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파벌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우리는 이제 정당을 고르는 게 아니라, ‘종족’을 선택하듯 정치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어야 할 정치라는 제도가 오히려 사람을 가르고, 혐오하게 만들고, 결국엔 파괴의 구실이 되는 비극의 출발점이 되곤 합니다.
이게 과장이라고요?
엘리 핀켈이라는 심리학자는 미국 사회를 40년간 관찰한 끝에, 한 가지 경고를 던졌습니다. "정치가 더 이상 생각의 차이가 아니라, 감정의 전쟁이 되었다"고요. 그는 정치적 파벌주의를 _“타자화(othering), 혐오(aversion), 도덕화(moralization)”_의 독성 칵테일이라 불렀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제 우리는 상대 정당 지지자를 보면 "아, 생각이 좀 다르네"라고 말하기보단 "쟤네는 도대체 인간이 왜 저래?"라고 혀를 찹니다. 정치적 의견의 차이를 도덕의 문제로 끌어올리는 순간, 우리는 논쟁 대신 전쟁을 선택하게 됩니다.
***
타자화: 내 친구가 ‘다른 종족’이 되었을 때
1978년 미국. 사람들이 느끼는 ‘정치적 반대편’에 대한 감정 온도는 약 5도 정도였답니다. 그게 2016년엔 25도, 2020년엔 18도까지 떨어졌죠. 반면 ‘내 편’에 대한 온도는 70도를 넘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수치가 아닙니다. 우리 뇌가 상대 정당 지지자를 ‘같은 인간’이 아니라 ‘이질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우리 딸이 상대편 정당 지지자랑 결혼하면 어떡하지?”란 질문에 과거엔 5%만 반대했지만, 최근엔 40% 이상이 반대한다고 하더군요.
가족보다 당이 더 중요한 세상.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
혐오: 내 편을 지키려면 저들을 미워해야 한다는 착각
정치는 언제부턴가 스포츠처럼 변했습니다. 응원팀이 지면 억울하고, 상대 팀이 실수하면 고소하죠. 이쯤 되면 ‘내가 뭘 믿고 있는가’보다 ‘누가 이기느냐’가 더 중요해집니다.
실제로 같은 정책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확 바뀝니다. 공화당 후보가 복지를 말하면 ‘현실적’이라 하고, 민주당 후보가 말하면 ‘사회주의’라며 비난합니다. 정책은 ‘무슨 말’ 인지보다 ‘누가 말했는가’로 평가됩니다.
혐오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이성’으로 평가하지 않고, ‘정체성’으로 반응하는 습관이 굳어지면 우리는 점점 생각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공격하는 존재가 됩니다.
***
도덕화: 정치는 악의 심판장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점점 상대편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악하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부터 대화는 끝입니다. 그는 변할 수 없고, 우리는 그를 이겨야 하며, 심지어 제거해야 할 존재가 됩니다.
미국의 의회 폭동도, 한국의 국회 파행도, 그 근저에는 이런 심리가 숨어 있습니다. 상대를 악마로 보면, 내 행동은 언제나 정의가 되니까요. 이건 더 이상 정치가 아닙니다. 정치의 종교화, 혹은 신념의 전쟁입니다.
***
허상의 적: 그들은 실제보다 훨씬 극단적이다
더 슬픈 건, 우리가 미워하는 상대는 대부분 실제 인물이 아니라 머릿속의 환영이라는 겁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의 30%가 성소수자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6%입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이 모두 부자들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멉니다. 이건 상상 속 괴물을 미워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 쉽게 증오하고, 더 깊이 단절됩니다.
***
알고리즘, 정치인, 언론 – 분노를 설계하는 자들
우리를 이런 지경으로 몰아넣는 건 단지 시민들만의 탓은 아닙니다. 미디어는 자극적인 뉴스만을 올리고, 정치인은 일부러 갈등을 부추기며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알고리즘은 내가 싫어할 만한 콘텐츠를 골라 보여줍니다.
분노는 클릭을 부르고, 클릭은 권력을 만듭니다. 우리는 그 구조 안에서 사유하지 않는 시민으로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
그런데 모든 나라가 이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미국이 이토록 분열되고 있지만, 정반대의 길을 걷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독일, 노르웨이, 영국은 오히려 반대편 정당에 대한 혐오가 줄었습니다. 왜일까요? 그 나라들은 정치 혐오가 극단화되기 전에 브레이크를 밟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대화의 기술, 합의의 장치, 언어의 절제. 이 모든 게 민주주의의 백신이었습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 다르되, 인간이라는 믿음
민주주의는 완전한 동의가 아니라, 불완전한 공존을 전제로 합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결코 같은 사회에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같은 인간’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는 나처럼 생각하지 않지만, 나처럼 고통을 느끼고, 나처럼 아이를 걱정하고, 나처럼 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정치는 이 다름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증오는 정치를 죽이고, 공감은 정치를 다시 숨 쉬게 합니다.
***
결론: 갈라진 세계에서 다시 ‘사람’을 보는 일
우리는 지금 증오에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그리고 민주주의는, 우리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그 단 하나의 약속 위에 존재합니다.
그 약속을 다시 기억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파벌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올 첫걸음입니다.
다르지만, 인간이다. 이 당연한 진실이 우리를 다시 연결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