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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저주'와 혁신의 문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by 엠에스

<'승자의 저주'와 혁신의 문>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기업 경영의 세계에는 섬뜩한 경고가 담긴 말이 있습니다. 바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 이는 한때 시장을 지배하며 성공을 거둔 기업이 오히려 그 성공에 발목 잡혀 몰락하는 역설적 운명을 뜻합니다. 성공 경험이 새로운 시도보다 ‘과거의 정답’을 고수하게 만들고, 변화의 흐름에 눈을 감게 만들며, 결국 스스로를 소진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이 개념은 단지 경영 전략의 실패를 넘어 기득권에 대한 인간 본성의 미련, 안정에 대한 집착, 혁신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인지적 함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공의 그림자에 갇힌 거인들: 코닥, 노키아, 소니


‘승자의 저주’는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적 기업들의 몰락은 그 교훈을 생생히 증명합니다.


코닥은 20세기 필름 시장의 제왕이었지만, 세계 최초로 개발한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스스로 외면했습니다. 기존 필름 사업의 수익성에 대한 집착은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진 전형이었습니다. 결국 2012년 파산 보호를 신청하며, 스스로의 혁신을 스스로 거부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노키아는 2000년대 초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70%를 장악한 ‘제국’이었으나,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에 미온적이었습니다. 기술은 있었지만 철학이 없었고, 생태계는 없었으며, 통찰은 없었습니다. 애플과 구글이 소프트웨어와 UX 중심의 혁신을 선도하는 동안, 노키아는 기존 피처폰의 성공에 안주하며 몰락을 자초했습니다.


소니 역시 브라운관 TV와 워크맨의 성공에 집착한 결과, LCD 시대와 디지털 음악 혁명에서 뒤처졌습니다. 기술은 갖고 있었지만, 패러다임 전환의 타이밍을 읽는 감각은 부재했습니다.


'현재진행형'의 저주: 삼성, 구글, 그리고 한국의 플랫폼들


오늘날에도 '승자의 저주'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D램 시장의 1위 기업이었지만, 2024년 HBM 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주며 "잠시의 방심도 치명적이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는 메모리 시장이 AI 중심으로 재편되는 변곡점에서, 기존 수익 구조에 대한 지나친 안도감이 불러온 경고였습니다.


구글은 검색의 제왕이자 인터넷의 문지기로 군림했지만, 오픈 AI의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부상은 구글 검색 모델 자체에 실존적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검색은 더 이상 링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요약하고, 해석하고, 대화하는 과정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구글은 ‘제미나이(Gemini)’를 통해 기존 광고·검색 패러다임을 허물고 ‘AI 모드 검색’으로 자가 혁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에게 묘한 거울이 됩니다. 네이버는 여전히 검색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사용자 경험의 급격한 변화, 특히 젊은 세대의 정보 소비 방식이 비주얼 중심의 SNS로 이동하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카카오 역시 막대한 이용자를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확장했지만, AI 시대에 걸맞은 방향성과 기술 통합 전략이 부재한 상태입니다.


'승자의 저주'를 부추기는 사회적 에코 챔버


이 저주는 단지 내부 전략의 실패만이 아닙니다. 외부 환경도 이를 악화시킵니다.


미디어 생태계의 왜곡: 클릭을 유도하는 편향적 알고리즘, 정보의 단절을 부르는 필터 버블은 기업 리더들이 비판적 피드백이나 새로운 가능성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성공한 리더들이 자신만의 메아리 속에서 길을 잃는 현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기업이 특정 계층만의 소비나 반응에 집착하면, 새로운 소비자 집단이나 기술 전환 신호를 무시하게 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혁신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미래 시장 대응에 실패하게 만듭니다.


‘자기 파괴적 혁신’만이 길이다: 철학과 전략


‘승자의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선 철학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스스로 부수는 용기와 미래의 불확실성을 껴안는 태도를 요구합니다.


철학적 통찰과 전략적 제언:


1. “기존의 정답을 가장 먼저 의심하라”

과거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성공 경험은 쉽게 망각의 독이 되며, 혁신을 가장 먼저 억누릅니다.


2. “혁신은 구조가 아니라 문화다”

실패를 포용하는 조직 문화, 외부 아이디어에 열린 태도,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의사결정 체계는 모든 혁신의 출발점입니다.


3. “타이밍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기술과 시장 변화의 신호를 빨리 감지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조직만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전략적 판단력보다 중요한 것은 민감한 촉수와 유연한 전환력입니다.


4. “성공은 과정이어야 한다”

혁신은 일회성 결과가 아니라 반복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코닥이 실패한 이유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혁신을 과정으로 보지 못한 철학적 단절 때문이었습니다.


'졸면 죽는다'는 냉혹한 명제


“잠시의 방심도 곧 도태”.

이 문장은 단지 경영학의 교훈이 아니라, 오늘날 인간 존재 전체에 던져진 삶의 경고입니다. 변화하는 시대에서 혁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닙니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개인, 사회, 국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생존의 철학입니다.


오늘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의 성공을 매일 의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더 깊이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훈련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어떻게 이룰 것인가?"_가 아니라 "어떻게 버릴 것인가?"


맺으며: 성공의 역설을 넘어서


‘승자의 저주’는 단지 실패의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성공이 오히려 위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직시하라는 명령입니다.


- 기술이 아닌 태도

- 경험이 아닌 통찰

- 기억이 아닌 용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생존 전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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