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나면 그나마 쉬워지는 인생
누구라도 “언젠가 특별한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인데 나만 그런 줄 알고 살았는지 몰라요. 어차피 현실은 100% 안전하거나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항상 무슨 일을 하든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이죠.
그 불안이 있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회피하기 위하여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 결과로 우리가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는 것인 줄 왜 몰랐을까요?
불안은 성장을 위한 촉매제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상처와 슬픔이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들이 내게 한 것은 그냥 자극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사실을 전달했고 나 스스로 그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 때문에 나의 상처나 슬픔이 생긴 것이 아니고 그들의 자극으로 인하여, 내가 왜 그렇게 상처와 슬픔으로 바뀌는지 나의 본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정의 주도권이 내게 있고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감정적 통찰’을 통하여, 결국 근본 원인은 나의 미숙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오히려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슬픈데도 때론 미미하지만 입가에 미소가 있을 수 있고, 기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죄책감이나 허탈함이 스며들기도 하는 줄 왜 진작에는 몰랐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은 굉장히 복잡하고 이런 복합성으로 인하여 예술, 문화, 사회적 다양성이 창조되고 인간만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을 통하여 자신 내면의 새로운 통찰과 성찰의 기회를 갖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의 다양한 스펙트럼 때문에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복잡 미묘 그 자체인 거죠.
‘인간은 진실보다는 보이는 것을 믿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일한 내용을 똑같이 봤는데도 나중에 보면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어 당황한 적이 많았는데, 처음에는 화가 났고 나중에는 ‘애는 머리가 나쁜가?’고 의심했는데 그게 아닌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의 현실은 진실보다는 개인의 경험이나 가치관 등 각자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형성된 주관적인 총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고유한 세계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일한 사안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기회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위기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 보는 관점이나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것이지 틀렸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잘못되었다고 지적할 것이 아니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다른 이야기를 인정하고 통합의 지혜를 발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발전하고 성숙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죠.
따라서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경청이 필요한 것입니다. 소통은 상대방이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더하기 1은 2, 이것은 맞다 틀리다가 있는 것이고, 코끼리 다리를 놓고 벽이다 나무다 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틀린 것은 논쟁이 명확한 것이고, 다른 것은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애초부터 다툼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가 없는 논쟁은 소모적인 시간입니다.
진정한 소통은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상대를 알아가려는 태도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시간을 상대에게 더 많이 할애하고 내 이야기가 아닌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극적인 경청을 하고 공감을 해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공감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입니다 반드시 동의는 아닙니다.
진실한 소통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얻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과 친해지면 그 사람 인생 전체가 함께 오는 것이니까요. 얼마나 큰 보물인가요? 경험, 지혜, 인생 전체?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실패와 상처를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지만, 그 상처로 인하여 성숙해지고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때론 그 상처가 미래를 더 밝게 만들어주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상처나 실패로부터 “왜 그랬을까”반성도 하고 깨달음을 통하여 더 성숙된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그 상처에 계속 머무르면서 과거에 집착하면 안 되는 것이죠. 오늘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잘잘못과 원인을 깨달으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상처와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나 상처가 결국 ‘마침표’가 아니고 새로운 ‘시작점’이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훈장 같은 것이죠.
우리 사람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그리워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요. 그러나 자칫 여기에 안주하다 보면 빠른 세상살이에 뒤처지게 되고 정체되어 낙오하기에 이릅니다. 세월의 치매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세월이 빠른 만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야 말로 더 유연하고 재미있는 생활과 역동적인 삶을 만들어 갑니다.
세상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흐르는 강물에 유유히 따라 흘러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살면서 세상에 맞서 억지로 바꾼다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 가요? 난세의 영웅이 아니고는 다들 실패하고 결국은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우생마사의 교훈을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과를 제어하고 싶어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은 우리의 의지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잠시 부모에게 배달된 것”이라는 비유처럼 집착을 버리고 각자의 길을 존중해 줄 때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서로 신뢰와 존중의 관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적을수록 신의 경지에 가까워진다”말도 결국 소유와 욕심에 대한 집착을 줄여야, 보다 온전한 수용과 자유를 경험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사회적 잣대나 타인을 많이 의식하게 됩니다. 누구하고 경쟁하는 순간 나 자신의 결핍의 상태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인생은 어차피 “나 자신의 삶”입니다. 남과 끊임없이 견주기보다는 진정으로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내면에 끊임없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내가 진정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이 비싸다”는 말처럼 진정한 부유함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때 가능해집니다. 가장 부유한 사람은 부나 지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타인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감각을 지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풍요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방식이나 수준이 나와 다를 뿐입니다. 그들도 나름의 고민이 있고 경우에 따라 나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협조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 짐을 직접적으로 들어주는 것보다는 그가 스스로의 힘을 깨닫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공존하는 사회의 공동 운명체입니다.
산다는 게 뭐 별것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존재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매사 부정적 생각이나 시선에서 머물 것이 아니고 이를 긍정적 잠재력으로 받아들여 성숙의 기회로 삼으면 얼마든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파이팅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