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火傷)의 추억

by 이삼오

최근 닥터 라구와의 면담은 그냥 그저 그런 대화만 오고 갔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나의 외부에서의 시간은 완전히 멈춰있었으니 모든 말과 생각은 과거로부터 비롯된다.



"오늘은, 흠... 친어머니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혹시 기억은 있니?"



"같이 살았던 기억은 없는데... 몇 가지 생각나는 건 있어요."





(1988년,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할머니는 몸이 편찮으셔서 큰 병원에 입원했다. 서울대병원이란 걸 보니 어디가 많이 안 좋으신 모양이다.



아산에서 막내고모가 올라오셔서 나를 돌봤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시는 큰고모도 종종 우리 집에 오고 가고 했다.



여느 날과 다를 거 없이 집 앞을 놀이터 삼아 동네 친구, 형들, 누나와 재밌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었다.



"삼오야! 빨리 들어와! 어여!"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지만 너무 다급한 목소리여서 집 대문 쪽으로 향했다.



"이년이 여길 어디라고 찾아와! 엄마(할머니) 없는 건 어떻게 알고, 잉? 썩 안 꺼져!"



큰고모가 어떤 여자 둘 한테 고함을 지르면서 막 화를 내고 있었다. 거리가 있어서 얼굴은 잘 못 봤지만, 왠지 엄마 일거라고 직감했다.



막내고모도 큰고모를 거들러 갔다.



나는 집 문 앞에 쪼그려서 그냥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여인은 한 참 실랑이를 하고는 뒤돌아서 제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고모들은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꿈쩍도 안 했다.



왜 할머니와 고모들이 엄마에 관해서라면 발작을 일으키는지 의아했다.



(며칠 뒤)



"악! 아아!"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오토바이가 쓰러져서 나를 덮쳤다.



친구 아버지의 오토바이였다. 조금 전에 들어오셔서 머플러가 아직 뜨거운 상태였다. 여기에 종아리가 깔려서 화상을 입게 되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피가 웬만큼 나지 않는 이상 놀다 상처가 나면 대충 약 바르고 밴드 붙이면 치료 끝이었다.



쓰라림과 욱신거림이 가시질 않았고 상처의 모양은 점점 뚜렷해졌다. 종아리에, 마치 삶은 달걀을 반으로 쪼개놓은 듯한 모양의 자국이 선명하게 생겼다.



매시간마다 고모가 약을 바르고 밴드를 갈아주었다.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유지하고 싶었으나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던 계절이었다.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부숴버리겠다는 걸 고모가 겨우 말렸고, 날 즉시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걸로 고모는 또 아버지에게 깨졌다. 내 마음이 미안하고 무거웠다.



막내고모도 가정이 있는지라 서울에 주욱 머무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는 엄마에게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라는 SOS를 보낸 듯했다.



80년대의 직장 생활은 군대 그 자체였나 보다. 월차나 휴가는 생각하기 어려웠고 누군가 장례를 치러야 겨우 쉴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잘 있었니? 며칠 전 엄마 왔던 거 봤어? 기억나?"



엄마는 두 눈을 글썽이며 나에게 물어봤다. 난 그저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 내가 무슨 말을 걸어야 할지도 몰랐다.



병원을 들렀다가 향한 곳은 빵집, 나는 무슨 죄인 마냥 빵을 눈앞에 두고도 눈치를 보면서 먹지를 못했다.



"삼오야. 엄마랑 같이 있어도 된다고 허락받은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먹은 땅콩 크림빵의 맛은 천상의 맛이었다.



화상을 입은 계기로 며칠간은 엄마와 이모와의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유치원에서 나를 일찍 데려와 저녁시간 전에 나를 데려다주는 식이였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비빔밥도 먹고, 레코드숍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테이프도 사고, 공원벤치에 앉아 기억이 나지 않는 대화들이 오고 갔다.



"엄마는 왜 나랑 아빠랑 안 살아? 같이 살아도 되지 않나?"



"삼오야 그게... 그러니까..."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였다. 너무 어린 나에게 딱히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며칠간은 엄마의 정을 조금이나마 느껴 볼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아무리 어린 나였어도 이게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항상 아쉬운 마음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인사를 하고 엄마와 헤어졌다. 검은색 바탕에 흰색 물방울무늬의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뒷모습이 머리에 또렷하게 남았다.





"그래도 기억이 제법 선명하게 남아있네? 그게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니?"



"아니요. 또 있어요."



"그래 우선 오늘 많이 이야기했으니 다음에 또 이어가자고."






처음으로 다친 기억이었다. 아팠고 불편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엄마와의 몇 안 되는 추억이 생겼다.



종아리에 문신처럼 뚜렷하게 남아있던 흉터는 신기하게도 성인이 되면서 없어졌다.



난 여전히 오토바이를 안 좋아한다.



그리고...



땅콩 크림빵의 맛은 좋아하지만 먹고 싶지는 않다. 나에게는 헤어짐과 불안함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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