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확률을 계산하는 당신에게

불확실한 관계를 건너는 유일한 태도에 관하여

by 박수열


우리는 종종 사랑 앞에서 멈칫거립니다. 마치 정답 없는 문제를 받아 든 수험생처럼, 눈앞의 상대를 두고 끊임없이 계산을 반복합니다. '현실적인 조건이 맞는가?', '이 사람이 과연 나를 끝까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더 나은 선택지는 없을까?'. 이 수많은 변수 사이에서 우리는 정답을 찾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사랑은 우리가 입력한 값대로 결과가 나오는 예측 가능한 공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때로는 비합리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왜 우리는 사랑 앞에서 그토록 타인의 조건에 집착하며, 정작 가장 중요한 변수인 '나 자신'은 소거해 버리는 것일까요?


사랑이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는 상대방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불분명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불확실한 관계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한 자아로 성장하게 만드는 '사랑의 태도'를 깊이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 '좋은 사람'이라는 환상과 자기 욕망의 발견


우리는 흔히 연애나 결혼을 앞두고 주변에 묻곤 합니다.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일까?" 외모, 성격, 직업, 가정환경 등 수많은 데이터를 나열하며 객관적인 검증을 요구합니다. 마치 세상 어딘가에 '괜찮은 남자(혹은 여자)'에 대한 절대적인 표준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냉정하게 분석해 봅시다. '이만하면 괜찮다'라는 기준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누군가에게는 안정적인 경제력이 0순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대화가 통하는 지적 수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성격이 핵심 변수가 됩니다. 결국 '괜찮은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나에게' 괜찮은 사람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가 선택 앞에서 주저하고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는 진짜 이유는, 상대방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견딜 수 없는지, 나 자신의 욕망과 우선순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가치관이 명확한 사람은 갈등하지 않습니다. 돈이 중요한지, 낭만이 중요한지, 혹은 자유가 중요한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결핍과 욕망에 무지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상대를 만나도 결국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타인을 평가하기 전에 나라는 사람의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2. 의존성을 넘어선 주체적 사랑의 역학


많은 이들이 사랑을 통해 구원을 꿈꿉니다. "이 사람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나의 행복을 타인에게 위탁하려는 수동적인 기대가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전제입니다.


사랑은 결핍된 반쪽을 채워줄 완벽한 타인을 찾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가?", "내가 이 사람의 결핍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묻는 주체적인 결단이어야 합니다.


만약 상대의 경제력이 부족해서 망설여진다면, "돈은 내가 벌면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주체성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럴 자신이 없다면, 깨끗하게 경제력이 좋은 상대를 찾으면 됩니다. 가장 나쁜 것은 자신의 욕망을 숨긴 채 "이것만 빼면 완벽한데"라며 상대를 내 입맛대로 개조하려 하거나,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태도입니다.


건강한 관계는 두 개의 온전한 세계가 만나는 일입니다. 상대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단단한 자립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상대를 조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언제라도 마음을 열어두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성실함, 불안한 마음으로 상대를 속앓이 하게 만들지 않는 배려심은 바로 이러한 자존감과 독립성에서 나옵니다.


3. 진실함과 관대함: 사랑을 지속시키는 두 가지 상수


수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사랑의 방정식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상수는 '나의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태도의 핵심은 '나에게는 진실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할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나를 속이지 않는 진실함


사랑을 하다 보면 우리는 종종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를 합니다. 싫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쿨하지 못한 감정을 숨깁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한 관계는 필연적으로 균열을 일으킵니다. 사랑 앞에서 자신 있게 무력해질 수 있는 용기, 나의 지질함과 질투, 두려움까지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정직함이 필요합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니까 이해해 줘"라는 변명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진정한 자존감입니다.


2) 상대를 품는 관대함


반면,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거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결코 소유할 수도, 내 뜻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기꺼이 내가 먼저 져 주는 일에 가깝습니다. 진짜 사랑은 완벽한 상대를 소유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약점과 결핍, 뾰족한 모서리까지 끌어안겠다는 결심에서 시작됩니다. 설령 이별의 순간이 오더라도, "나에게서 멀어지고 싶은 상대의 마음"까지 이해하려는 태도야말로 관대함의 정점입니다.


이러한 관대함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깊은 연민과 자각에서 비롯됩니다.


4. 결론: 상처마저 성장의 동력이 되는 삶


현대의 우리는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감정 소모는 비효율적인 비용으로 치부되고, 상처받지 않는 것이 똑똑한 연애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본질적으로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모험입니다.


"이 사랑이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입니다. 사랑 뒤에는 언제나 오해와 질투, 구속과 의심, 그리고 이별이라는 보이지 않는 짐들이 딸려 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랑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내 안에 숨겨진 집착과 의존심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민낯을 인정하고 다듬어가며, 비로소 어제보다 한 뼘 더 성장한 인간이 됩니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도 실패가 아닙니다. 뜨겁게 사랑했던 기억, 상대를 위해 나를 내려놓았던 경험은 내 영혼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지금 사랑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나요, 아니면 기꺼이 져 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결핍을 직시하고 상대의 불완전함을 껴안는 태도만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괜찮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취해야 할, 사랑에 대한 유일한 예의일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권력의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