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전투체계 국산화
오늘날 K방산의 위세가 대단히 뜨겁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동안 정부, 국방과학연구소, 방산업체 등 K방산에 평생에 걸쳐 일하며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선배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유럽은 물론, 호주, 미국에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8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 연구개발제품이 거의 없어 해외 장비를 직도입해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80년대 중반부터 함정의 두뇌 격인 전투체계 국산화를 진행하며 겪었던 일부 에피소드를 공유하면서 그때의 교훈을 되새겨보고 앞으로 K방산의 지속적인 발전을 더불어 기원하여 본다.
해군 함정에 사용되는 전투체계는 모든 탑재 장비들의 연동을 통하여 필요로 하는 정보를 수집, 통합하여 상황을 도시하고 교전 수칙에 따라 위협 우선순위를 판별하여 무장을 할당하고 통제를 하여 위협에 대처하는 종합 지휘통제시스템이다. 인간으로 따지면 두뇌와 같은 소중한 장비이다.
이는 복합적인 다기능 컴퓨터 시스템은 물론 체계 연동을 위한 시스템 Data Bus 및 연동 장비, 운영 소프트웨어, 운영 콘솔 등 수많은 장비로부터의 정보를 종합하여 분석하고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지휘 통제를 위한 상황을 도시하여 함정의 전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장비이다.
80년대까지도 우리는 전투체계의 국내 개발을 수행하지 못하고 해외장비를 기술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었지만 교전 수칙이나 교리 등이 한국 실정에 맞지 않아 늘 불편을 감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90대부터는 한국의 작전운영개념이 적용된 장비를 개발하고자 해군을 비롯한 국내외 기업들이 다각도로 검토를 하고 있었다. 즉 국제공동개발이다.
회사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물론 개발이 성공하면 좋겠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개발을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그래서 일부 임원들은 개발 인력을 대상으로 개별 면담을 실시하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는데 아마 하나 같이 ‘나는 자신이 없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왜냐하면 방대한 개발을 자신이 혼자서는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교적 스마트한 인력과 삼성이라는 힘 있는 조직을 가지고 있어 비록 전투체계 개발 경험은 없더라도 업무를 잘 분담하고 공동 개발하는 해외업체가 함께 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공동개발을 착수하게 된다. 물론 해외업체와 우리의 업무 영역은 명확히 구분이 되었지만 그들의 개발체계를 흡수하여 시행착오를 최소화시켜 나갔다.
해외업체가 이미 적용하고 있는 개발 방법론과 시스템 분석 및 소프트웨어 설계 절차에 따라 하나하나 이행하여 과제를 수행하고 회사 내 인프라도 구축하며 수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국산화 개발된 함정 전투체계를 우리 손으로 완성시켜 나갔다. 우리는 장비 개발과 개발 체계 구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던 것이다.
그 후부터는 소요되는 모든 함정, 잠수함 전투체계는 국내 기술로 100% 개발하여 전력화 운영 중에 있다. 이미 동남아 등 국가에 수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투체계 국산화 개발 30년 만에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K방산의 산실로 발전한 것이다.
큰일일수록 혼자는 할 수는 없지만 함께 한다면 못할 일이 없다. 한국의 인적 자원은 매우 우수하기 때문이다. 다만 시스템적 체계를 구축하고 전문 분야 별 역할을 분담하여 접근해야 한다.
함께 해야 더 멀리 그리고 더 크게 갈 수 있다.
우리가 대화할 때는 주제에 대해 특정 용어를 자주 사용할 경우가 많다. 상대가 이것을 이야기하면 나도 이것을 이야기하고 내가 저것을 이야기하면 상대도 저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똑같은 이것저것을 이야기했지만 한참 후에 보면 상대가 이야기하는 이것저것과 내가 이야기하는 것에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직감한다. 비록 우리가 같은 내용으로 대화를 하더라도 상대는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100% 다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경우이다.
신입 사원 입사 후 부서 순차 교육을 실시할 때, 나름대로 쉽게 설명하려고 애를 쓰고 열정을 쏟아부어도 나중에 물어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전문 용어에 대한 인지가 어려울 수도 있고 이해가 되었다 하더라도 이면에 있는 경험이나 지적 Data Base에 차이가 있다면 100% 이해에는 못 미칠 것이다.
결국 본인이 아는 만큼만 들리고 보이는 것이고 딱 그만큼만 이해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간극을 줄일 수 있을까?
80년대 중반 조선소 파견 팀장으로 울산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감독관 실, 현대 중공업 및 전투체계 업체 등 연동 장비 공급 업체가 참석하는 주요 공정 회의가 있다고 책임자가 참석하라고 한다. 대리 직급인 내가 참석한다고 하니 임원 급 책임자여야 된다고 한다.
