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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넘어 공존으로

정치와 종교 갈등을 넘어선 건강한 공동체를 위하여

by 박수열

우리 사회는 때때로 서로 다른 생각의 파도 속에서 표류하는 듯합니다. 특히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가치와 같은 민감한 주제 앞에서는 더욱 그렇죠.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말들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걸까요? 분명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종교의 영역에서는 유독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 깊은 골을 메우고 더 건강한 공동체, 더 행복한 개인의 삶을 일구어낼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인간 본성, 그 양면의 거울


우리 인간은 본래 선한 마음과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타인을 쉽게 비판하며,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행동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는 마치 벌들이 꿀을 모으는 이타적인 행동과 동시에 자신들의 벌집을 지키기 위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과 유사합니다. 우리 안에는 타인을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과 함께, 때로는 집단의 이름으로 타자를 배척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행동까지 불사하게 만드는 본능이 공존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도 모르게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남들의 시선이 없을 때, 혹은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될 때, 우리는 쉽게 규칙을 어기거나 작은 거짓말을 하곤 합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인간의 본성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옳음’이라는 가치 아래 뭉치게도 하지만, 동시에 그 ‘옳음’의 이름으로 타 집단을 배척하고 눈멀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정 개인이 유독 악해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 자체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옳음’을 맹렬히 추구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 그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우리의 도덕적 판단은 많은 경우, 깊은 숙고의 결과라기보다는 순간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에 가깝습니다. 어떤 상황에 대해 "저건 틀렸어!" 혹은 "저건 옳아!"라는 강렬한 느낌이 먼저 찾아오고, 그 후에야 우리는 그 느낌을 정당화할 논리적인 이유를 마치 탐정처럼 찾아 나서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시되는 근거들은 종종 판단 이후에 구성된 ‘사후 합리화’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특정 음식에 대해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맛있다" 또는 "맛없다"를 느끼고, 그 이유를 나중에 설명하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먼저 강렬한 느낌이나 직감을 경험하고, 그 후에 논리적인 이유를 찾아 이 느낌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직관적 판단은 너무나 강력해서, 일단 한번 형성되면 외부의 논리적인 반박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더욱이, 도덕적 판단은 개인의 머릿속에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나 사회적 분위기 역시 우리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타인이 특정 사안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은연중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 때문에 정치적, 도덕적 논쟁이 평행선을 달리고 서로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직관이 이끄는 결론이 너무나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도덕적 추론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반드시 더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뛰어난 추론 능력은 자신의 직관적 판단을 더욱 정교하게 합리화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은 여러 핵심적인 가치들에 반응하며, 이는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는 자율성의 윤리, 둘째는 가족, 조직, 국가 등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우선시하는 공동체의 윤리, 마지막으로 인간과 세상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특정 가치를 절대적으로 수호하려는 신성함의 윤리입니다. 각 사회나 문화, 심지어 개인마다 이 세 가지 윤리의 조합과 우선순위는 다르게 나타나며, 이는 각기 다른 ‘도덕적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이 세계관은 나름의 완결성을 지니고 있어, 외부의 비판이나 논증만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서로 다르게 판단하는가?: 도덕적 감수성의 다양성


마치 훌륭한 요리가 우리의 다양한 미각을 만족시켜야 하듯, 건강한 사회적 합의는 우리 마음속 여러 도덕적 감각 채널들을 두루 고려할 때 가능해집니다. 우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몇 가지 근본적인 심리적 토대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보살피려는 배려, 공정하고 평등하게 대우하려는 공평성, 자신이 속한 집단에 헌신하려는 충성심, 정당한 권위와 질서를 존중하려는 권위, 그리고 영적이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고귀함 등이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공평성에 관심을 두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종종 공평성을 결과의 평등으로 이해하는 반면,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은 각자의 기여에 따른 비례적 보상을 공평성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가치에 대한 강조점의 차이는 정치적, 사회적 입장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주로 배려와 공평성, 개인의 자유와 같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충성심, 권위, 질서, 고귀함과 같은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가치들을 더 폭넓게 중시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도덕적 규범을 따를 때 편안함을 느끼고, 그 규범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더 쉽게 공감합니다. 우리는 특정 상황에서 개인의 이익을 넘어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몰입하고 헌신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단 몰입 스위치’는 종교적 믿음이나 공동체적 의례를 통해 강화되기도 하며, 사람들 사이에 신뢰와 단결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집단의 가치를 절대화하고 타 집단의 가치를 깍아내리는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습니다. "남의 잘못을 알기는 쉬우나, 나의 잘못을 알기란 어려운 법이다"라는 옛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판단 근거는 명확하다고 여기면서 타인의 판단 근거는 쉽게 무시하곤 합니다.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가는 길: 이해와 공감의 다리를 놓다


그렇다면 이처럼 깊이 각인된 생각의 차이를 넘어,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바로 공감입니다. 상대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진정한 노력, 그들의 입장에서 무엇이 옳고 중요하게 여겨지는지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공감은 서로의 완고한 확신을 녹이는 가장 강력한 해독제입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접근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의 근본적인 감정적 성향이나 직관을 바꾸는 것이지만, 이는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소한 환경의 변화가 사람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거나, 협력을 장려하는 보상 체계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조직 차원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구성원들 사이에 자부심, 충성심, 열정을 북돋우는 문화를 가진 조직은 감시나 통제가 덜 필요하며, 구성원들은 서로 신뢰하며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합니다. 이는 마치 잘 조직된 벌떼처럼, 각자의 역할을 즐겁게 수행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면, 그들이 무엇을 신성하게 여기는지, 어떤 가치를 목숨처럼 지키려 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도덕적 감수성의 다양한 채널들(배려,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 등)을 떠올리며, 특정 논쟁에서 어떤 가치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머리가 아닌 가슴을 먼저 여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상대편’이라고 여겼던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우정을 쌓을 수 있다면,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설령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건설적인 관계를 맺어갈 수 있습니다.


결론: 다름 속에서 함께 행복을 찾는 지혜


결국, 우리 사회의 갈등을 줄이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의 ‘옳음’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편 가르고 비난하기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며 그 안에 담긴 일말의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고, 타인의 ‘옳음’에도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 더 유연해지고 서로를 포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행복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습니다. 나 자신과 타인,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나 자신과 나보다 더 큰 어떤 가치와의 올바른 관계가 맺어질 때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이 땅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지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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