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나 사랑하는 거 맞아?”
이 질문을 받은 남자는 당황한다. 그는 어제도, 그제도 바쁜 일정을 쪼개 함께 저녁을 먹었고, 말없이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모든 행동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말하고 싶지만, 정작 그의 얼굴엔 감정의 파장이 없다. 그녀는 속이 텅 빈 듯 허전하다.
감정은 마음의 언어다. 생각은 설명으로 가능하지만, 감정은 표현되어야만 존재를 얻는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감정은 신뢰와 유대의 핵심이다.
그러나 유독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서툴다. 아니, 두려워한다.
왜일까?
그 답은 문화와 사회화 과정 속에 숨어 있다. 한국 사회는 오랜 시간 남성에게 ‘강함’을 미덕으로 강요해 왔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통념. 유년기부터 감정을 억누르도록 훈육된 남성은 결국 자기감정에조차 무감각해지는 훈련을 받는다.
그는 슬퍼도 울지 않았고, 두려워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성취하고, 책임지고, 침묵했다.
그렇게 감정을 감춘 남자는 어른이 되어 '감정 표현 없는 남자'가 되었다.
말이 없는 아버지, 무뚝뚝한 상사, 표현 없는 연인. 그들은 속으로는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침묵이 오해를 낳고, 결국 관계를 망친다는 것이다.
감정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감정을 말하는 일은 결코 유약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용기이며, 그것이 진짜 강함이다.
"오늘 좀 힘들었어." "기분이 가라앉아."
이 단순한 말이 관계를 지키고 자신을 회복시킨다.
중년 이후, 남성의 감정은 더 예민해지기도 한다. 이전에는 무덤덤했던 장면에서 눈물이 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남성은 이 변화에 당황하고, 감정을 다시 꾹 눌러 담는다. 이는 자신에게도, 가족에게도 건강하지 않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글로 써도 좋다. 운동이나 음악, 취미를 통해서 풀어도 된다. 중요한 건 억누르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이다.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치유다. 감정은 인간다움의 증거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이며, 그 생생함은 감정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그러니 남자들이여,
울고 싶을 땐 울어도 좋다.
말하고 싶을 땐 말해도 좋다.
감정 없는 척 살기엔, 인생이 너무 외롭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