'내가 파견 팀장이고 내가 책임자이다. 내가 책임자가 아니면 철수하겠다'라고 버티자 결국은 참석을 하게 되고 의사 결정할 수 없는 주요 사안이면 다음부터 임원 급 책임자가 참석하겠다고 하여 회의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주 내용은 체계 연동 장비의 설치 및 체계 통합의 공정 순서와 시운전 계획 등이었는데 지극히 기술적인 내용이고 굳이 임원이 참석할 자리도 아니었다. 조선소에서는 그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GANTT 차트 한 장을 달랑 펴 놓고 공정 계획을 설명하고 있었다. 전투체계 입장에서 보면 참 어이가 없는 계획서이다. 아니 계획서도 아니다. 그냥 간단한 Schedule 정도이다. 그래서 조선소가 제시한 Schedule에 대한 문제점과 연동을 위한 체계 통합의 논리적 순서를 일목요연하게 설명을 하고 Functional Linking Schedule에 대한 증빙 자료(수십 페이지 분량)를 제출하였다.
그 후 모든 연동장비의 설치, 체계 연동 및 체계 통합에 관련된 공정회의는 조선소가 아닌 전투체계 업체에서 주도적으로 안을 내고 감독관 실에서 의사 결정하여 진행시키게 되었다.
똑같은 계획(실제는 Schedule: 일정)인데 조선소의 건조 일정과 전투체계의 기능적 연동 및 통합 일정은 논리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논리적 순서로 설치 및 체계통합을 해야만 시운전 비용과 일정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비록 같은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그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Data Base가 다르면 이해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이로 인한 부차적인 문제가 다반사로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소통의 오류를 최소화시키고 비용이나 일정을 줄이기 위하여 가능한 Data Base나 경험 등 상세한 내용이나 경험적 Story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이해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Big Data를 최신화시켜야 한다. Detail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90년 초 함정전투체계가 한참 율곡 전력증강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을 때이다. 잘 진행 중이던 전투체계의 해상설치시운전 시험 중 간헐적인 ‘Gun Hunting’ 문제가 발생하여 애를 먹고 있었다. 그야말로 간헐적이라 고장 재현이 어려워 원인 분석에 많은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장에서는 해상시운전을 통하여 추적 조사를 하려고 했지만 조선소나 현지에 상주하는 해군감독관 실에서는 명확한 해결책이 아니고는 해상시운전을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출항하여 시험하는데 많은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당시 보직을 옮겨 구미에서 생산관리과장으로 있던 나는 임원의 지시를 받고 부랴부랴 거제 현장에 도착, 현황 파악을 위하여 해상시운전에 동참한 후 저녁에 귀항, 정박하여 장비를 분해하고 추정되는 원인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다.
이때 해군감독관 실에서 전화가 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올라와서 보고하라'라고 한다. '나는 일을 벌여 놓아서 올라갈 형편이 못되니 긴급하지 않으면 내려오시라'라고 하였으나 감독관실의 실무 장교는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수석감독관이 '책임자를 찾는다고 올라와서 보고하라'라고 다시 재촉하고 있다. 나는 이야기한다. '일을 벌여 놓아서 갈 수 없고 다 끝내 놓고 가겠다'라고 하면서 다시 한번 '급하여 내려오시면 현장 보고를 상세히 하겠다'라고 전화를 끊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서둘러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이때 수석감독관과 실무 장교가 현장에 왔다. 다소 당황했지만 이야기한 대로 현장 상황에 대한 내용과 향후 계획 등을 직접 상세히 보고하고 현장의 일 때문에 예의를 갖추지 못했다고 용서를 구했다. 그들은 괜찮다고 하면서도 감독관 생활 중 수석감독관에게 내려와서 보고 받으라고 하는 사람은 처음인지라 누구인지 알고 싶어 현장에 왔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보다도 우리를 신뢰하고 그 후에 일어나는 해상 항해시험에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격려해 주어 비교적 빠른 시간(?)에 근본 원인 분석에 성공하고 전투체계가 큰 차질 없이 전력화 인도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그때의 협조적인 수석감독관과 인수 함장이 바로 이 oo대령(후 제독)과 송 oo대령(후 국방부장관)이다.
당시 회사에서도 주요 경영진들이 한 시간이 멀다 하고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전화통이 불이 나서 작업 진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현재 무슨 일을 해야 하니, 하고 난 후 보고할 때까지 전화를 하지 말라고 부탁했고 하더라도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하고는 원인분석에만 집중했다. 물론 불만이 많았다. 네 마음대로 하느냐? 네가 다 책임져라 등등. 최종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더라도 그때 상황이면 똑같이 했을 것 같다. 아무리 상사가 호통을 치고 감독관이 보고하라고 닦달하더라도 핵심은 조속히 해결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외부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하여 전체 상황만 공지하고 실무 진행은 전담자가 해야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아무리 변하고 다급하더라도 핵심이 우선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눈치 보다가 본질을 놓치면 담당자도 그들도 결코 바라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요구해도 핵심이 우선이어야 한다. 본질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전투체계국산화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에피소드를 경험하면서 현재 100% 국내 기술로 오늘날 K방산의 이름으로 세계 방방곡곡에 수출에 기여하고 있다. 이제는 후배들의 선전을 기원하면서 자주국방으로 우리나라의 안보는 물론 동남아 평화, 더 나아가 세계 평화와 안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