘에서 워킹맘으로
사실 그전에도 완전한 전업맘은 아니었습니다. 시간강사로 월 50~100만 원 정도 벌며 살림에 보태었습니다. 수업은 주로 오후에 있어서 오전과 수업이 없는 날은 운동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아이들 돌보며 집안의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워킹맘이 되면서 삶의 궤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의 등하교, 식사 준비, 집안일, 그리고 시간과 체력 관리까지 워킹맘으로서 해야 할 일들도 많았습니다. 하나하나 도장 깨기 하듯 수첩에서 지워가며 해내야 했습니다.
5. 워킹맘이 되고 난 이후
신기하게도 제가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남편의 체기는 사라졌습니다. 얼굴도 밝아지고 표정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외벌이에서 맞벌이로 혼자가 아닌 '함께'가 되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남편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복직한 지 4년, 그 사이 회사도 2번 옮기게 되어 현재 회사에 있습니다.
급여도 조금씩 올라 이제는 세전 300만 원을 넘었습니다. 친구가 얘기했던 350만 원은 아직 택도 없지만, 저에겐 정말 소중한 월급입니다.
6. 계약직 워킹맘
처음에는 '계약직 워킹맘'이라는 말이 부끄러웠습니다. 좋은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돈도 적게 벌면서 아이들만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큰돈 버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 하교 때, 하원 때 엄마 없이 아이들끼리 집에 있는 시간이 늘 미안했고, 밥도 잘 차려주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일을 하면서 월급 그 자체가 주는 안정감, 그리고 사회 속에서의 역할이 주는 만족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계약직이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삶은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투잡'이었습니다.
조금씩, 저라는 사람도 다시 사회 속에서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적은 돈이지만 함께 벌며 남편의 짐을 나눠 들었고, 우리의 삶도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마이너스 통장도 거의상환해 갔고, 아이들 학원도 보내고, 집을 옮길 때 보탤 돈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체력적으로는 힘듭니다. 시간도 부족합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말처럼 저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눈부시게 자라났고, 그 모습은 때때로 벅찰 만큼 고맙습니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삶의 방향과 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변화 속에서 저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성숙해지고 있기를 바랍니다.
이야기는 아직 많습니다. 이 연재가 끝나면 '워킹맘'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로 또 한 권을 이어가려 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송파 1층 집으로 이사 온 우리 가족의 일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