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이지만 고향친구 같은 수지 맞이 모임
오늘따라 비가 나풀나풀 내린다.
그동안 얼어붙은 공기가 봄바람에 녹아내린 탓이다.
가늘고 부드러운 봄비가 바람에 실려 촉촉이 땅을 적신다.
언제나 가던 산길도 오늘은 쉬어 가기로 했다.
아침 운동을 건너뛰니 하루가 길게만 느껴진다.
어쩌면 이 기다림이 더 반가운 순간을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3개월마다 찾아오는 약속,
오늘은 특별한 신년 회식.
퇴직한 이도, 여전히 현직에 있는 이도
한 자리에 모이는 수지 맞이 저녁 모임이다.
오늘은 누가 나올까?
YB도 함께할까, 아니면 오롯이 OB들의 자리일까?
그동안 약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고향 같은 마을에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우리는 오히려 조금씩 더 닮아가고 있다.
금요일 저녁,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마치 오래된 고향 친구를 만나는 듯,
반가움에 허리띠를 풀고 맘껏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렇게 이야기꽃이 피어날수록
우리 사이의 시간은 한층 더 깊어진다.
같은 마을,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일을 떠나 편안히 마주하는 한잔술이
어쩌면 이렇게도 따뜻하고 넉넉한지.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하며
지나온 날을 돌아보고
또 다가올 날을 헤아리며 가꾸어본다.
술이 취하면 어떤가, 바로 집 앞인데.
조금 실수하면 어떤가, 다 아는 친구들인데.
그렇게 긴장도 풀고, 넉살도 떨며,
간간히 한숨도 더불어 함께 쉬어 간다.
동네 모임은 고향 같다.
너무 익숙한 동네 편한 음식점에서,
사람 냄새가 나고,
마음이 포근해지고,
정겨움이 흘러넘치니,
서로가 서로에게 작은 쉼터가 된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커피 한 잔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살짝 취기가 올라 무뎌진 발걸음으로
낯익은 골목길 따라 뚜벅뚜벅 걸어간다.
비에 젖은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길을 비춰 먼저 안내한다.
여전히 오늘 함께한 시간의 여운이 가슴을 데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인연이 쉽게 흐려지지 않을 것을.
우리가 함께한 시간만큼
앞으로도 더 많은 순간들이 또렷하게 쌓일 것을.
3개월 후, 다시 모일 날을 기대하며—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가 오갈까?
누가 함께할까?
우리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마도 그날도 오늘처럼,
서로를 반기며 웃을 것이다.
변한 것보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반가운 얼굴로.
우리 동네 수지 맞이 모임,
계속 이어지겠지?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모습으로.
그리고 언젠가, 지금을 추억하며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참 좋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 수지 맞이 모임: 타향인 용인 수지에 모여 살고 있는 옛 직장동료인 친구들을 맞이하는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