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공감해 준다”는 말을 합니다. 얼핏 듣기엔 누군가를 위한 배려처럼 들립니다. 마치 상대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낮은 곳에 있는 이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과연 공감이란, 단지 남을 위한 배려이자 나를 희생하는 행위일까요?
공감은 남을 위한 것이기 이전에 ‘나’를 위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공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필수 능력’입니다. 공감 능력이 현저히 낮다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어렵고, 결국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감은 단지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우리 생존과 번영의 조건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속상해”, “기뻐”, “힘들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의 감정에 함께 반응합니다. 처음엔 그 말이 우리 내면에 울림을 주고, 이어서 표정이나 몸짓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옵니다. 그리하여 “정말 속상했겠다”, “기뻤겠네” 같은 말로 감정을 나누고, 필요한 경우 위로하거나 도움을 주게 됩니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젊은 부부에게 특정 단어를 보여주었을 때, 서로 유사한 자세를 취하고 비슷한 표정을 짓는 부부일수록 정서적 친밀감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다수의 TV 예능에서도 부부 갈등의 핵심 원인 중 하나로 ‘공감 부족’을 꼽습니다. 상대가 내 감정을 이해해 주지 않을 때, 사람은 외롭고 고립된 느낌을 받습니다. 결국 공감은 애착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필수 요소입니다. 자녀가 성장하여 어머니에게 더 많이 의지하고 연락하는 이유도, 정서적 친밀감의 차이 때문일 수 있습니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 이입이 아닙니다. 공감이란 다음 네 가지 요소를 포함하는 복합적 과정입니다.
1) 이해: 이는 인지적 공감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꼭 느끼지 않더라도 그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2) 감정의 공유: 정서적 공감에 해당하며, 타인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과정입니다.
3) 경험의 시뮬레이션: 상대방과 유사한 심리적 상태에 이르러, 그의 감정을 실제로 느끼는 수준에 이릅니다.
4) 자기와 타인의 구분: 공감은 경계를 잃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나와 그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결국, 공감은 가까이 다가서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입니다. 진정한 공감은 상대의 아픔에 함께 머무르되, 그 감정에 휘말려 나를 잃지 않는 성숙한 태도입니다.
공감은 타고나는 성향이기도 하지만, 환경과 심리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감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신경적 요인: 공감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울신경(mirror neuron)’ 체계가 약하거나 기능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2) 정서적 고갈: 스트레스, 우울, 불안 등으로 정서적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는 타인의 감정에 반응할 여유가 없습니다.
3) 주의의 분산: 갈등 상황이나 불안정한 관계 속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격한 감정이 집중력을 흐리고, 상대방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처럼 공감은 나 자신의 심리적 상태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요즘 들어 특별한 사람에게도 공감이 어려워졌다면, 먼저 내 마음이 얼마나 지치고 무뎌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뇌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뼛속까지 사회적인 존재다. 우리가 이렇게 큰 뇌를 가진 이유는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생존 전략의 중심에는 사회성, 그리고 그 핵심에 ‘공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조직에서 신뢰받는 리더가 됩니다. 버클리 대학의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는, 집단 내에서 리더로 떠오르는 사람은 권위보다는 관대함과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공감 능력은 연애와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심리학자 올라 스타브로바의 연구에 따르면, 외향성이든 내향성이든 상관없이 친사회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일수록 더 빨리, 더 안정적으로 연애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감은 단지 관계를 잘 맺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내면의 자원입니다. 이타적인 행동은 나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인간은 오랜 진화 과정을 거치며, ‘남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일’ 임을 배워온 존재입니다.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인간의 마음가짐을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 즉 능력은 타고난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즉 노력에 따라 능력은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공감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원래 공감을 잘 못해”라는 태도는 공감의 가능성을 닫아버립니다. 반대로 “나는 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믿는 사람은, 더 주의 깊게 상대를 듣고 더 따뜻하게 반응하려 노력합니다.
또한, 공감은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발달할 수 있습니다. 자기감정을 알아차리는 ‘감정 일기’를 쓰거나, 진심 어린 관계 속에서 공감받는 경험을 자주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타인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은 우리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