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직도 ‘질문’ 이야기를 붙잡고 있을까

by 윤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이제 그만해야 하나.
질문에 대한 글을 계속 써왔고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도 몇 번이나 멈출까 고민했다.
왜냐하면 현실은 생각보다 단순했기 때문이다.


질문을 바꿔 상담한다고 해서
수익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었고
모든 사람이 이 방식에 감탄한 것도 아니었다.
공들여 준비했던 펀딩 책 역시
내 기대만큼의 결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질문’이라는 이야기를 놓지 못하고 있을까.
미련일까,
괜한 고집일까,
아니면 아직 포기하지 못한 마음일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늘 비슷한 질문을 한다.
연락이 올지,
마음이 남아 있는지,
이 관계가 괜찮은지.
겉으로는 미래를 묻는 질문 같지만
조금 더 들어보면 대부분은
“내가 지금 이 마음을 계속 가져기도 괜찮은 사람인가요?”라는 이야기였다.


그걸 처음 알아차렸을 때,
나는 답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기보다
그 마음을 정확히 짚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가장 돈이 되는 길은 아니었다.


빠른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은
때로는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이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인지,
아니면 내가 혼자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이야기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다시 질문 이야기로 돌아오게 됐다.


상담 중에,
누군가가 잠깐 말을 멈추는 순간들이 있었다.
답을 들어서가 아니라
“아… 내가 진짜 궁금했던 건 그거였구나” 하고
자기 마음을 스스로 이해해 버리는 순간.
그 표정을 몇 번 보고 나니
이걸 완전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질문은 틀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아직 자기 마음의 언어를 찾는 중이라는 신호였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답을 주는 사람이 되기보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조금 더 정확하게 바라보는 순간을
함께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방식이 모두에게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빠른 답을 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마
앞으로도 질문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게 될 것 같다.


아직도 누군가는
답보다 먼저
자기 마음을 이해받는 경험이 필요하니까.


어쩌면 내가 붙잡고 있었던 건
‘질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의 표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은 궁금해진다.
내가 붙잡고 있는 이 ‘질문의 전환’이라는 생각이
누군가에게도 정말 필요한 이야기일까.
혹은 아직은 나 혼자만 의미를 느끼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문득 조용히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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