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살 녹아요

by 이삼오

"야, 너는 무슨 약 처방받았어?"



"약이요? 약물 과다복용으로 들어왔는데... 약을 처방받아요?"



샤만은 요새 들어 더욱 심심한지 부쩍 나에 관한 질문들이 늘었다.



"의사랑 상담하고 보통 얼마 안 있다가 처방을 받는데, 의사 양반이 아직 생각이 많은 모양이네."



"모두가 처방을 받나요? 예외도 있지 않을까요?"



"거야 난 모르지. 의사랑 간호사가 상의해서 정하겠지."



"그럼 아저씨는 뭐 처방받았어요?"



"난 처음 처방받았던 게 팍실(Paxil)이라고... 그런데 코피가 너무 심하게 나서... 이것저것 다른 걸로 시험해 보고 있어."



"부작용이라... 찝찝하네요..."



"그래도 어쩌겠어. 현대 의학을 믿어봐야지. 솔직히, 의사도 인간인데,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약물에 힘을 빌려야지."



"어디가 딱히 아픈 게 아닌데 약물의 힘을 빌려요?"



"안 아프긴, 우린 다 여기 아파서 온 사람들이잖아. 그러니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지. 마음이 아프면 몸도 여기저기 고장 나고, 몸이 고장 나면 마음도 울적해지고, 악순환이지."



노련한(?) 우울증 선배 다뤘다. 그냥 동네 한량에 건달 이미지였지만, 가끔은 깊이 있는 말을 할 때도 있다.





(닥터 라구와 상담 중)



"혹시, 저도 처방받나요?"



"그렇잖아도 생각 중이었는데, 우선 너와 이야기를 해보려고. 혹시 약에 대해 큰 거부감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제가 과다복용을 했지만, 약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평소에도 어지간한 고통이 아니면 진통제도 잘 안 먹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약이 필요할까요?"



"나도 그렇고 간호사님도 그렇고, 너는 약물 복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조건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잘 만 복용하면 위험하지도 않고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럼, 항우울제인가요? 프로작(Prozac)이나 졸로프트(Zoloft) 같은 건가요?"



내가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밴드 멤버들의 잡지 인터뷰에서 에서 종종 언급됐던 약물 이름들이었다.



"오, 제법 많이 아네? 기본적으로 호르몬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 거란다. 우울감이나 불안감이 심한 경우엔 호르몬 오작동 밑 불균형 해지거든. 약 종류야 환자에게 맞다고 판단되는 걸로 처방이 내려지지."



"지금 말씀드리면 언제부터 복용하는 건가요?"



"내일 아침부터."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이곳에 며칠 있으면서 깨달은 사실은 '딱히 별 거 없다'라는 것이다. 병원에 머무른다고 해서 뭔가 기적적으로 좋아지거나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단시간에 극적으로 바뀌거나 하지 않는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게 된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게,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보는 게 나은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늦은 밤)



이놈의 불면증은 잘 가시질 않았다. 잠이 살짝 들었다가 깨기를 수 차례 반복,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또 잠을 못 자겠니?"



오늘 당직 근무 중인 데이나가 내 방에 들어와 걱정스레 물었다.



"하아, 네. 답답하네요... 저번처럼 주사를 맞을 수 도 없고."



"그럼, 아티반 좀 줄까? 수면에 도움이 될 거야. 불안한 것도 조금 가라앉을 거고."



병원이다. 데이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현대 의학에 도움을 받기로 했다.



"으잉? 약을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리네요?"



"입 한번 벌려 볼래? 혀도 움직여보고. 잘 녹았네. 아주 간혹, 입에 약을 머금고 있다가 몰래 빼돌리는 사람도 있었지. 병원에서 제공되는 건 침이 닿자마자 녹아버린단다."



약의 효능이 올라와서 그런지 몸이 노곤해지는 느낌이었다. 며칠 전 약을 들입다 부었을 때의 초기 증상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


어떻게 잠들어버린지도 몰랐고, 아주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느낌이었다.



약에 대한 불신은 조금 허물어졌다.



"잘 잤나보네? 밝은 표정은 처음 보네? 호호."



데이나가 쟁반에 작은 종이컵에 담긴 약과 물을 들고 왔다.



"닥터 라구가 처방해 주신 약이야."



"약 이름이 뭔가요?"



"팍실(Paxil)이야. 이거 복용해 보고 부작용 같은 거 있으면 알려줘."



샤만의 코피를 유발했던 그 약이군...



난, 피를 보지 않길...









keyword
이전 07화화상(火傷)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