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

외로운 사회가 만든 감정의 그림자

by 엠에스

<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 – 외로운 사회가 만든 감정의 그림자 >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사랑을 기다리게 되었을까?

어느 날 문득, 누군가에게 깊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가슴 한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그 마음은 따뜻하기보다 쓸쓸하고, 설레기보단 조급하다. 사랑은 여전히 아름다운 단어지만, 동시에 어떤 사람에겐 고된 숙제가 되기도 한다.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은, 개인의 상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회는 사랑을 거래처럼 만들고, 결핍은 상품이 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사랑받을 자격’을 교육받는다. 착한 아이, 말 잘 듣는 아이, 성적이 좋은 아이. 조건을 채워야 애정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마음 깊이 각인된다.

성인이 되어도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사랑은 여전히 평가의 대상이고, 증명의 대상이 된다.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

이런 말들 속엔, 사랑마저 스펙처럼 여기는 사회의 목소리가 숨어 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이를 ‘액체화된 사랑’이라 불렀다. 관계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사람들은 감정을 ‘소비’처럼 대한다.

사랑도 이제는 쉽게 시작되고, 쉽게 사라진다. 관계의 깊이보다는 ‘순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이 사회는 우리를 더 쉽게 외롭게 만들고, 더 깊이 사랑을 갈망하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SNS는 사랑의 불안감을 가속화한다. 수많은 ‘행복한 커플’ 사진들, 영화처럼 연출된 이벤트, 매 순간 사랑받고 있다는 증명들. 이런 이미지들은 타인의 애정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강박을 만들고, 나의 관계를 비교하며 불안해하게 만든다.

사랑은 사적인 감정이지만, 현대사회는 사랑마저 ‘보여주는 것’으로 만든다. 이로 인해 우리는 사랑 자체보다 ‘사랑받는 이미지’를 쫓는다. 그래서 진짜 마음은 숨기고, 서로의 표정과 말투를 분석하며 사랑이 식은 건 아닌지, 떠날 준비를 하는 건 아닌지 먼저 걱정하게 된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은 단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외로운 사회가 만들어낸 감정의 집합체다.

빠르게 돌아가는 경쟁사회,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 개인을 고립시키는 도시화된 삶의 구조 속에서 우리는 따뜻한 유대를 잃었다.

가끔 TV 속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겠구나, 하면서도 어느 장면에선 알 수 없는 쓸쓸함에 울컥하기도 한다. 그건 단지 혼자 있어서 아니라, 함께 있음에도 연결되지 못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라, ‘자신과 연결된 시간’이다.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 조용히 나를 돌보고, 내 감정을 인정하고, 사랑을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오랜 믿음을 놓는 일. 그것이 우리가 스스로를 구하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나서야 우리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랑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사랑은 결국, 혼자가 되어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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