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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Oct 18. 2023

잘 자란 비장애형제를 만나보겠습니다.

전국다운부모모임-강의준비 이야기 2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나는 내 아들이 어떻게 자라길 희망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강의준비를 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신 건가?

- 내가 가진 다른 비장애형제들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인스타그램만 해도 장애형제를 사랑하고 잘 자란 성인 비장애형제들이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초대해 주신 것은, 짐작컨대 그저 내가 운영하는 언니의 SNS가 노출이 많이 되어 많이 보셔서 그랬으리라. 또한,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발달장애인과 지체장애인, 그중에서도 다운증후군이라는 하나의 공통사가 있기에 다운증후군 언니를 둔 내가 생각나셨을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님들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문득 제목을 보았고, 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잘 자란


잘 자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는 '잘 자란' 자식에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리라.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지고, 의례처럼 적당한 때에 결혼도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아이도 낳고...  또는, 어른들을 공경하고 예의 바르고... 


그러나 아마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들이라면 한참 아이, 또는 사춘기 자녀를 키우시는 분들이 많을 테고,  장애형제를 두었다는 점에서 외면보다 내면적인 것들을 더 궁금해하시리라 생각했다. 나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받는 많은 연락들의 대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긍정적인'이라는 단어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잘 자랐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잘 컸다는 의미일까? 장애인인 내 언니를, 장애인인 언니를 낳은 우리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고(너무 비극적인 말이다)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게 된 나의 모습이 잘 자랐다고 비추어지는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나는 내 아들이 어떻게 자라길 희망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샛길로 빠지는데) 나의 아기 이름은 바를 연, 밝을 호를 합친 ‘연호’로 나와 남편이 직접 의미를 생각하며 지었다. 남편 집안에서 사용하는 돌림자(‘겸’이다)가 있었지만 부모님들께서 흔쾌히 우리 의견을 존중해 주시겠다고 하여 출산 후 몸조리를 하는 동안 남편과 둘이서 머리를 싸매고 아기 이름을 지은 것이다(물론 어린이집 대기 때문에 출생신고가 급해 결국엔 시간이 없어 후다닥 정한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우리는 아기 이름을 지을 때 서로 각자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가의 바람을 말해보며, 그 바람이 담긴 글자 하나씩을 이름에 넣자고 했다.


남편은 아이가 ‘바르게’ 자랐으면 한다고 했고, 나는 아이가 ‘밝게’ 자랐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바르다의 한자와 밝다의 한자를 조합하고, 어플을 이용해(어플 중 이름으로 사용하기 좋은 한자, 획의 수, 궁합이 안 좋은 한자 등 사주를 알려주는 것이 있다) 가장 좋은 조합으로 아기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지금 연호는 28개월 차다. 두 돌이 넘었을 즈음 나는 남편에게 아기 이름을 너무 부모의 잣대로 지은 것 같다고, 이름을 좀 더 아이의 입장에서 지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며 (아주 약간의) 후회 섞인, 혹은 아쉬움이 담긴 말을 많이 했다. 


'바르다'와 '밝다'는 타인이 바라보았을 때 투영되는 외면적인 모습을 희망하는 부모의 희망(또는 욕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에) 정말 아이를 위해서라면, 아이가 행복하고 그저 건강하게 컸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이름을 지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던 것이었다. 


어느 날 남동생이 내게 '누나는 연호가 뭐가 됐으면 좋겠어?'라고 던진 물음에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을 했다.


행복한 사람


그렇다.


부모 된 사람으로 (물론 내가 말씀을 나눌 부모님들은 훨씬 더 선배님들이시겠지만) 가장 바라는 점은 내 아이가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가 ‘행복’이라는 단어에 꽂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남편이 큰 역할을 했다.      


남편은 그저 내향적이고, 조용하면서도 친한 친구들이랑 있을 땐 활기차지는 그런 성격, 가끔씩 던지는 말들이 너무 웃겨 나는 그저 남편을 바르고, 웃긴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결혼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 보니 남편은 자신이 언제,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가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행복은 어떻게 느끼는 건지를 고민해보지 않았고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부정적이거나 불행하거나, 우울한 사람은 아니다. 물론, 나 또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으나, 작은 것에 대한 소소한 즐거움을 ‘즐겁다’고 기억하고 생각해내지 못하는(않는), 크고 작은 균열을 불안해하는, 걱정 투성이인 남편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니 상대적으로 나와는 조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아이도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얻은 기회로 해보고 싶은 나의 이야기, 잘 자란 비장애형제의 이야기를,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던 나의 경험으로 채워보고자 한다. (난 확신컨대 그런 사람이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는 그저 내가 그렇게 잘 큰 게 아니라, 나를 그렇게 키우기 위해 지난 몇십 년을 고군분투하신 우리 부모님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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