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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기억의 시대를 넘어 사유의 시대로

by 엠에스

<한국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 기억의 시대를 넘어 사유의 시대로


며칠 전 2025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대입이라는 작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5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일제히 시험장에 들어섰다. 올해는 유난히 따뜻한 수능날이었다. 수험생의 손끝을 얼리는 한파도, 부모들의 떨림을 더하는 삭풍도 없었다. 그러나 그 따뜻함은 시험장 문 앞까지만 이었다. 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학생들은 다시 익숙한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숫자로 환산되는 점수, 정답과 오답으로만 나뉘는 지식, 그리고 단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의 첫 문을 결정짓는 구조. 한국 교육은 오늘도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한국 교육, 이대로 괜찮은가?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으며, 무엇을 잃고 있는가? 더 나아가,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기억의 교육’이 만들어 낸 한국의 현실


수능시험은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선별 시스템이다.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을 골라 배치하고, 대학은 다시 기업이 원하는 인력의 1차 필터로 작동한다. 이 구조는 바로 지식 중심·암기 중심의 교육체계를 강화하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진실을 잊고 있다. 인류의 지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기억하는 능력’이 곧 개인의 경쟁력이었다. 법률, 역사, 지리를 암기하는 사람은 전문가였고, 지식을 많이 축적한 사람은 사회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 시대는 이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AI는 인간의 기억보다 정확하고 방대하며, 데이터 처리 속도는 인간의 수천 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남는 역할은 무엇인가? 기억력으로 경쟁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지금의 한국 교육은 이미 시대적 역할을 다한 ‘기억의 시대’에 머물고 있다.


지식의 포화 속에서 사라진 ‘질문하는 능력’


한국의 학생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아니, 질문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교사는 정해진 진도를 따라야 하고, 학생은 교사가 준비한 문제를 ‘정확히’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철학의 역사는 질문의 역사였고, 과학의 발전도 질문의 연속이었다. 질문하지 않는 사회는 정답만을 소비하는 사회이며, 정답만을 소비하는 사회는 진보할 수 없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질문하는 능력은 곧 인간의 사유 능력이다. 하지만 한국 교육은 질문을 억제하는 대신 “틀리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정답은 과거에 존재하고, 질문은 미래를 여는 열쇠다. 한국 교육은 지금도 여전히 과거를 복제하는 학생을 양산하고 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없는 이유


한국의 대기업과 혁신 기업들은 해마다 같은 불만을 쏟아낸다.

“채용할 만한 인재가 없다.”

“창의성이 부족하다.”

“문제를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팀워크가 부족하다.”

이 말은 학생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 시스템이 만든 필연적 결과다.


한국 교육은,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

교사가 원하는 답을 이해하는 능력

실수를 최소화하는 능력

암기한 내용을 정확히 재현하는 능력

이 네 가지를 높은 점수로 평가한다.


반면 기업은 다음 능력을 원한다.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

복잡한 문제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능력

다른 분야의 개념을 연결하는 능력

협업·조정·소통 능력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용기


즉, 학교는 A를 평가하고 기업은 B를 원한다.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며 ‘왜 인재가 없느냐’고 서로에게 불만을 쏟아내는 구조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 간극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은 창의적 인재를 원하지만 교육은 여전히 기억력 좋은 학생을 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 “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철학자들은 교육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아렌트: 교육은 “새로운 세대가 세계에 책임을 갖도록 돕는 과정”이다. 즉, 교육은 세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듀이: 교육은 “경험의 재구성”이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는 일이다.

칸트: 교육은 인간을 “타율에서 자율로 이끄는 과정”이다. 즉,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시키는 일이다.


이 위대한 사상가들은 교육을 결코 ‘정답 맞히기 기술’로 보지 않았다. 만약 한국 교육이 아렌트와 듀이, 칸트의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지금의 교육은 절반 이상이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 교육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 구조, 문화, 가치관이 얽힌 복합 문제


한국 교육의 문제는 단순한 제도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회 전체의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다.


① 대학 서열 구조의 문제

대학은 학생의 능력을 보상하는 장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배분하는 ‘상징 자본’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부모들은 아이의 능력보다 ‘대학 이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 구조가 존재하는 한 시험 중심 교육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② 학벌 중심 사회문화

학벌은 취업·승진·인맥·결혼까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교육은 지식 전달보다 '상징적 지위 확보 경쟁’의 장으로 변질된다.


③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한국은 실패에 극도로 인색한 사회다. 실패 없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모든 도전을 꺼린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정답만 맞히는 삶”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래는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답이 없는 문제로 가득 찬 세계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 역량


AI는 지식을 기억하고 처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인간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① 해석하는 능력: ‘의미를 구성하는 인간’

AI는 데이터를 분류하지만 그 데이터가 말하는 ‘의미’를 해석하지 못한다. 해석은 인간의 고유 기능이다. 해석력이야말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대하고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


② 통합적 사고: 분절된 것을 연결하는 능력

미래 사회의 모든 문제는 복합적이다. 기후 위기, 저출생, 디지털 윤리, AI 경제 구조 등 어떤 문제도 하나의 학문으로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미래의 인간은 과학·철학·사회학·경제학을 넘나들며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③ 창의성: 기존 질서를 흔드는 힘

창의성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사유의 충돌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경험을 제한하고 사유를 제한하고 질문의 기회를 제한한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창의적 인간이 나올 수 있겠는가?


④ 감정 지능(EQ)과 인간의 관계 능력

AI는 감정을 ‘측정’할 수는 있어도 감정을 경험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 고유의 능력—공감, 협력, 의사소통, 갈등 조정—은 앞으로 더 중요한 역량이 된다.


⑤ 윤리적 사고와 시민성

AI 시대는 인간의 윤리적 판단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지, 미래 세대에게 어떤 책임을 가질지 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이다.


교육의 전환을 위한 제도적·사회적 해법


(1) 제도적 전환

① 평가체계 다원화

정답 중심 시험 비중 축소

탐구 보고서·프로젝트형 평가 확대

창의적 문제 해결력을 평가하는 시스템 구축

AI 활용 능력과 사유 능력을 함께 평가하는 새로운 방식 도입


② 토론·문제 기반 학습(PBL) 확산

학생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 방식 전환이 필요하다.


③ 교사의 역할 재정의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사유를 자극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2) 사회·문화적 전환

① 실패를 존중하는 사회 만들기

실패를 양분으로 삼는 문화 없이는 혁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② 대학 서열 구조 완화

공정한 기회 구조가 없으면 교육 개혁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


③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는 가치관 확립

공동체 기반의 사고를 기르는 것은 민주사회 유지의 기본 조건이다.


국민의 성찰: 우리는 어떤 인간을 기르고 싶은가


교육은 결국 사회 전체가 선택하는 ‘미래의 철학’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교육은 곧 우리가 꿈꾸는 사회의 모습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질문에서 도망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인간을 기르고 싶은가?

정답을 정확히 맞히는 인간인가?

경쟁에서 살아남는 인간인가?

사유하고 해석하고 공감하는 인간인가?

세계와 관계 맺으며 책임을 다하는 시민인가?

미래를 창조하는 인간인가?


지금의 한국 교육은 마지막 세 질문을 실천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기억’에 쏟아붓고 있다.


결론: 기억의 시대를 넘어, 사유의 시대로


한국 교육은 변해야 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향해 걸어갈 것이다. 기억의 시대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 이제는 사유의 시대, 해석의 시대, 창조의 시대다. 앞으로 교육이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세계를 해석하게 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아렌트의 말처럼, 교육은 “세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세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아이들이 두려움이 아니라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때 비로소 한국 교육은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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