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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장년의 의미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는 이정표이다.

by 엠에스

2024년 12월 31일 직장생활 43년, 한국나이 70세에 은퇴를 했다. 만감이 교차하지만 이후 생활을 어떻게 할까 많은 고민을 하면서 70대 장년 생활에 대한 의미를 우선 정리해 본다.


‘75세만 살아도 성공한 삶이다’, 이 말은 흔히 듣는 ‘100세 시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통계 자료를 조금만 살펴보면, 이 말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꽤나 현실적인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고 의학이 발달하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100세까지 사는 시대가 눈앞에 현실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물론 개인의 노력과 유전적 운이 뒤따른다면 장수할 가능성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실제로 70세, 80세, 90세까지 살아남는 비율을 생각해 보면 장년에 이르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통계로 보면 70세 생존확률은 86%로 비교적 높으나, 75세는 54%로 훅 낮아진다. 80세는 30%, 85세는 15%, 90세는 5%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75세를 넘긴다는 것은 한국인 절반 이상의 삶에서 이미 분기점을 넘어, 비교적 적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 된다. 70대에서 무려 56%가 상실을 맞게 된다. 90세가 되면 100명 중 95명이 상실되고, 5명만 남고, 100세가 되면 1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75세만 되어도 성공한 삶이라는 표현은 나이에 한정한 개념보다는 장년에 이르기까지 무탈하게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큰 축복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장수(長壽)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개는 단순히 수명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 삶의 의미 있는 목표는 그 세월 속에서 어떤 배움을 얻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어떤 행복을 누리는지가 중요하다. 이는 단지 부유한 재물이나 멋진 경력, 화려한 업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에서 체감하는 소소한 기쁨들과 성취,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결국 “몇 살까지 살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았는가?” 더 중요하다.


70대는 흔히 장년으로 분류되는 시기지만, 동시에 인생의 총체적인 경험이 농익어가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의 에너지는 예전만 못할 수 있겠지만, 대신 다양한 경험과 관계 속에서 쌓은 지혜와 내공은 더욱 깊어진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독립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사회적 책임에서 물러나 자신만의 삶을 정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생 2막 혹은 3막을 진지하게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의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이에 사람들은 가끔은 ‘나는 아직 사회에서 의미 있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히곤 한다. 사회적 제도나 주변의 시선은 은퇴 후 소일거리를 조심스레 권할 뿐,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기도 한다. 이렇듯 장년층을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비록 신체적 역량은 젊었을 때보다 못하지만,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은 이미 크고 작은 성취의 집합체다. 생존 그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오랜 생애에 드리운 숱한 위기와 고비를 어떻게 견뎌왔는지 생각해 보면, 그 누구도 “나는 별로 한 게 없다”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그 나이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가족이나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살아왔다면 이미 그것 만으로도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특히 자녀나 후배들에게 통찰의 지혜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이를 떠나 오히려 더 빛나는 가치가 있다.


물론 성공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 성공은 부귀영화를 얻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남부럽지 않은 편안한 일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와 역할은 은퇴 시기나 경제적인 능력, 명성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쌓아 온 경험, 삶의 지혜, 인간관계에서 형성된 인격적 자산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치보다 훨씬 더 귀중한 유산이다.


누군가는 예전처럼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이어 나갈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소소한 취미나 봉사 활동을 통해 만족을 얻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긍정하고, 여전히 주어진 시간 동안 삶을 향유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점이다.


한편, 우리가 장수를 지나치게 미화하다가 보면 현재의 삶을 허투루 살아가는 역효과도 생길 수 있다. “어차피 100세까지 살 테니…”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현실의 중요성을 희석시키고, 일상 속 작은 기쁨이나 노력의 가치를 잊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70대를 인생 이정표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매일매일을 좀 더 충실하고 감사히 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 바로 지금의 삶을 충실하게 잘 가꾸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노인이 되면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존재한다. 하지만 장년층에게도 당연히 역할과 가치가 있다. 사회 안에서 새롭게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하며 또 스스로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취미, 봉사, 인간관계, 자기 계발 등은 결코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장년에도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상호작용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꽃피울 수 있다면 성공적인 인생 2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년이 계속 늦춰지고 노인 복지 제도가 개선되고,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앞으로는 70대를 인생의 정점이 아니라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는 또 다른 시점으로 보는 시각도 늘어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인생의 어느 한순간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전체 여정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때까지 숱한 일을 겪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맺은 인간관계와 축적해 온 내면의 지혜는 그 무엇보다 값지다. 그리고 그 지혜와 경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사회에도 긍정적인 기여로 남길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70대의 삶은 지금 누리고 있는 건강과 일상, 인생의 소중한 관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준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소홀히 하거나, 영원히 살 것처럼 막연하게 미래만 바라보는 대신, 오늘 내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고 감사하는 태도로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인생은 60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70대에 이르렀다는 건 이미 상당히 많은 인생 경험과 연륜을 쌓아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많은 상황에서 겪은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사랑과 이별이 쌓인 결과물로서 지금이 있다는 뜻이다.


긴 여정을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남은 길을 향해 새롭게 출발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이정표가 되는 시기이다.


Now, let's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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