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19세기 유럽의 질서를 재편한 인물이다. 그는 통일 독일제국의 창립자였으며, 냉철한 전략가이자 단호한 결단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어느 날, 그에 얽힌 일화 하나가 전해진다.
사냥 중 친구가 늪에 빠졌고, 그는 절박하게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다가가지 않고 총구를 겨누었다. 도움을 기대한 친구는 분노했고, 모욕감에 몸부림치며 스스로 늪을 빠져나왔다. 그때 비스마르크는 말했다.
"나는 너의 나약함에 총을 겨눈 것이다."
이 일화가 시사하는 바는 단순한 냉혹함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리더십, ‘스스로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자극’이었다. 리더는 때로 연민보다 도전으로, 동정보다 자각으로 사람을 구한다.
지금 한국 보수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재 한국 보수 진영은 정치적 늪에 빠져 있다. 대선 패배 이후, 책임 공방과 방향 상실 속에서 내부 균열만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 늪에서 보수가 빠져나오려면, 외부의 구조 손길이 아니라 내부의 분노와 자각이 필요하다.
보수 정치의 본질은 '지키는 것'이지만, 변화에 적응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유연함도 함께 갖춰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결의 언어가 아니라 통합의 전략이고,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미래를 그리는 담대함이다.
‘비스마르크의 총구’는 외부가 아닌 내부로 향해야 한다
한미 관계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러나 축전 여부 하나로 외교적 관계를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한 해석이다. 한미동맹은 단순한 정치적 호불호를 넘어선 구조적 협력체계다. 정부가 바뀌었다고 해서 동맹이 곧바로 흔들리는 일은 없다.
진짜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다. 외교의 성공은 외부의 호의가 아니라, 내부의 준비에서 비롯된다. 어느 정권이든 동맹은 관리하고, 신뢰는 쌓아야 한다. 반미·친중 구호가 외교 전략이 될 수는 없다. ‘자주’란 외톨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동맹 속의 주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경제는 혼자 살 수 없다. 국방도 마찬가지다
세계는 더 이상 각자도생으로 살아갈 수 없다. 공급망, 기술, 안보, 기후 위기까지 모든 이슈가 글로벌 연동 속에서 움직인다. 한국의 경제는 미국·유럽·일본과의 협력 없이는 성장할 수 없고, 안보 역시 한미동맹과의 공조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외교의 와해는 곧 경제·안보의 와해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위험은 특정 정권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안의 오만과 편향’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닌 ‘통찰’이다
비스마르크는 친구의 생명을 믿었기에 총을 겨누었다. 그는 친구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기에, 분노를 생존의 에너지로 바꾸었다. 오늘의 한국 보수도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향한 분노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향한 성찰과 책임이다.
국민은 더 이상 낡은 구호나 적대의 정치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변화와 실력, 그리고 희망이다. 과거를 탓하는 정치는 지지를 얻지 못한다. 과거를 딛고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만이 공감을 얻는다.
총구를 겨누는 손, 그것은 누구인가
‘비스마르크의 총구’는 외부가 아닌 우리 자신을 향해야 한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을 믿고, 국민은 지도자를 견제하며, 공동체는 서로를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다.
기억하자. 자주란 외로움이 아니라, 준비된 힘이다. 외교를 망치고, 경제를 흔들고, 안보를 놓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우리 안의 무능과 무책임을 겨냥하는 총구를 들이밀지 않는다면, 미래를 지킬 수 없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우리는 단지 정치권력이나 특정 세력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태권도, 한복, 김치 이전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자유와 정의, 진실과 공동체의 지속성이다.
비스마르크의 총구는 궁극적으로 스스로에게 쏘는 경고다. “포기하지 말라. 늪은 두렵지만, 나올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부의 도움 이전에, 내부의 분노와 분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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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비스마르크의 총구는 ‘책임의 리더십’이다
오늘의 위기는 단지 정치의 실패만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고, 역량이 있으며, 지혜가 있다. 총구는 우리 자신에게 향해야 한다. 스스로를 깨우고, 분열을 넘고, 다음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미래를 물려주기 위함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노가 아니라 통찰이다. 그 통찰이 바로, 진정한 보수의 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대를 위한 비스마르크의 총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