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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은 너 아닌 나의 문제

다른 사람의 이해는 나의 몫이다

by 엠에스

‘인간은 진실보다는 보이는 것을 믿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일한 내용을 똑같이 봤는데도 나중에 보면 이해하는 바가 모두 다르지요. 결국 우리의 현실은 진실보다는 개인의 경험이나 가치관등 각자가 바라보는 주관적 시선에 따라 형성하는 주관적인 종합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고유한 세계관이 있는 것이지요.


남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원적으로 다르죠.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 관점의 차이임을 알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좀 더 지혜롭게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는 매일 정자를 생산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다양한 여성과 관계를 하고 싶은 호기심이 있다. 반면에 여자는 한 달에 한번 난자를 생산한다. 그래서 남자보다는 좀 더 긴 관계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남자의 바람은 금방 돌아올 수 있지만 여자의 바람은 돌아오기가 힘들다. 또한 남자들은 충동적인 것을 좋아하지만 여자들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친밀감을 중요시한다.

남자는 결과를 여자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남자들은 TV 드라마를 별로 재미없게 생각하지만 여자는 드라마에서 살아가는 관계를 보기 때문에 좋아한다.

여자가 화가 났을 때 남자는 자기 스타일대로 “가만 놔두는 게 낫겠다.” 고 오판을 한다고 한다. 여자의 특성은 말을 하며 관계와 친밀감을 만들어 가기 때문에, 얼른 가서 말로 다독거려야 한다.

부부 싸움 후에 부인은 친정으로 가겠다고 남편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남편은 친정에 가기만 하면 다시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부인은 남편이 친정까지 와서 사랑한다, 미안하다고 얘기하면서 데려가 주기를 바라고, 남편은 쪽 팔리게 친정까지 가서 망신을 준다고 생각한다.

서로 가정을 지키려는 마음은 같은데 방법이 다르다.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 생각하는 태도, 말하는 태도에서 여자와 남자는 너무 차이가 난다. 이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가정에서 경제적인 주도권만큼이나 이런 견해차이에 대한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그냥 지나치면 결혼 생활이 길어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대화도 안 하는 부부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특히 신혼 초에 습관적으로 싸움 후에 부부관계를 안 하는 부부들이 많다. 처음에는 말하기도 싫은데 관계를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는 보복행위로 무기로 사용한다. 그러다가 아예 습관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결국 섹스 리스가 되기 쉽다.

부부관계는 절대 싸움의 무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무기로 사용하는 상대에 대해 미움과 오기가 생긴다.

결과이든 과정이든 서로 대화가 중요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처럼, 노사관계처럼, 부부 사이에도 대화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남녀는 겉모습이 서로 다르듯이 정신적, 정서적 성향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대체로 남성은 논리적, 진취적,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반면 여성들은 모성 본능이 강하고 감성적, 수동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남녀 간의 차이점을 이해하면 가정이 더 행복해진다. 서로 동일한 교집합으로 만들기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합집합으로 더 풍성하고 크게 키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 살다 보면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에 대한 교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 저 사람은 다 좋은데 이것만 고치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고치는 대상이 일의 방법이나 무지에 의한 것이면 당연히 지도를 통하여 교화가 가능하지만 태도는 쉽지 않은 도전이고, 그 사람의 능력이나 성격이라면 매우 힘이 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격이나 기질은 컴퓨터의 OS와 같아서 하드웨어를 바꾸지 않는 한 바꾸기가 어렵다. 즉 사람 자체를 바꾸려고 하는 시도는 가능한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 사람 자체가 가지는 본성적인 것은 아무리 고치려 해도 이성적으로는 잠시 이루어지더라도 영원히 교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고 잘못하면 마음에 상처만 주고 영원히 앙금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이러한 다양성을 어떻게 화합과 통합으로 이끌어 시너지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즉 다름을 인정해야 소통과 화합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 사람하고 다름을 그 사람의 문제로 보지 말고 내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시너지를 제고할 수 있을까 하는 나의 도전 과제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름을 인식하고 상대를 나에게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나로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소통을 통하여 상대가 필요한 것을 공감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모난 돌을 디딤돌로 쓸지 걸림돌로 쓸지는 어디에 어떻게 놓을 것인가는 나의 문제이지 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결국, 내 마음의 눈이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다름은 보다 나은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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