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라구와의 면담은 과거의 나로 돌아가보는 시간이 많았다.
"너와 얘기하면서 느낀 건데, 기억력이 상당히 좋구나."
"상당히 좋은 건 잘 모르겠고, 특정 기억은 생생하게 나요. 선명함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 그렇지 않나요?"
"흠, 그럴 수도. 그럼 또 어릴 때로 다시 돌아가볼까? 유독 좋았거나 별로였던 기억이 있을까?"
"그렇게 치면... 하도 뭐가 많아서요. 좀 더 범위를 좁혀주시면..."
"엄마랑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유치원 때라고 했지? 그 시절 떠오르는 뭔가가 있을까?"
"아, 하나 있어요. 소풍에 대한...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요."
(또, 1988년)
덥지도 쌀쌀한 날씨도 아닌 완벽한 5월의 맑은 날이었다.
차멀미가 심한 나는 시내버스든 관광버스든 네 바퀴로 굴러가는 그 어떤 것을 타더라도 멀미하기 일쑤였다. 마시는 멀미약은 필수품이었다.
다행히 멀미 없이 도착한 소풍 장소에 넓은 잔디밭에 모두가 앉았다. 선생님, 아이들, 같이 온 가족들이 여기저기 섞여 돗자리를 펼쳐 앉았다.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아빠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고 대부분 엄마들과 종종 보이는 할머니들 뿐이었다.
내 자리에는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셋째 고모를 제외한, 첫째, 둘째, 막내고모에 할머니, 사촌 형, 누나 까지출동했다. 할머니는 몸이 편찮으셔서 컨디션이 영 별로임에도 이 날은 그럭저럭 괜찮으신 듯했다.
어린 나였지만 왜 이리 많은 식구들이 출동했는지 알고 있었다.
여기저기 펼쳐진 돗자리에는 모두 엄마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내 자리엔 없었다.
채워질 수 없는 빈자리이지만 할머니와 고모들은, 어떻게든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참 씁쓸했다. 그리고 죄송스럽기까지 했다. 내 존재가 민폐라고 느껴졌다. 이 나이에 이런 걸 느꼈다고?
느꼈다. 아주 크게.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없는 아이였지만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공백에 관해서는, 누군가 알려주고 들려주고 보여준 게 없어도 눈치로 다 알고 있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함이 컸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아빠와 엄마가 미웠다. 왜 본인들이 일은 벌여놓고 할머니랑 고모가 신경 써야 하냐고...
"자, 여러분. 모두 모여주세요! 우리가 오랫동안 준비한 율동을 한 번 해볼까요?"
"네, 선생님!"
망했다. 드디어 올 게 왔다. 노래나 율동 같은 걸 앞에 나와서 하는 걸 극도록 싫어했던 나였는데 관객까지 있었으니 오죽했으랴.
어쨌든 커다랗게 원을 그려 섰다. 원 중앙에는 선생님이 율동 준비 동작을 한 채 서계셨다.
"자, 이제 어머님들은 각각 아이들 뒤에 서시면 되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이건 계획에 없었잖아요!
하아... ㅆㅂ.
처음으로 입 밖에 욕을 뱉은 순간이었던 거 같다. 왜 형들, 누나들, 어른들이 욕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내 주변을 둘러봤다. 엄마, 아이들 할 거 없이 다들 밝게 웃는 표정이었다.
내 뒤를 봤다.
당연히 텅 비어있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과 엄마들은 신나게 율동을 시작했다.
난, 아무것도 못하고 바닥만 보고 있는 채로 얼어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눈물은 뚝뚝 떨어져 잔뜩 마른 누런 잔디에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서,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어여 춰봐. 어여. 이렇게 하능 겨?"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선생님을 보며 율동을 따라 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셨으나 두어 박자 정도 벗어난 전혀 다른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걸 인지하셨는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몸개그의 정석을 보여주고 계셨다.
모든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해있는 것만 같았다.
상황만 더 악화시켰다. 난 다리마저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내 팔을 끄집고 원 한 중앙에 데리고 왔다.
이 율동 이벤트에 날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특별하게 만들어주고픈 생각이신 듯했다.
의도는 매우 좋았지만, 내 느낌에 난 더욱 특별한 바보로 만들어졌다.
억지로 선생님의 팔힘에 이끌려 몇 바퀴 빙글빙글 돌았을까, 다행히 율동은 끝이 났다.
다른 생각은 안 들고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럴 새도 없이 보물 찾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낌새가 이상했다. 선생님과 고모들이 한데 모여 뭔가를 얘기하는 게 보였다.
보물의 위치를 알려주시는 듯했다.
그냥,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안 써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한 번은 막내고모의 손에, 한 번은 둘째 고모의 손에 이끌려 보물을 찾았다.
고모들은 매소드 연기의 일도 모르는 분들이다. 너무 당연하게, 손쉽게, 한 번에 보물이 적힌 쪽지를 찾아내셨다.
돗자리 위에는 색연필 한 세트, 크레파스 한 세트, 연필 한 다스, 8절지 스케치북 한 권 외 또 기억 안나는 것들이 사방에 펼쳐졌다.
누가 봐도 내 자리에 압도적으로 많은 보물들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눈치였고 다른 엄마들도 이의를 제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민 가기 전까지 학교에서 소풍은 매년 갔었다.
다른 친구들은 소풍이 되면 항상 들떠있었고 즐거워했다.
나는 마지못해 억지로 가는 소풍이었다. 소풍을 가면 조용히 혼자 그늘진 곳에서 책이나 읽곤 했다.
보물 찾기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뭔가 한 두 개씩 챙겨주셨다.
그냥, 다른 친구들에게 나누어 줬다.
내 마음은 텅 빈 보물상자 같았다.