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감정적으로 격앙되었다가 금세 잊히는 ‘냄비 근성’의 반복 속에서, 본질적인 변화보다는 일시적인 대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인재(人災)로 규정되고, 여론은 특정 개인이나 조직을 향한 책임론에 집중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고, 구조적 개선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처럼 문제를 사람의 실수로 환원하고, 근본적 시스템을 되돌아보지 않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게다가 당파성과 편 가르기로 대표되는 정치 문화는 여전히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진보·보수 프레임 속에서 인적 청산이 반복되고, 정책 방향은 과거를 부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같은 지점에서의 반복일 뿐이다. 생산성은 정체되고, 국가 경쟁력은 소모된다. 문재인 정부든 윤석열 정부든, 주요 정책의 방향성과 실행력이 정권에 따라 급변하며 ‘국가 시스템’이라는 지속 가능한 틀을 마련하지 못했다. 통합과 화합은 구호에 불과하고, 각자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탐욕만 남았다.
이제는 인적 청산이 아니라 시스템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적 접근’이란, 개인 책임에 집중하기보다 문제의 원인을 제도, 절차, 문화, 구조 속에서 진단하고 개선해 나가는 총체적인 방식이다. 이는 단지 행정 시스템뿐 아니라 산업 정책, 교육 체계, 정치 운영방식까지 아우른다. 예컨대 독일은 ‘이중 교육 시스템’을 통해 산업과 교육을 연계시켜 노동 생산성을 높였고, 일본은 ‘품질관리 시스템’을 산업문화로 정착시켜 세계적인 제조 강국이 되었다. 시스템은 구성원이 바뀌어도 지속 가능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경쟁력이 없는 분야마저도 국가 보조금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으며, 이는 비효율적 자원 낭비로 이어진다. 규정을 손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개선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또다시 세금으로 메우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자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이해당사자들과 정치인들이 충돌하고, 결과적으로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못하게 된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로 생존하며, 다수는 편 가르기를 통해 존재를 증명한다. 결국 국가 전략과 무관한 이해타산이 정책의 발목을 잡는다. 따라서 때때로 “정치인이 너무 많다”는 냉소적 시선도 고개를 든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 결정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산업 전략과 국가 자원 배분은 과학적 데이터와 전략적 사고에 기반해야 한다.
한국은 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더욱 철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은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거나, 선도할 잠재력이 크다:
반도체 산업: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시스템 반도체 확장 중
이차전지·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시장 점유율 상위권
디지털 헬스케어 및 K-바이오: 유전체 분석, 스마트 의료기기 등 첨단 기술 기반
K-콘텐츠 산업: K-팝, 드라마, 웹툰, 게임 등 한류 소프트파워 확산
자율주행 및 모빌리티 기술: 완성 차 제조 경험과 ICT 역량 결합 가능
AI 및 디지털 전환 기술: AI 반도체, 스마트 팩토리, 클라우드, 로보틱스
국방 정밀기계 및 조선 산업: 첨단 무기체계, 드론, 위성뿐 아니라 군함, 해양 초계함, 잠수함 등 방산 조선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 보유
이처럼 강점을 가진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경쟁력이 부족하거나 정체된 분야는 과감히 정리하거나 아웃소싱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남는 자원은 핵심 분야로 재배치하거나,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로 연결하고, 그마저 어렵다면 복지로 보호하되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핵심은 무차별적 분배가 아니라 전략적 안배다.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 등 자원이 부족한 국가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강소국으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러한 선택과 집중 전략 덕분이다. 이들은 모든 걸 다 잘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집중했고, 나머지는 과감히 정리하거나 외부 자원을 활용했다.
한국은 교육열이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은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일까? 이는 시스템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규제, 경직된 조직 문화, 이해충돌로 점철된 정책 집행 등, 생산성을 저해하는 구조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시민의식과 교육도 중요한 축이다. 정치인의 밥그릇 정치도 결국 유권자의 선택 결과다. 시민들이 시스템적 사고에 익숙해지고, 장기적 전략의 가치를 이해해야 정치도 바뀐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 교육 강화, 공론장 확대, 사회적 합의 형성 능력을 키워야 한다. 민주주의의 질은 시민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정치’로부터도 일정 부분 자유로워져야 한다. 산업 전략과 국가 시스템을 결정하는 일은 포퓰리즘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로 생존하지만, 시스템은 장기 전략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
우리는 데이터 기반 행정과 디지털 전환을 통해 시스템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관행과 직관에 의존한 행정은 시대착오적이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원 투입을 분석하고, 각 정책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과학적으로 측정하며, 디지털 기술을 통해 공공 서비스를 혁신해야 한다.
우리는 시민으로서 성찰해야 한다. 왜 우리는 항상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가? 왜 분노는 뜨겁지만 개선은 더딘가? 왜 정권이 바뀌어도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가? 답은 결국 우리 자신 안에 있다. 시스템은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사람이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만 바꿔서는 변화가 없다. 선택과 집중 전략, 민간과 공공의 협력, 교육과 복지의 균형,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행정, 그리고 시민의식 강화.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강소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